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분들

조회 수 1568 추천 수 0 2004.09.21 23:05:00

지난 주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김행수님이시랍니다.
“아, 옥선생님이시네요.”
저를 반기긴 하시는데, 제가 당신을 알 리는 없을 게다 싶으신 듯 합니다.
포도땜에 한 전화인데, 좀 길어졌지요.
“기억하구말구요...”
첨엔 인사치레다 싶으셨던 모양이더이다.
“흔치않으신 성함인데다...”
함께 논두렁으로 힘이 돼 주시는 박순조님 소식도 묻고
우리의 빛나는 새끼일꾼 상헌이의 근황도 물었지요.
이쯤이면 기억력이 유별나다 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어줍잖게 꿈을 좇아가는 듯 보이던,
도대체 물꼬가 뭘 하긴 하려나 싶던 그 시절,
도저히 믿을 구석이라곤 없음직했던 그때,
마음 이만큼 열고 아이를 보내고 논두렁이 돼 주셨던 분들,
그분들이 어찌 잊힐래야 잊힐 이름자일지요.
아름이, 4학년이던 그 아이 벌써 고 3이랍니다.
지금 미국에 있다지요.
공부를 꽤나 하는 모양인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일리노이 주립대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를 향해 가고 있다데요.
아, 상헌이는 그 오랜 꿈, 신부수업을 올 해 시작했습니다.
간간이 저가 소식을 전해오지요.

오늘도 전화 한 통 받았습니다.
계자에 아이를 보낸 엄마랍니다.
“준형(준영인가?)이, 준영이...”
역시 포도가 남았나 묻는 참이었습니다.
“아,...”
생각납니다, 희멀그레한 녀석.
그렇더라도 틀릴 수도 있고, 같은 이름 다른 이일 수도...
“어머님은 요새 뭐 하셔요?”
하던 일 계속 하신답니다.
“모텔하셨더랬지요?”
“어머, 그걸 다 기억하세요?”
이어 준형이의 누이 얘기도 물었지요.
“보경이지요, 준형이 누나?”
그 많은 아이들 가운데 어찌 기억하냐 당연 물으십니다.
“하는 일이래야 애들 보는 일인데...”
물론 눈에 더 많이 익은 아이가 왜 없겠는지요.
보경이,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야무지고 참하고 순한 아이였더랍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진하게 잊히지 않는 건
벌써 칠년여도 전,
물꼬가 어디로 어찌 갈지 모를 망망대해 돛단배처럼 있을 녘
믿고 아이들 맡겨주신 분들이며
주머니 털어 살림살이를 보태주신 분들인 까닭이지요.

늘 고맙습니다.
그 힘으로 물꼬가 여기 이르렀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언젠가 도리어 물꼬가 나눌 날도 오겠지요,
삶 그거 생각보다 길고 긴 거니까요.
다시 머리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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