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4 흙날. 는개비 마른비 개고 / 진고개~노인봉~소금강


굳이 뭘 가르치고 배우려 들지 않는다,
다만 걸으면서 그 자체가 깊은 배움일 것이다,
그렇게 산에 오릅니다.
학기를 시작하고 끝내면서 늘 오르는 산,
이번에는 좀 밀렸지요.
3월에 5월에 오르는 한 차례씩을
지난 5월과 이 7월에 오르게 되었네요.
아무렴 어떤가요,
중요한 건 우리가 올랐다는 것 아닐는지요.

느지막히 시작합니다.
해는 길고
요새는 리조트도 겨울스키 말고도 놀 일이 많았지요,
산책로도 좋고.
뒹굴고 나무 사이를 걷고 잔디밭에 앉고
토끼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래도 낮은 여전히 길어
짧지 않은 산길이지만 해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을 겝니다.

오대산을 오릅니다.
백두대간 꼭 한가운데쯤 되지요.
오대산은 소금강지구와 월정사지구, 두 곳으로 나뉩니다.
소금강지구는 진고개~노인봉~소금강, 13.5 Km를 걷는 길이지요.
길이 단순해서 지도도 챙길 것 없이
그저 길 따라 가면 됩니다.
비만 오면 땅이 질어서 진고개라는 해발 960m인 휴게소에서
산에 들었습니다.
동쪽으로 노인봉, 서쪽으로는 동대산이 솟았지요.
노인봉을 향해 갑니다.(12:10)
비가 오다 가다 안개 잔뜩 몰고오더니
마른비를 뿌리다가 등산을 시작할 무렵엔 말라주었지요.
먼 길 산 오르긴 딱 좋은 날씨입니다.
산채비빔밥과 죽으로 도시락을 꾸리고,
비빔밥을 판 집에서 오이도 얻었지요.

단식을 하는 동안 가벼워진 몸은
수련시간에도 표가 납디다.
몸이 훨씬 잘 열리지요.
발레를 하던 옛 시절이 있었나 싶을 만큼
무릎 관절로 여간해서 다리를 넓게 벌릴 수가 없는데,
단식 때엔 제법 거뜬히 몸이 펴진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지요.
몸을 너무 또 많이 폈던 겁니다.
왼쪽 고관절에 무리가 와 아주 절뚝거리며 다닌 이틀이었습니다.
그런데 산에 들면 몸이 열리고 몸이 그 산으로 스며들 준비를 한다지요.
산은 우리들의 모든 치유가 있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까치수염과 구릿대와 싸리꽃이 반깁니다.
그런데 겨우 길만 보입니다.
안개 짙고 는개비 조금씩 다시 날렸지요.
“저것 좀 봐,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지 않아?”
조망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아이는 그 기쁨으로 채우며 걷고 있었습니다.
눈개승마와 쥐오줌풀, 꼬리조팝을 줄줄이 지나치고
북방에 가깝다는 걸 증명하듯
남도 산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단풍나무들을 지납니다.
길과 그 길섶만 겨우 보여주는 산길을
오직 걸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간간이 마주 오는 이들 편에 안부를 듣습니다.
지나온 삶이 눈앞을 스쳐가고
저 안에서 또 다른 자아가 나와 말을 걸었습니다.
가끔 참좁쌀풀이 보이고 금마타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꼬리조팝나무지 싶은 거며 참배암차조기도 봅니다.
멀리서 보면 산 정상의 바위가 노인의 하얀 머리와 같다는
노인봉(1338m)까지 3.9Km.
나무계단만 지나면 완만한 오르막입니다.
평지처럼 편안한 숲길이지요.
노인봉 정상아래 250m 지점이
진고개와 소금강과 정상으로 나뉘어지는 노인봉 갈림길.
노인봉으로 올랐다 내려옵니다.
장관이라는 노인봉인데, 겨우 노인봉만 보입니다.
다람쥐들이 어찌나 바쁘던지요.
발 사이로 먹이를 갉으며 막 오갑니다.
노인봉에서 뻗어 내리는 돌산 사이로는
소금강, 주문진읍, 연곡뜰, 사천뜰이 이어지고,
멀리로는 짙은 강릉 바다가 펼쳐질 텐데,
안개로 분간이 어렵지요.
남쪽으로는 황병산이 우뚝 솟아있을 게고
왼쪽으로는 소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입니다.
서쪽으로는 겹겹이 둘러쳐진 오대산 자락의 봉우리들이 이어질 테지요.
안내판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내려왔답니다.

갈림길에서 소금강 쪽으로 몇 m만 내려서면
대피소입니다.
도시락 열기 그만이지요.
호주로 휴가 가는 길에 들렀다는
고등학교 교사인 캐나다인을 만납니다.
수다를 좀 떨다가 자연스레 합류하여 같이 걸었지요.
영 걷는 새가 편치 않아보였습니다.
무릎을 좀 다쳤다네요.
로키산맥이며 두루 산을 걷는다 하니 초행자이기 때문은 아닌 듯하고
근육이 잠깐 놀라 그리 된 모양입니다.
소금강까지 13.5킬로를 어찌 걸어가려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세우고
가방에서 파스와 압박붕대를 꺼냈지요.
파스는 그가 잘 모른다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붙이라 하였습니다.
하도 고마워 하길래 아이랑 다른 나라에 머물 때를 들려주었지요,
그곳 사람들의 친절로 얼마나 잘 살아냈던지를.
아이는 벌써 저만치 가버렸습니다.
내내 홀로도 걷고
어쩌다 만난 이와 동행을 하고
아이도 그러면서 가고 있겠지요.

