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22.물날.맑음

조회 수 362 추천 수 0 2023.04.11 23:55:11

 

어른의 학교-황태덕장 작업 이레째.

방 하나로 사는 재미가 있다.

화장실이 딸렸고, 방에 작은 냉장고,

베란다에 싱크대가 있어 간단하게 챙겨먹을 수 있는.

세탁실이 1층에 공용으로.

너른 살림을 건사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제 혼자살림을 살고, 일하고,

일찍 자고 일어나 수행하고,

책 한 줄 읽고, 글 한 줄 쓰고.

지금은 이곳에 있으니 이곳에서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 마을에도 아이들이 있고 부모들이 있고,

그래서 교사로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이 좋아 이곳에서도 물꼬 교무실 일들을 틈틈이 하고.

머무는 곳이 집이다! 머무는 곳이 물꼬이기도!

 

어제 제2덕장이 마무리 되었다.

1덕장에서 가장자리 수로 건너 계단식으로 낮아진 곳이었다.

해가 남았던 어제였으나 작업장을 옮기면 일이 끝날 시간이라

3덕장 장소만 확인, 숙소에서 한참 멀어진 곳.

아침에 일찍 나섰고, 30분 일찍 도착했으나 작업 준비에 그 시간을 다 쓰다.

야리끼리인데...”

오늘은 마지막 작업날이라 하니 한 덩어리 덕목 칸을 주었다.

1덕장에서는 9140, 2덕장에서 8120미와 780미를 자루에 넣었다.

이곳에서는 10180.

야리끼리, 현장 용어다.

야리끼루에서 온 말. 완수하다는 뜻.

그러니까 한 덩어리를 맡아 언제 시작하든 끝나든 일을 끝내면 되는.

못 끝냅니다.”

손이 더딘 사람은 아니나

혼자는 느렸고, 오늘은 끝나고 기다리는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 하니 양해를 구하다.

어차피 덕주도 내게 기대를 하는 건 아니었을.

황태자루를 실어내가는 트럭이 왔고,

막판에 덕주네 삼형제가 내 작업터에 붙어서 우르르 무서운 속도로 같이 작업을 하다.

한 사람이 끈을 자르고, 다른 이가 세고,

내가 받아 자루에 넣고,

또 한 사람이 차에 싣고.

초치기 하듯 마지막날을 그리 마감하였더랬네.

 

1자루에 2천원,

첫날 20자루를 채웠다.

모든 자루가 그런 줄 알았더니

9통과 8통은 2천원, 7통은 15백원, 오늘 한 10통은 28백원.

종일 일하고 하루 최저임금에 절반 겨우 해냈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최저임금을 받을 만큼 되는 건 아니었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겨우 넘어선.

떠나려니 손에 익었다.

저녁 약속 못 맞추나 했더니...”

무사히 나섰다.

일하는 동안 멀리서 가까이서 덕장 일을 하는 이들이 내 움직임을 다 알았더라나.

, 지금 저이는 황태를 세고 있네.”

, 지금 저이는 황태를 따고 있구나.”

숫자를 셀 때는 딴 짓을 못하니까.

그러다 주저앉아 황태를 낀 노끈을 자를 때면

있는 노래 없는 노래를 다 불렀더랬네.

이레 한 덕장일이었다.

오직 지금을 산 이레였다.

 

곁에서 여러 도움을 주었던 베트남 여인이 있었다.

시집온 지 15년 된.

곧잘 우리말을 하고 대단히 섬세한 낱말까지 아는 그였으나

전화로 하는 관공서 일은 힘이 들어,

좀 이물어졌다고 어제는 도움을 청해오기도.

미안해요. 작업 못하게 해서...”

온전한 밥벌이가 아니어 다행했달까.

오늘이면 동료로 끝이기 그 댁 초등 아이를 위해 케이크를 사주었다.

용대리 사람들의 생활권인 원통까지 나간 건 아니고 봉투로.

이 지역에서 번 돈은 이곳에서 쓰기,

책임여행 같은 개념으로다가.

고마운 인연이었다.

 

몸에 밴 비린내를 씻어내고 옷을 다 벗어 서둘러 빨래를 했다.

머잖은 곳에 사는 물꼬 바깥식구 둘이 위문을 오기로 했던.

멀지 않다고 하지만 시간 반도 넘는 길.

물꼬 땅이 넓다.

산을 내려오니 꽃이 피었네!”

그간 일 하느라 둘러보지 못한 풍경이었던지,

아니면 그 사이 봄을 향해 더 달린 기온 덕인지

만해마을에 옥매화와 산수유가 펴 있었다.

백담계곡의 아랫 줄기에서 화덕에 구운 핏자며 이탈리아 요리를 풍성하게 먹었다.

주인이 와인 대신 그네 냉장고를 털어 국내산 곡주 하나 30주년 기념주를 내주었다.

만해마을 뜨락을 걷고

숙소의 뜨락에서 야삼경까지 각자 지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곡주도 없이 차도 없이 어둠 속에서.

이만큼 살면 그리 허물이 없어지나 보다.

집안사를 편히들 나누고 떠나다.

사는 일이 좋을세. 우정을 나누는 일이 고맙다.

 

학교에서는 책방의 난로를 치워냈다.

겨울이 갔다.

주요 동선 안인 가마솥방의 난로는 더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

 

내일은 용대리를 떠나 설악동으로 가서 설악산 한 곳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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