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30.해날 / 111 계자 미리모임

조회 수 1594 추천 수 0 2006.07.31 22:29:00
2006.7.30.해날 / 111 계자 미리모임


올 여름에는 ‘뜨락 같은 개울물 속’이라는 제목으로
세 차례의 계자(계절자유학교)가 5박 6일씩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백열한 번째 계자(계절자유학교)를 내일 시작하네요.
두 번째 계자는 유네스코의 국제청년캠프(8.7-11)랑 같이 하며,
세 번째 계자는 민족건축인협의회의 어린이건축교실(8.23-24)이 함께 꾸려집니다.
일정마다 마흔 넷의 아이가 대해리를 들어올 계획이지요.

저녁 7시, 111 계자 미리 모임이 있었겠지요.
함께할 어른들한테 당부가 먼저 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계자 기간 동안은 온전하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할 것.
아이들이 눈을 떠서 움직이는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는
전화도 인터넷도 없이 보낼 것.
사진을 찍는 것조차 아이들이 대상화되어버리니
사진기를 놓고 아이들 속으로 풍덩 빠질 것.
물놀이는 어른이 꼭 함께 할 것.
샘들의 집중이 고스란히 아이들 집중으로 전환되므로
특히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는 중앙(진행)으로 집중할 것.
도움의 출발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서겠지만
실제 ‘도움’은 그곳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하는 것.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모국어를 잘 살려 쓰려고 애쓰는 낱말들에 대한 공유.

인사하는 시간도 있었겠지요.
처음 온 사람은 어찌 알고 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서로 알았던 사람들은 요새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들을 나누었습니다.
나누어 놓은 모둠을 보며 아이들 이름을 익히고,
특별히 알아야할 아이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나누고,
계자가 어떤 가치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물꼬의 생각을 나누고,
그리고 속틀에 따라 자기 동선을 그려보았습니다.
계자의 전체 그림도 그리고 자기 역할도 명확하게 정리되니
어른들로서는 미리모임부터가 계자의 실질적인 시작일 테지요.
계자를 마칠 녘,
이 시간을 못 챙긴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품앗이(자원봉사자)들이 꼭 있답니다.

이번 계자에는 스물의 어른(새끼일꾼 넷 포함)이 함께 합니다.
미리모임에는 열여덟이 모였네요.
새끼일꾼들은 물꼬의 자랑입니다.
무열이형, 기표형, 수진이형, 성학이형.
미국에서 온 성학이만 빼면
초등학교 때 계자를 거쳐 고등학생이 된 이들입니다.
자신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나누러 와서
어른들과 꼭 같이 움직이지요.
그들의 성장사를 보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웬만한 품앗이일꾼들보다 큰 일꾼들이랍니다.

품앗이들은 물꼬의 또 다른 자랑입니다.
소희샘, 초등학교 때 2년 동안 연극을 가르쳤고,
그 아이 자라 새끼일꾼으로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품앗이 일꾼으로 오고 있습니다.
용돈을 벌어 논두렁(후원회원)까지 하고 있지요.
다연(승희)샘, 나이 스물의 풋풋했던 그 대학생은
이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을 2년째 맡고 있는 있는데
어느새 제자의 느낌보다 생을 같이 하는 진한 벗의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선진샘과 승현샘, 3년 전 같은 시기에 물꼬 품앗이가 되어
공동체식구 못지않게 안팎으로 살펴주는 든든한 그들입니다.
은숙샘, 논두렁이고 품앗이인 그는
학교가 문을 열던 때부터
줄기차게 쌍둥이를 물꼬에 보내려 노력하고 있는 이랍니다.
어쩜 저리 한결같이 마음을 쓰고 지지할 수 있는 걸까,
자주 놀래게 만들던 사람이지요.
어느 교대에서 30여명이 수강 신청하듯 탐방을 오겠다 하였는데,
계자일정에 도움샘으로 와주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던 적이 있습니다.
은지샘과 혜정샘은 그렇게 왔지요.
저런 열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날을 꼽던 시절이 있었지,
지난 날을 돌아보게 하는 뽀송뽀송한 대학 2년생들이었답니다.
그리고 올 여름의 새 얼굴 둘, 영진샘과 영샘,
유치원교사인 이들은 짧고 그만큼 귀한 휴가를
예서 기꺼이 손발 보태겠다 오셨습니다
(영샘은 낼모레 들어오실 거지요).