황병산(1407m)과 노인봉(1338m)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만들어낸 계곡 소금강,
율곡의 청학산기(靑鶴山記)에서 따온 말이라지요.
소금강 들머리의 표석 '小金剛'도 율곡의 글씨라 하였습니다.
대피소에서 낙영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더러 다소는 지루하다고들도 하나
폭포에 이르면 다 무색해지는 말입니다.
물이 날리지요,
면사포를 두른 듯 날립니다.
마침 비가 많았던 뒤라 수량도 넉넉하여 장관이었지요.
한편 얼마나 단아하던지요.
구석구석 물길을 들여다보느라
걸음은 자꾸 더뎌집니다.
꼬리치레도룡농도 있다는데...
새미가 파득거리며 물에서 노닐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섯 시간 산행이라 하였으나
것보다 좀 빠른 우리 걸음이니 다섯 시간 좀 넘으면 산 아래겠구나 했는데,
웬걸요, 이 속도라면 해도 지겠는 걸요.

낙영폭포에서 시작된 물길은 광폭포와 삼폭포를 지나며
그 빠르기가 배가 됩니다.
거기 다른 세계가 펼쳐져있어
마치 달창을 통해 우주를 보듯
숲에서 빼꼼 고개 내밀고
그 세계로 설컹 들어가 버리고 싶고는 하였지요.
나무다리 철다리를 몇 개씩 지나고
건널 때마다 다리 위를 이편에서 가고 저편에서 오며
계곡을 요리조리 뜯어가며 풍광을 눈에 담았습니다.
나이 스물 즈음에 이곳에 왔던 적이 있지요.
소금강에서 노인봉으로 걷고 진고개로 갔던,
누구랑 갔는지 그 얼굴들 다 기억에 없으나
소금강의 산풍광은 그대로 남았답니다.
그 때까지 살았던 세월만큼 더 살다가
다시 이 길을 거슬러 내려올 줄 어이 알았겠는지요.

암반이 길게 펼쳐진 백운대에서 만물상까지가
소금강의 절정이라던가요.
귀면암과 금강송이 바로 이곳이지요.
도대체 어떤 언어로 이것을 표현해낼 수 있겠는지요.
안개를 빠져나오자 빗방울도 걷히더니
다시 몇 방울씩 날리는데
그것부터가 인간세 같지가 않더니
어느새 몸이 다른 세상으로 발 하나 걸치고 있었습니다.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봐 문득 무서움증이 일기까지 하데요.
그래서 선계를 가지 못하고 말았더랍니다.
분비나무와 노린재나무, 청괴물나무(?), 서리나무가
군데군데 장식처럼 서 있데요.

학소대 지나 구룡폭포에 이르자
여기야말로 소금강의 백미구나 다시 최고타령을 하게 됩디다.
누구는 이곳을 정갈한 폭포라 이름하던가요.
정말 적당한 높이에 적당한 넓이로 내립니다.
아홉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져 있고
구룡호에서 나온 아홉 마리의 용이 그 폭포 하나씩을 차지하였다는 구룡폭포,
아래서는 아래쪽 세 곳만 볼 수 있었지요.
상단의 아홉 번째 폭 구멍파인 바위는
신라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가
군율을 어긴 병사에게 사형을 집행했다는 사형대였다 합니다.
상팔담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어지면서
가파른 사면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아미산성 흔적이 나타난다는데,
산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굴러 떨어뜨린 돌에 맞은 적군들이
"아야!" 소리를 냈다하여 아야산성이라고도 한다지요.
마의태자가 3천 군사와 함께 신라 부흥을 노렸던 이곳입니다.
그 군사들이 밥을 짓고 식사를 했다는 식당암 암반을 지나자
협곡은 마지막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서서히 바위 사이로 휘돌아들어
그 깊이가 아주 깊고
절벽은 감히 침범을 꿀 수 없는 요새로 만들고 있었지요.

그런데 도대체 아이는 어디만큼 간 걸까요?
올라오는 이들에게 더러 물어보지만 못 봤다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랬지요,
아빠랑 딸래미랑 가는 건 보았다고..
아하 그리 보였나 봅니다.
이제는 아예 사람들에게 그리 물어보지요.
“빨간 옷 입은 애랑 아빠가 가는 거 보셨어요?”
식당암 지나 연화담 거쳐 십자소가 나오고
장장 이십 리길 계곡은 갈무리지점에 이르러
비구니들이 지키는 소금강 유일의 사찰 금강사를 만납니다.
길은 어둑해오는데
금강사 지나 다리에서 건너오는 아이를 마주쳤지요.
대웅전 부처님전에 나아갔다 오는 사이
아이는 계속 거슬러 오르다 문득 무섬증이 들었나 봅니다.
만날 만한 곳에 아무도 없고 어둠 내리니
다시 얼른 내려가고 오르고를 반복했던 모양이지요.
어느새 같이 걷던 아저씨도 저만치 가고 홀로이더라나요.
눈물이 배였데요.
이제 세상 속으로 가거라 자주 말했는데,
아직은 더 커야할까 봅니다.
“나중에 에베레스트도 오르고 싶다!”
어떤 경험 앞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꿈을 키워가는 것이겠지요.
두런거리며 다시 얼마를 내려서니
어느새 주차장 떡 나타나데요.(18:40)

주문진이 멀지 않은 곳입니다.
저녁도 먹고 바닷것들을 좀 사서 돌아오지요.
오는 차편도 무사히 만나
대해리에 접어드니 새벽 세시였네요.

또 산에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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