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가을소풍

조회 수 1281 추천 수 0 2004.10.14 20:21:00

운동회 한 판 하자는 밥알식구들 바램을
모른 척 지나치기엔 이 가을이 너무 눈부셔,
가을 또한 못내 섭섭하여 이 대해리를 오래 서성여,
소풍이라도 가자던 오늘이었네요.
점심까지 먹는 걸로 밥알모임을 끝내놓고
월유봉으로 떠났습니다.
예닐곱 아이가 그려놓은 듯한,
한켠은 눕고 한켠은 가파르게 내려진,
멀리서도 봉우리 셋 눈에 쑤욱 띄는 게(거기) 말입니다.
수월치 않겠구나,
짙은 물빛에 깊이를 가늠하며 깎아지른 바윗길 사이로 들어섭니다.
뛰어들어 멱을 감을 것도 아니지만.
높지는 않으나 아주 깎아지른 봉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역시, 오를 것도 아니지만.
몇 발짝 옮겨놓으니
용 몇 마리쯤은 하늘로 올랐음직한 깊은 그림자의 내가 흐르고
자갈이라기엔 화낼 바윗돌들이 널려있습니다.
사람깨나 끓었을 여름이었겠습니다만
지금은 한산합니다.
"오늘 프로그램이 어찌 됩니까?"
누군가 묻습니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대로 지내려하지요.
어떤 시간에 무엇을 해야하는 일에 너무 익어 살지 않았더이까.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우리 아이들
("야,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나야지."
부엌에서 나와 책방 들어서자마자 애들이 외치는 소리들에
샘들이 늘 그런답니다)
먹을 것부터 다져넣습니다.
하나 둘 준비한 보트를 타기 시작하고
(여름 끝물, 밥알식구들이 마련해준 구명조끼도 입었지요)
한 켠에서 김영규님과 준형샘이 나무를 해오더니
어느새 활활 불 올랐습니다.
(어휴, 그 불 아니었음 젖은 몸들 어이 했을려나...)
고구마며 감자며 밤들이 아쉬웠지요.
내를 따라 이어진 길을 산책도 하고
눈으로 보트를 타는 축은 그들대로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저기 좀 봐!"
담쟁이잎은 어찌 그리 붉던지요.

(생략)
용서 안될 만치 말 안 듣게 섰는 바위에
아직 묻어있는 햇살 깔아
웅크리고 누웠다
많이도 노여웠구나,
급히 가던 냇물이 고개 돌려 아는 체를 한다
낙엽을 물들이던 가을빛도 등을 쓰다듬고
나뭇가지 사이 뵈는 양지바른 이쪽 무덤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눈을 뜨고 앉으니 세상은 여전할세
멀찌기 어느 틈에 왔나, 낚시줄을 던지는 두 사내
나도 슬쩍 그 찌를 타고 간다
상처가 아물라면야 세월도 필요하겠다만
피는 멎더구나, 월유봉에선

; '월유봉' 가운데서

가을이 빚은 색조처럼 환한 아이들을
어른들이 도란거리며 흐뭇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네가 있어 고맙습니다.
가을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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