아, 그리고 공동체 식구인 희정샘이
세상에 나오는 아이를 맞으러 대해리를 떠나있습니다.
오랫동안 물꼬의 가마솥방을 맡아오던 이지요.
그 자리를 물꼬의 상설학교 학부모(밥알)인
홍정희엄마, 박진숙엄마, 이금제엄마가 맡아주셨네요.
마음이 어렵지 않아 그게 더 고맙습니다.
힘들어하거나 끌려 다니는 이들은
전체 일정을 진행하는 이를 자꾸 마음 쓰이게 하기 마련이니까요.
안정된 부엌이 전체일정에 기여하는 게 얼마나 큰지요.

그리고 올해 미국에서 대학생이 된 재신샘,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게 초등 2년이었고,
2년여를 같이 공부했습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그네 어머님은
자유학교니 공동체니 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종교 안에서 느끼는 영성을 물꼬를 통해 느낀다셨습니다.
그것도 십여 년 전이니 물꼬가 지금보다 더욱 어설펐을 때겠지요.
부드러운 음성의 그 어머님, 뜻이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며
병상에 계시던 때 큰 돈을 물꼬에 보내셨고
유언으로 다시 더 큰 후원을 하셨습니다.
호주에 머물고 있을 때 당신 소식을 전해 들으며
잘 살아야지, 잘 살아야지 굳은 다짐을 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부모입김이 천리라고 아니 가고 만리라고 아니 갈지요.
부모손길이 저승이라고 먼 길일까요.
다른 세상에 계신 당신이나
어머니의 부재가 전혀 느끼지 않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이로
재신이를 훌륭하게 키워내셨더이다.

가끔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현현(顯現)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현상들이
우리 삶을 에워쌀 때가 있습니다.
제 삶의 훌륭한 길눈밝힘이가 되어주시는 분들 가운데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닌 경우도 더러 있지요.
그 분들이 등불을 켜고 앞서서 걸어주시는 밤이 있답니다.
자신의 삶, 자기가 해온 일들에 회한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또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일에 휘말려서 꽤 긴 날을 그리 보냈더랍니다.
이게 다 무언가, 뭐 하자고 한 짓인가, 가려던 길이 맞는가,
이 잘난 것 한다고 스스로를 그토록 혹독하게 했던가,
순수한 열정에 대한 대가가 이런 것이었던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실망과 인간 삶에 대한 좌절이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듯이 지난 반년을 보낸 시간 뒤에 맞은 미리모임이라
제게는 더 각별함이 있었겠습니다.
‘아, 당신이 보내주셨구나...’
제 삶의 한 안내자인 그 어르신은
당신 아들을 통해 다시 저를 곧추세워주고 계십니다.
울컥,
사는 일이 고마웠지요...

푸념 같은 이야기가 길었네요.
모임을 끝내놓고 글집 엮는 일과 벽보 붙이는 일을 마친 뒤
가마솥방에 모두 모였습니다.
은숙샘이 들여온 순대로 볶음을 해서 야참을 나누며
맞을 아이들에 대한 기대로, 그리고 우리 생의 한 여름날에 대한 기대로
신이 난 밤이었네요.
새벽 두 시에야 가마솥방 불을 끄고 돌아왔습니다.

참, 저녁답엔 풍물도움샘이신 구미의 정기효샘이 식구들이랑 다녀가셨습니다.
그런 걸음들이 선물인 이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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