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계자 닷새째, 8월 6일 쇠날

조회 수 1569 추천 수 0 2004.08.09 14:53:00


< 석기봉이 품고 있던 보물 >


"우리 집 보물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저래요."
이제는 세상을 떠난 제 가장 가까운 친구가 썼던 카피랍니다.
오래 전 아이템플인가 하는 학습지회사에서 낸 광고방송이었지요.
"엄마, 보물이야!"
여느 아이처럼 제 아이도 두어 살부터 밖만 나갔다 오면
눈을 감기고 손에 올려놓는 것들이 숱했지요.
돌이기도 하고 나뭇잎이기도 하고 어데 가서 만든 것이기도 한.
이제 그놈의 보물
좀 안줬으면 좋겠네 싶을 만치
방 구석구석 얼마나 늘여져 있는지...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며 후크선장...
보물을 찾아 떠났던, 우리를 아직도 설레게 하는 이름들 아니어도
흥부네 박에서도 나오고
옛이야기에서 도깨비가 잘도 실어다 주던 보물은
얼마나 매혹적인 낱말인지요.
물꼬도 보물지도를 갖고 있습니다.
무려 다섯 장이나 되지요.
폐교된 지 5년이 흐른 96년 가을께부터 대해리 이 학교를 써왔는데
2004년 상설학교로 문을 열 준비를 하면서
이곳저곳 뜯고 고치고 하였겠지요.
그러다 나온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들고 아이들이 길을 나서게 된 게지요.
이른 아침을 먹고 7시 45분 학교를 나서
2킬로미터가 조금 못되는, 마을 골짝 들머리 흘목까지 걸어갑니다.
버스로 물한계곡까지 들어가서 산오름을 시작하니 9시네요.
석기봉.
해발 1242미터의 민주지산보다야 100여미터 낮지만
결코 만만하달 수 없는 봉우리지요.
무수한 이가 허탕을 치고 돌아와도
다시 가고 또 가는 게 보물 찾는 길 아니던가요.
그 보물이란 게 무엇일지도 모르면서,
헛걸음이 될지도 모르면서,
꽈리처럼 부푼 가슴을 안고 나섰더랍니다.
많았던 비로 길이 온통 패였습니다.
며칠 이어진 천둥 번개 따른 큰 비 때문인지
사람 하나 만날 일 없습니다.
정한이가 묵묵히 저 앞에서 걷고 있고
희준이와 류옥하다 역시 뒤조 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합니다.
낙엽송 숲을 지나고
편백인 듯한 높고 높은 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형 식물이 하늘 바로 아래까지 만들어놓은 무늬들을 올려다보며
탄복 오래한 1지점,
다시 허리띠를 조으고
힘을 아껴가며 산을 오르는 법에 대한 안내도 받습니다.
새끼일꾼들과 샘들이 짊어진 먹을 거리들이
마음이 쓰였네요.
큰 아이들이 들만한 비옷 가방, 돗자리 가방, 물들을 나눠봅니다.
2지점으로 향했지요.
용수 희정 희원 종한 형준 지준 류옥하다 정하 범규
그리고 무열이형과 제가 먼저 닿았습니다.
말을 아꼈던 아이들이 그제야 삼삼오오 쭈그려 앉아
얘기를 나눕니다.
모두가 다 모이자 사탕을 쥐어주었지요.
3지점까지 갈 여비입니다.
끊어진 길 탓에 원래 가자 하던 길을 돌아 다른 길을 찾기도 했습니다.
희민이가 그만 벌에 쏘였네요.
"벌이 알았던 게야, 네가 말 안듣는 줄."
"제가 말을 안들어요?"
진지하고 능청스럽게 자신은 도무지 모르겠는 양입니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희민이라니까요.
민주지산과 석기봉이 이어진 능선 길에 있는
3지점(물론 다 우리들이 붙인 이름에 불과하지요)은,
그러니까 산 정상이라 불러도 모자랄 것 없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을 증명하느라
가파르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아이들은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며
더러는 울고 더러는 이를 악물고 더러는 그저 해보라지 합니다.
아, 그렇게 꼭대기에 닿고
이제 앞 패와 뒷패의 간극이 너무 크게 벌어졌네요.
"안내한대로 보물은 이 3지점에서 석기봉인 4지점 사이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다 모일 동안
힘을 낼 수 있는 이들이 마저 보물을 찾아 떠나보지요."
어른 둘에 아이 일곱이 붙었습니다. 하준 류옥하다 용수 동호 강은 정하 경민.
"정훈아, 가자!"
큰 형아 정훈이에게도 부추겼지요.
올라오는 동안도 큰 형아 몫을 잘해냈던 그입니다,
재미도 주고 신바람도 일으키고 넘어지는 동생들 바라지 다하고.
그렇게 보물전사 열이 다시 삼십여분을 능선 따라 걸었습니다.
이 산이 얼마나 높은 지를 실감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지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오갑니다.
석기봉 쪽으로만 오르는 이가 없지
삼도봉이며 민주지산, 각호산으로 오른 사람들이 꽤나 되는 모양입니다.
"야, 니들 장하다!"
덕담 꼭 던져주고 가는 어르신들입니다.
저 까마득한 골짜기 아래 마을이 뵈고
민주지산을 빼면 이보다 더 높을 것 없는
석기봉 바로 아래 섰습니다.
그리고 한쪽 낭떠러지에서 우리는 보물지도가 가리킨 나무를 발견했지요.
위험해서 우리는 멀찌기 떨어져있고
