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19.해날. 맑음

조회 수 274 추천 수 0 2023.04.10 23:45:07


대여섯 살 아이가 집에서 머잖은 밭에 일하러간 아비를 보러 집을 나섰다.

그 사이 아비는 또 다른 밭으로 갔네.

아비를 못 찾은 아이가 울면서 걸어간다.

마을 어른이 쳐다본다.

대번에 어느 집 아이인가 알겠다.

그 아이를 잘 모르지만 그 아비를 안다.

그런데 그 아비 전화번호는 모르네.

마침 알고 있는, 그 아비의 형네로 연락을 한다.

자네 조카가 울고 있네.”

아이가 아비를 꼭 닮았던 거다.

그리고 엄마를 꼭 닮은 큰 아이가 있다.

두 아이를 둔 부부를 맞아 찻자리를 마련한다.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자라고 있다.

여기는 인제 용대리.

 

어른의 학교-황태덕장 작업 닷새째.

러시아 오호츠크해나 베링해에서 잡은 명태를(한국어선이든 러시아어선이든)

부산에 들여와 얼리고, 속초 등지에서 할복하고, 용대리 덕장에서 말리고.

10월부터 덕목을 세울 준비를 해서 한 달 내내 71팀으로 덕장을 만들던 일이

요새는 외국인 노동 용역으로 1주 만에 끝낸단다.

예전에 마을 청년들은 그 일을 하며

일이 힘들었던 대신 술 마시고 개구리 잡고 노는 재미라도 있어 견뎠다고.

그 시절엔 생태로 와서 비닐옷을 입고 현장에서 씻어가며 걸었다고.

2층 덕목에서 물이 얼어 미끄러져 떨어지는 이도 심심찮게 있었다 한다.

가장 추운 때 걸고 4월께 걷고.

지금은 자루에 넣지만, 예전엔 싸리 꼬챙이에 열 마리씩 끼워 말리고 착착 쌓았다고.

자루의 황태는 이후

물을 축여 두드리고 할복하고 펴고 벗기고 하는 과정을 거칠 거라고.

 

덕장에 중년의 남성이 나타나 어슬렁거렸다.

좋은 것만 넣어요!”

파태와 온전한 상품으로서의 황태를 선별하는 것에 고민하느라 자꾸 더딘 내게

좋은 기준을 던진 셈.

그렇지만 말리고 걷고 한 그 품들을 다 어쩌냐,

황태가 다 황태이지, 라고 대꾸해본다.

아줌마가 소비자라고 생각해보세요.”

, 저도 소비자인데 황태가 다 황태이지요.

모양새가 조금 흐트려진 거야 상관없지 않나요?”

요새 젊은 주부들은 까다롭다나.

“(당신,) 뭔가 권력자 같은 걸요.”

황태주인이요.”

, 또 알았다. 덕주가 있고 화주가 따로 있던 거다.

명태잡이가 있고, 수입판매상이 있고, 명태주인인 화주가 있고,

할복장이 있고, 덕장에 말려주는 덕주가 있고, ....

명태주와 덕주가 동일인인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또 알았다.

덕장은 내내 그리 덕목이 설치된 채 계절을 나고 다시 황태의 계절을 맞는 줄 알았더니

그걸 걷어 티피처럼 쌓았다가 이듬해 또 쓴다고.

명태 기름 먹은 덕목은 잘 썩지도 않는다지.

비오면 천막을 씌우기도.

덕장을 걷으면 밭이 되었던 거다.

거기 옥수수를 키워 그걸 삶아 도로에서 팔며 또 한철을 나는 이들이 있었다.

덕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어디로 갔나.

농사에 품 팔며 여름을 지난다지.

그런 일들을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하고 있었다.

 

최저임금제? 사각지대는 얼마든지 있다.

그건 최소 계약서라도 있는 일에서 쓰이는 낱말이다.

처음 이야기가 오고갈 때만 하더라도

최저임금은 보장한다고 했으나 실상은 또 그렇지 않았다.

그런 현장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하기야 노동자가 숙련기를 거친 후 그곳에 기여도가 생길 때까지 내리 작업이 되어야

사업자에게도 이득이 될.

그러므로 초보자가 숙련될 때까지 최저임금을 보장한다는 건

이후에도 그 인력을 쓸 수 있을 때 의미가 있게 되는.

적어도 21조만 되어도 최저임금에 도달은 하겠으나 홀로 하는 작업으로는 어림없었다.

여기만 해도 제때 작업을 위한 준비만 되어도 최저임금은 가능은 할 것인데,

현장 상황은 또 그렇지가 못했네.

예컨대 자루, 끈을 자르는 낫을 갈기 위한 숯돌, 자루에 황태와 함께 넣는 작업자명이 적힌 만보가 착착 바로 준비가 된다든지,

더하여 황태를 내리는 작업을 미리 해준다든지, 황태 덮었던 천막을 걷어준다든지,

덕목 아래 황태 자루작업을 위해 까는 천막을 옮겨준다든지. ...

 

학교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해 창문에 붙였던 뽁뽁이를 떼어냈다.

멧골 봄이 더디다 더디다 해도 오고야 마는 계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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