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쇠날, < 벌레, 너는 죽었다! >

조회 수 1594 추천 수 0 2004.09.16 00:35:00

지난 봄학기는 글씨를 쓸 일 거의 없이 보냈더랬는데,
아이들이 한 작업이 저들 손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하자고
글쓰기에도 집중하려는 가을학기입니다.
물꼬에서 방과후공부로도 아주 오래 해왔던 작업이라
축적된 힘도 적지 않고.
‘우리말 우리글’로 우리말 바다에서 치던 헤엄을
쇠날 배움방시간에서 빼지 않고 글쓰기시간으로 자연스레 옮긴 게지요.
이 아이들,
지난한 글쓰기작업도 재밌어라 하네요.

배추밭 벌레는 변함없이 애를 먹이고 있습니다.
배춧잎은 아주 그물이 되어있데요.
시커먼 것도 있고 초록색도 노란색도 있습니다.
무당벌레처럼 생긴 것도 있고
지렁이 모양이 있는가 하면
알도 있고 똥도 있습니다.
초록색같은 피도 나온대요.
“복숭아거위벌레래.”
즐거운 배움은 이런 영역까지도 넓혀집니다.
벌레 이녀석들,
공격을 받으면 배추 안으로 떨어져 죽은 척도 한다네요.
“(방학 때)많이 놀았으니 이제 일 좀 해야겠어요.”
류옥하다가 한데모임에서 그러더니
너도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겐지
벌레, 참 많이도 널부러졌답니다.
그래도 아침이면 덮쳐오는 안개처럼 올 테지만.

지명수배 전단 한 장이 복도에 걸렸습니다.
그 왜 마을 게시판에 붙는 거 있잖아요,
범죄자 몽타쥬에 범죄내용, 이름, 신체특성 따위가 담긴.
기사식당에 가도 꼭 눈앞 벽에 걸린.
아이들 유괴단의 수괴를 잡는다는 내용이였습니다.
어,
제 얼굴이었어요.
사무실에서 물꼬에 관한 자료봉투를 어디 보내면서
지나간 신문자료를 복사하다 뭔가 잘못돼 버려진 종이가 있었겠지요.
허드렛종이상자에 던져졌을 게고
97년 9월인가 조선일보에 난 전면기사에 함께 실린 제 사진을 건졌을 겝니다.
한동안은 공동체 어른들이
돌아가며 범죄자가 될 확률이 크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발견한 놀이에
식구들을 다 집어넣고서야 시들해하니까요.
한동안은 제보하는 시민도 있을 테고
형사들이 잡으러도 다닐 테고
포상금을 나누는 문제로도 시끄럽겠습니다.

아이들이랑 하는 대동놀이에
그간 쳐져있던 마음까지 다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더니
같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헤다가는
마음을 죄던 일들이 얼마나 하찮던지...
그렇게 우주를 가슴 속에 담으며
밤엔 조릿대집 아래채 아궁이 앞에서 모두 둘러섰습니다.
사그라들고 있던 불에다 통마늘과 알감자를 넣었지요.
입에 남은 맛에 아쉬워 잠이 안올거라는 아이들입니다.
할만만 하면 쇠날마다 이 가을내내 뭔가를 구워보자 합니다.

“앗!”
채규입니다.
류옥하다가 연필을 쥔 채 방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는데
지나던 채규 목이 긁혔습니다.
난리 났겠지요.
채규 영락없이 주먹이 날아갑니다.
류옥하다, 뎀비지는 못하고 한바탕 울고는 씩씩대지요.
아이들 몰려듭니다.
둘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까지 높아지고
둘러친 아이들은 수습하겠다고 사건을 끼워맞춰보겠지요.
뭐, 또 변함없이
실수한 걸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일부러 그랬다고 우기며 열내는 채규한테
아이들은 네가 너무 하는 거라고 하고
분이 넘친 채규는 그런 아이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두엇이 울어댑니다.
그 소리에 샘이 달려가지요.
이게 보통 우리 채규를 둘러싼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오늘 미안하다는 류옥하다에게
알겠다고 마음 누그러뜨리고 있는 채규였습니다.
보고 있던 우리들, 그만 맥이 풀렸겠지요.
채규의 주먹에 모두 긴장하며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니.

남의 일이라곤 답체 관심없어뵈는 우리 혜연이,
오늘은 다친 채은이를 업고 와 상처 소독까지 해주고 있더이다.

이곳의 무엇이 우리 아이들 세상을 이리 만드는 것일지...
비와 바람과 가을 햇살과
어른들과 아이들이 참으로 조화로운 대해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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