2023. 4. 3.달날. 맑음

조회 수 282 추천 수 0 2023.05.02 23:59:23


거드는 손에 맞추다보니 저녁답에야 일이 되고는 한다.

학교 꽃밭에서 나무 하나 달골로 옮기다.

일전에는 가마솥방 창 아래의 키 낮은 단풍’이었고,

오늘은 교무실 앞 꽃밭에 있는 같은 종류의 단풍이었다.

둥그렇고 넓게 퍼진 가지를 위로 들추며 묶어주고, 분을 떴다(굴취). 뿌리 말이다.

관목일 경우 넓게 분을 뜨고, 교목일 때는 깊이 뜬다고.

녹화마대(현장에서 그리 부르는, 천연 식물 섬유인 굵고 거친 삼실로 짠 매트 혹은 자루)로 분을 감고,

마대는 검정 고무밴드로 감아주고.

작은 승합차의 트렁크에 묶어 차의 문을 연 채(열었다기 보다 닫을 수 없었던) 달골로 갔다. 

단풍을 수레에 옮기고, 아침뜨락의 달못 위로 가 구덩이에 넣다.

달못의 한가운데서 위쪽으로 보자면 좌우에서 두 단풍이 마주보는.

키 낮은 단풍이라고만 불렀지 어떤 종인가 챙겨볼 생각도 없이

지난 20여 년을 곁에 두었더랬다.

청희단풍인가 보다.

가로수나 조경수로 쓰이는 단풍과는 달리 왜성종이라고.

왜성종이라면 보통의 나무보다 키가 자라지 않는 성질을 가진 식물의 종류.

이 단풍은 가지와 잎이 촘촘하며 잎몸이 5~7갈래로 갈라진다.

가지가 위로는 적게 자라고 잎이 촘촘하게 옆으로 많이 나는.

 

밤, 건축현장에서 종일 일한 벗이 말했다.

절대노동!”

견주거나 맞설 만한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절대라는 낱말을 붙인다.

그는 최근 자신의 작업을 그리 일컬어왔다.

한계치라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마치 세상 끝 경계까지 이르렀는 양 하는 거기.

쓰러지기 직전이라는 말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노동 총량, 노동 강도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순수하게 노동만 밀도 있게 담은 것 같은 그 말.

알겠는 거다, 그 말의 질감을. 

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았거나, 내 상황이 그의 상황 같아서일.

봄이 오고 슬슬 이곳 일들이 그러하다.

여름 한가운데서 절정을 이룰,

새벽이슬에 젖고 어둠이 등 떠밀어서야 들을 나오거나 별빛 달빛을 이고 일하기도 할.

 

여독이었던가 보다.

어른의 학교에서 남도를 주말에 사나흘 돌았고,

낮은 산들을 걷고 왔다. 밤에도 걸었더랬다.

낮에는 종일 졸음에 겨웠다.

책 한 쪽을 읽는 데도 몇 줄 못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다가 결국 책을 떨어뜨리기도.

거스를 수 없는 파도처럼, 4월이다. 4월에는 또 4월의 삶을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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