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11.흙날. 흐림

조회 수 329 추천 수 0 2023.03.29 08:44:03


눈이 따가웠다. 미세먼지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할 일을 아니하겠는지.

밥벌이를 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봄이 왔다. 이 문장을 열두 번도 더 말하며 봄을 보낼 것이다.

봄이라기에 더운 며칠이었다. 오늘 낮기온 26.

아침저녁 쌀쌀하여 조금 더워도 속바지를 벗지 않았는데

오늘은 홑바지를 입었다. 겨울바지였긴 하나.

햇발동 거실에서 커다란 화분 넷을 현관문 쪽 데크로 뺐다.

(데크, 라고 쓸 때마다 바깥마루라거나 다른 말을 생각해보지만

역시 데크로 고쳐 쓰고 만다.)

 

봄을 기다리던 일이 있다. 어디 한둘일까만.

명상돔 바닥에 흙을 까는 일.

언 땅이 녹으면 시작하려던.

녹았으나 그 일에 이르기까지 다른 일들이 또 줄을 서 있었던.

오늘은 하자 했다. 세 사람이 붙었다.

창고동 뒤란 흘러내린 마사토를 긁어내고, 수레에 실어 옮겼다.

온실돔 문 앞에 붓고 삼태기에 담아 안으로.

좁은 바닥이 그럴 땐 어찌나 넓은지.

깔았던 비닐 위로 흙이 다 덮이자 수평을 봐야 했다.

고추지줏대 사이를 거는 비닐끈으로 가로세로 줄을 이었다.

네기로 바닥을 고르고 또 호미로 고르고

마지막으로 30센티미터 나무토막으로 미장질하듯 편편히 폈다.

아직 흙을 좀 더 깔기는 해야겠다.

힘이 좀 들면 이만만 해도 되려니 하고 후회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특히 흙을 퍼 나르거나 돌을 옮기는 일은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들이기.

쌓은 흙이나 돌이 안정되도록, 혹은 쓰는 몸이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마침 흙을 퍼오던, 쓸려 내려온 흙더미의 부드러운 쪽은 다 썼다 싶은.

그럼 다음에 다시 더하기로.

 

보도블럭을 옮겼다.

아침뜨락의 제습이 티피 앞에 있던 국화빵벽돌을 아래로 내리고,

묵은땅 가장자리에 있던 같은 벽돌도 실어와

돔 문 옆에 쌓았다.

그것으로 다 깔지 못하면 물결벽돌이나 사각벽돌을 쓰기로.

오늘은 이제 그만. 여기까지.

 

한 엄마의 문자가 닿았다.

아이가 잠들려다 갑자기 물꼬 가고 싶다.” 했다고.

그 말이 괜시리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여 이곳 살이가 무언가 힘든가 싶었다나.

그 아이를 둘러싼 요 두어 해의 복잡했던 상황을 잘 아는지라

짠했다.

꼭 그 말을 아이가 힘들어서 했다고 이해했다기보다

어딘가로 가고픈 그 마음에 막연히.

그런데 지금 여기가 좋아도 그 좋음 때문에 또 다른 곳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괜찮다. 그들은 툭툭 잘도 털고 잘도 일어나니까.

어른이 문제지. 아이의 말에 엄마가 덜컥 했을까 돌아봐졌다. 엄마가 잘 지내셨으면.

그의 마음도 봄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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