영삼샘이 힘을 썼습니다.
해가 뜨는 방향 한 곳을 팠지요,
그러나 게가 아닌 가봐요.
방향을 조금 틀어 파봅니다.
어, 뭐가 걸려요.
그런데 힘을 쓰던 영삼샘 그만 낭떠러지 저 아래로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엉덩이를 얼른 바닥에 붙여 위기를 넘기고
다시 땅을 팠더라지요.
잠시 갈등이입니다.
예정대로라면 2시 20분 물한계곡에서 영동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것이었지요.
에이, 안되면 걸어가고...
우리를 위해 예비 되어있을
피서 온 수많은 차들도 생각했지요.
아무렴 방법이 없을라구요.
이제 느긋하게 팝니다.
어!
그래요, 거기 아주 오래 전에
학교가 폐교되기 직전 아이들이 기념으로 묻었을 거라 짐작되는
보물 상자가 검은 비닐에 싸여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고
풀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 또 상자예요, 그 안에 또 상자, 그리고 보자기,
실제 얼마 되지 않을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요.
보자기 안에 다시 두 겹의 상자, 마지막으로 한지로 곱게 싼
주머니 두 개 나왔는데
가만히 흔들어 보던 정훈이,
이야, 옛날 돈인가 봐요,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러리라 예상했지요.
그런데 어머,
거기엔 아이들이 빚어 말린 것 아닐까 싶은
작은 목걸이들이 있었답니다.
보물전사들이 모두 하나씩 걸고
나머지는 다시 처음처럼 잘 싸서
길을 되돌아옵니다.
밧줄을 타기 네 곳, 기어오른 곳이 서너 곳.
3 지점의 아이들은 밥을 먹은 뒤 쉬고 있더이다.
먼저 달려간 아이들의 보물발견 소식에
멀리까지 마중 나온 아이들도 여럿입니다.
"나도 갈 걸..."
"올라오니까 벌써 떠났어요, 갈려고 했는데."
"선생님, 오니까 가셔서..."
발이 아파 절절매던 '순돌이' 지선이조차도 아쉬운 목소리입니다.
"가기를 정말 잘했어요."
의기양양해진 정훈입니다.
좀 더 뻐기느라 나머지 보물은 학교를 돌아가서 풀기로 하였지요.
"목걸이 언제 줘요?"
아니나 다를까, 열댓 번은 묻는 세원이 입니다.
다시 짐을 수습하고 이제 내려가자 합니다.
"오던 길로 가요?"
갈 길이 걱정일 테지요.
그 가파른 길을 다시 돌아가자니.
"그래도 이 길이 제일 수월합니다."
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지요, 이 산 속에 집 짓고 살 건 아니니까.
가파른 몇백 미터를 벗어나자
남은 길은 길도 아니지요,
여유만만입니다.
"이제 밥만 생각해도 침이 넘어가요."
지호가 배고픔을 전하자
"나는 과자봉지만 봐도 침이 넘어가."
같이 걷던 다혜가 그러데요.
학교의 푸세식 화장실에 불편했던 몇들은
너른 풀화장실에서 똥도 누고,
오줌이야 천지가 화장실이었지요.
아침부터 아파서 토하기도 했던 하준이도 너끈히 내려오고
못하지 싶어 학교에 남아있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도 나왔던
우리 성찬이도 어찌나 잘 걷던지,
선짐샘이 곁에서 애 많이 썼지요.
"아저씨!"
영삼샘 곁에서 승호도 잘 내려오고
오를 땐 젤 끝에서 젊은 할아버지를 안타깝게도 했던 윤호는
열호들(나이 어린)과 함께 젤 빨리 달려 내려갑니다.
물가에서 마지막 산물을 마시고 세수도 하고
(아, 우리의 우진 선수 제 안경을 밟고야 말았더이다.
이놈의 자슥, 말로는 차마 못뎀비고...)
1지점에서 마지막 길을 위해 감자와 물을 다 해치웠지요.
늘 하늘의 도움이 넉넉한 물꼬는
5시에 돌아나가는 물한리 버스를 잡을 수 있었더랍니다.
흘목에서 내려 학교에 걸어들어오니 딱 6시입니다.
저녁 때건지기 시간이지요.
산,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이미 자연이 위대한 프로그램이더이다,
뭘 하고 말고 한답니까.
(이제사 하는 고백인데
민주지산과 석기봉이 갈라지는 길,
그나마 보름 전에는 있던 입산금지 줄이
이제는 아예 안내표지판조차 사라져 있었지요.
길이 많이 패여 겨우 아는 이나 가라 그 말이지 짐작했더이다.
샘들로선 큰 도전을 한 셈인데
저들이야 아는지 모르는지
동네 산 하나 오른 듯 힘이 넘쳐라 하고 있네요.)

"어, 진짜?"
"봐요, 오늘이 금요일이죠, 우리가 토요일 가니까 내일이죠."
"그래?"
"네, 글집 보면 산오름이 금요일에 있잖아요."
"그러네, 세상에..."
이틀이나 되었을까 싶은데 낼이면 간다더이다.
마지막 밤이 늘 그러하듯
강강술래로 한바탕 놀며 아쉬워도 하고 좋아라도 했지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요."
장작불가에서 정후가 외쳤더이다.
닷새가 하루만 같았다고도 하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고
재미났던 시간을 되씹기도 하고
또 오마 약속도 하고...
까짓것, 우리 새끼들 돌아가면 세 끼 다 라면 좀 멕여주세요...

* 보물 시나리오에 손발을 맞춰준 영삼샘, 특별히 고맙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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