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마당 살구꽃이 등처럼 피었다. 짧은 한철이다.

오후까지 봄비 내린 뒤 기온이 내려갔다.

 

어른의 학교가 있었다; 인형 만들기.

본이 있었다. 그대로 오리고 솜을 집어넣고.

몸체부터 만들어야. 옷은 당연히 그 다음.

솜을 쑤셔 넣는 게 아니라

얇게 떼서 차곡차곡 채워 넣기.

시간을 들이는 모든 일은 수행이고 명상이고, 그리고 감동이다.

 

발해1300호 기념사업회 일을 같이 하던 소희샘이

누비자켓이며 모자며 염색한 커튼감이며 물꼬살림에 요긴할 것들을 나눠주시다.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만난다.

영영 보지 못하기도 하고,

한 영역에서 만나 확장된 다른 영역에서 서로 또 만나기도.

같이 모임을 할 땐 그 모임의 목적 말고는 서로를 잘 모르다가

삶을 나누다.

지난한 세월도 한 인간을 꺾지 못했더라.

삶에 무슨 일이든 얼마든지 일어나고,

그래서 혹여 허물이라 말하지 못했던 것도 나이 들며 쉬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것들이, 특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이라면 더욱,

한 인간의 허물로 규정될 수 없음을 아는 나이들이 좋았네.

당신의 이야기가 고마웠고,

당신의 세월로 내 삶도 풍성해진 느낌이었을세.

 

한 도시의 서점에 갔다.

그 서점을 아낀다.

서점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곳에서 굳이 차도 마시고 책을 산다,

카페 같은 곳 가서 차 마실 일 여간해서 만들지 않는데도.

온라인보다 책은 비싸지만

마치 우리 동네 가게를 이용하듯.

 

자식을 키워 직장을 잡고 첫 월급을 받으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속옷을 선물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 오래 살라 사주던.

품앗이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 선물을 보내오곤 한다.

저 쓸 것도, 저 챙길 사람도 부모님에서부터 줄줄이 있을 것을.

고마운 일.

아들도 자라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

첫 월급 받았다고 아부지한테 돈을 보냈다길래

가끔 등록금을 보탰다고 그랬나 보다 했더니 엄마 통장에도 꽂았다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일, 사는 일의 재미가 그런 것.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에도 그 재미가 있겠으나.

자식 고생한 것 못 쓴다고들 하던데,

마침 장만하려던 두어 가지 들여 그 아이의 마음을 담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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