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What we see; 우리가 바라보는 것.

평생 연필화를 그렸던 원석연과

소리를 주제로 그것을 시각화하고 은유하며 20여 년 작업을 해온 김기철의 전시.

더하여 오늘 낮 5시

원석연 그림에 이생진이 시를 붙인 <개미>(열화당 2019) 출판 기념으로

이생진 선생님의 시 낭독회가 있었다.

달마다 이생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인사동에서 시낭송을 하는 이들이 주로 모여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선생님의 제자도 여럿이었다.

낭독회를 여는 갤러리 대표님의 인사말이 있었는데,

그만 중간에 말문이 오래 막히셨더라.

뜻밖에도 나는 정작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남의 실수가 좋았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너무 번지르르하니까, 우리의 삶이 우리의 말이 우리의 글이,

그래서 그런 서툰 몸짓에서 감동이 더 일더라는.

진솔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래도(서툴러도) 되더라는!

서로 안면식은 없지만 그 대표님을 인사동에서 뵌 적도 있고

집안사와 갤러기까지 이른 여정을 들었던 적 있는데,

전해들은 성품마냥 사람내 나는 시간이었네.


마침 자하문에서 커피상점을 하는 선배가 내려와 동행했다.

언론인 김어준이 진행하는 충정로의 벙커도 들리고(일정은 없었지만),

부암동에서 통의동으로 자리를 옮긴 라 카페 갤러리에도 걸음 하다.

박노해의 사진전 <하루>전이 있었더라.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졋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박노해), 그런 하루!

땅 위의 누구나 맞는 하루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폭음이 울리는 땅에서도 그 하루는 있다.

물꼬에서는 아침해건지기를 하고 아침뜨락을 걷고

에티오피아 아낙은 여명에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고

미얀마의 소녀는 들꽃을 꺾어 성소에 바치고

안데스 고원 사내는 거친 논밭에서 밭을 갈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만년설산 아래서 공을 차고 야크를 몰고

일 나갔다 돌아오는 아비를 기다리다

엄마가 불러 들어가 저녁밥상에 앉는다.

저녁이 내리고 마을 사람들이 마실을 나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우리 모두 오늘 하루를 살았네.

어떤 하루인가는 저마다의 몫이리라.

살아 고맙다.


구도심 살리기 사업에 의견을 보태는 선배와 충정로 뒷골목에서 밥을 먹다.

도시 전체로 처음이었던 정선 태백의 경우 재생 시도가 도시를 더 피폐하게 만든 반면

한옥지구를 중심으로 한 전주나 마을 르네상스 사업의 수원은 성공의 예.

더불어 곳곳에서 구도심 살리기 사업도 한창.

쇠퇴지역 안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주거복지를 향상시키려는 의도에다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하는 사업일 테다.

그런데 기존 주민의 커뮤니티는 사라지고(젠트리피케이션),

지자체의 단기간 예산유치로 끝나고 다시 텅 비는 경우도 여럿.

대개의 이 나라 일들이 그렇듯 도시재생에도 호흡이 짧다는 느낌.

도시 하나가 태어나고 죽기에 걸리는 시간만큼

되살아나는 데도 그런 시간이 필요치 않을지.

자꾸 의도적으로 뭘 만들고 사람을 모으려 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없잖다.

그렇게까지 해야 사람살이가 영위 되는 건가 싶기도.

현재 지역주민과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의 협력에 기대가 큰 모양이던데,

도시 아니어도 사람이 산다, 살 수 있다!

60년대 이농현상의 시대도 아닌데

도시에서 살지 않으면 삶이 영위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 신기하다.

그런데 텅 비는 도시라고 토지대와 임대료가 싸지도 않고,

사람 없는 멧골이라고 역시 땅값이 싸지 않다니...


오후에 가서 밤에 돌아온 서울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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