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계자 나흘째, 8월 19일 나무날 잠시 갠 비

조회 수 1597 추천 수 0 2004.08.22 14:57:00

< 해보고 싶어요, 할 수 있어요 >

"선생님, 있잖아요, 저 형아가..."
보이기만 하면 따라와 제가 없던 곳에 벌어진 사건들을 전하는 정훈이는
특파원입니다.
그가 전하는 생생한 소식들로 놓치는 게 덜한 계자라지요.
어떤 녀석은 내내 옷 애낀다고 안갈아입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조금만 버려도 갈아입어대서
흐린 날씨 탓에 이제 더는 마른 옷이 없기도 하고
이 옷 입고 밖에 어찌 나가냐(멋없다 이거지요)고
굳이 제 입고 싶은 옷을 찾아 삼만리 도는 민재 같은 녀석도 있습니다.
봐줄 사람도 없고
(저마다 자기 작업하느라 정신 없는 걸요.
그리고 남에 대한 관심도 그의 작업이지 그의 얼굴이 아닌 걸요.)
있다한들 굳이 지까짓 것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마려운 똥을 불편한 화장실로 참고 참다가
옷방에다 냅다 떨어뜨린 이가 있는가 하면
바지도 내리기 전 나와버려서
화장실 바닥에 그림을 그린 이도 있고...

"기념 패션쇼 안합니까?"
유효진샘이 치마를 완성해서 입은
다온 연규 나현 다예 하연에게 외쳤습니다.
같이 좌악 서보이긴 하는데
홀로 걷기는 꽤나 쑥스러운 모양이네요.
그래도 그 뿌듯한 얼굴들이라니...
사흘동안 기를 쓰고 하던 바느질이
오늘 옆선과 허리 고무줄 자리 박음질을 끝으로
그렇게 열매를 거두었더랍니다.
낮에 한 배움들을 나누던 시간은 얼마나들 진지한지
너무 열심히 살갑게 하는 자잘자잘한 설명에
재밌게 안들을래야 안들을 수가 없었더라지요.
배움이 확장도 되었겠습니다.
유진이와 예림이가 풀잎을 물감에 찍어 나온 그림으로
이야기를 재미나게 엮었고
상우 맹재우 용승인 종이를 바지런히 접었습니다.
호정이와 영신이는 사흘내내 질기게 부채를 만들었지요.
그런데도 생각은 바닥을 보이지 않고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다른 거 좀 해보지 그래?"
고개를 절래절래하데요.
상현이와 정훈이는 생각한 걸 있는 재료만으로 충분히 표현해내고
재은이는 제 모습마냥 아기자기 자신이 만난 세계를 만들고
용승이는 약방감초마냥 예제 왔다 갔다 하고...
범준 운규 김제우 성종 땅(한얼) 준화 세훈 재용 오인영 현휘,
무려 열이나 조각도를 들고 나무를 파던 아이들 틈에서
열택샘이 그러데요.
저렇게 열정적이고 저리 하고파하는데,
이 시대 얼마나 많은 곳에서 아이들을 책상에만 가두고 있냐고,
이곳에서 아이들이 쏟는 열기와
자기 역량이 어찌 솟구치는지 고스란히 확인을 했다지요.
사흘동안 성을 쌓던 민재 민수 류옥하다 도흔
(아, 어제 잠시 용석이도)
짠 하고 성을 내놨지요.
감탄한 운택이 벌떡 일어서서 막 손뼉을 치는 겁니다.

잔칫상도 차려졌습니다.
떡볶기도 내고 감자떡도 내고
부침개도 썰고 수제비도 끓이고
화채랑 경단을 내고
김치볶음밥에 잡채도 나왔습니다.
경단 만드는 패들이 식탁 장식용으로 만든 수박인형을 보고
"웃봉지 떼뜨리고, 했네."
민재가 그랬지요.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의 한대목을 그대로 읊은 게지요.
"둥글 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예림이가 기꺼이 내논 카스테라는 맛난 고물이 되었습니다.
한데모임에서는 하루를 돌아보며
제가 한 보글보글방마다 일어나서는 물었겠지요.
"맛있게 드셨어요?"
시샘도 없이 너도나도 맛났노라 크게도 대답해주더이다.
참, 성진이는 칼을 참 잘써요,
더러 요리를 돕나봅디다.
점심을 먹고는 모자이크로 도화지를 채우고 있는 이들도 있네요.
상현 운택 정훈이는
보글보글 가운데 찐빵 만드는 모둠을 위에서 본 모습으로 옮기고 있고,
여연이는 깊어지는 교실 모둠 식구들 이름자를
죄 신문에서 오려와 옮기고,
"보여드리기가 좀...
저는 그림에 소질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내민 재용이의 종이 작업도 밀려날 수 없는 작품이었지요.
한얼 김제우 성종 성진 상우 성진이들은
책방에 모여 이 지구 위에 널린 돌에 대해 얘기들을 나눈 뒤
돌아 찾아 떠나더니
남의 밭에서 서리한 포도랑 물꼬산 포도랑 맛도 견주어보고
시내에서 콸콸 넘쳐나는 물 속에서 낚시하듯 사금파리캐듯
올갱이 줍듯 돌을 건져올리며
잠시 물도 서로 흩뿌렸댔지요.
곁에서 물 소리 안으로 판소리 연습을 했던 저도
신나는 한 시간이었지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꾸만 떠들어서 이름을 몇 차례나 불러야 했던 땅이랑
그렇게 가까이 있지 않았으면 그 인상으로만 남았을 겝니다.
아이들이랑 보내는 개별적인 관계의 시간은 얼마나 또 소중한지,
한 아이의 또 다른 면들을 읽는 시간이 되다마다요.
돌아오는 길,
생긴 모양새며 어떻게 이루진 돌인지를 보느라
한없이 느려지던 걸음이었네요.
책방으로 다시 앉아 책과 견주며 어떤 돌인지 찾아다보고
'우리가 만난 돌' 연구서(?)도 냈다지요.
흙에 사는 이들에 관한 생태보고서(?)도 나오고
종이에 관한 단상(?) 책도 나오고
물과 나무에 대한 몸으로의 기억도 나왔습니다.

김영진 전정숙님(논두렁이시기도 하지요)이
부산에서 와서 머물고 계십니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 둘은 맡겨두고
귀한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며 힘 보태는 참이시지요.
"아이들이랑 보글보글 들어가서 부침개를 같이 했는데
부추도 한번씩 (돌아가며)잘라보고...
최근에 여기와서 해본 아이들이 조언도 해주고...
애들 못할 거란 생각에 내가 많이 하는데,
돌아가면 (우리)애들한테 많은 기회를 줘야겠다..."
영진샘이 그러데요.

판을 만들어만 주는 거예요,
물론 그 판을 같이 만들기도 하지요.
그 위에서 아이들이 놉니다.
물론 진리를 탐구해가는 즐거운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어른들은 그저 파수꾼입니다.
까불락거리며 여연이처럼 바늘에 찔리진 않나,
칼에 피흘리지는 않나,
쓰윽 하고 피 닦고 계속 놀 수 있음 그만이고
상처 깊으면 얼른 약상자 앞으로 끌어당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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