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나무날 맑음, 102 계자 넷째 날

조회 수 1561 추천 수 0 2005.02.07 14:18:00

2월 3일 나무날 맑음, 102 계자 넷째 날

눈 내린 산마을에 밤새 산짐승들이 다녀갔습니다.
내놓은 발자국을 좇으며
이른 아침 곡식을 저어만치 뿌려둡니다.
아이들과 같이 나와도 좋았으련...

아침밥을 먹더니 저마다 교실을 찾아 들어갑니다.
'점자'는 좀 큰 녀석들이 알아서 앉았네요.
지윤 세인 호정 도윤 승은 현휘가
점자표를 보고 자음 모음을 찍고 이름을 찍더니
관심분야로 나아갑니다.
세인이는 하던 가락이 있어 찍는 속도도 외는 것도 빠르네요.
소리 없이 점자를 찍는 저이는 도윤이고,
호정이랑 현휘는 하다가 힘이 드니 샘한테 바라는 게 많습니다요.

다른 애들이 만든 것을 보고 그렇게 하고파 모인 한땀두땀,
주현 세영 현서 우식 대호 인영 지후 세훈이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우식이는 다른 애들을 가르쳐주기까지 하고,
현서는 주머니가 달린 쿠션을 만들었습니다.
세훈이는 장갑을 두개나 만들었는데 잃어버렸다지요.
"찾으면 연락 주께"
순범이 한데모임에서 소리쳤지요.

한코두코도 바빴네요.
덕헌이는 도와주는 것을 거절하고 기어이 혼자 해보겠다더니
그렇게 25코를 떠내더랍니다.
아무래도 엄마한테 너무 작아 동생 줘야겠는 도훈이,
"아무나 맞는 사람 줘."
한데모임에서 누군가 조언했지요.
영석이는 한데모임에서 앞에 보여주러 나와서도 내내 뜨고 있더이다.
안경까지 엇따 빠뜨리고 안보이는 눈으로
(점심 때 놀다가 잃어버렸어요.
"선생님, 눈이 이상해요. 잘 안보여요."
"잘 닦아야지."
그런데 알이 하나 빠졌던 거디었습니다!).
아빠 손목에 팔찌가 꼭 맞을 거라고 기대에 차있던 도현이는
엄마 꺼에 이제 도전하겠다 하고,
영환이 기환이는 엄마 반지를 완성했습니다.
지혜는 제법 많이 뜬 것을 아까워라 않고 제대로 하겠다고 다 풀데요.

교실만한(정말?) 태극연을 들고 나와서
우리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건 동영이었어요.
1시간을 넘게 엉덩이를 붙이고
차근차근 연을 만드는 전 과정을 꼼꼼하게 배우며
물꼬에서 느낀 것들을 승렬샘이란 승현샘이랑 잘 나누기도 했답디다.
저 큰 걸 어찌 들고 갈까 걱정이 많은데
류옥하다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기차에 달고 가."

달력에는 둘이 들어가 있네요.
그림이며 글씨며 느릿느릿 꼼꼼하게 하는 성욱이는
평가글을 글집에 쓸 때도 찬찬히도 기록을 하더라지요.
현석이는 사흘 동안이나 질기게 달력에만 들어갔어요.
내내 역이나 기차가 등장하던 그의 그림,
(분명 집안에 기차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이가 있을 거라고들
현석이를 붙들고 물어봤지요.
엄마는 동생 키우고
아빠는 증권회사다닌대요.
그런 사람 없답디다요.)
10월에 세종대왕이 나왔잖았겠어요.
"죽기 직전의 모습이예요."
세종대왕이 베개 베고 누워있었지요.
누군가 한데모임에서 말했습니다.
"하기야 내내 기차만 그리면..."
열린교실이 끝나고 현석이는
샘 수고했다는 쪽지를 다 내밀더라데요.

뚝딱뚝딱에서는 연통둘레 발을 기어이 붙였습니다.
정후가 구멍 뚫는 요령을 터득했더래요.
불 위에 송곳을 올려놓고 오래 차분하게 기다리더니
한 방에 구멍을 내더랍니다.
모두 속도감이 붙었다지요.
대나무는 연통으로부터의 열기로 따뜻도 하여서
두 손을 감싸 쥐며 모두 좋아라 고마워라 하였더이다.

그리고 '다 좋다',
다싫다를 폐강시키고 등장한 새 교실입니다.
아이들은 그 이름 때문인지 의기 충만하게도 들어왔더라지요.
뭐든 하고픈 아이들 지원이 다원이 류옥하다 그리고 수진이조차.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나요, 예쁜 카드를 만들어서.
그러게, 이름, 그거 잘 지어야 한다니까요!

점심 먹고 현미샘 지민샘 승렬샘이 먼저 나갔습니다.
현석이 덕헌이 따라서 집에 간다 신발을 들고 나서데요.
"일단 신발은 좀 갖다 놓고 와 봐."
현석이부터 가마솥방 불가에 앉습니다.
"내가 다른 놈들 다 보내도 너는 못보낸다."
왜냐면 여기 뭔가를 배우러 왔는데
너는 예서 가르치는 것을 아직 못익혔기 때문에 안된다 하였지요.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법!
"알겠니?"
"네."
단박에 인정하고 돌아섭니다.
이제 덕헌이,
재미는 있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프답니다.
샘 얘기도 다 알아듣지만,
그래, 알아는 듣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픈 걸요.
약이나 잘 챙겨먹으라 하고 저는 일어섭니다.
저도(자기도) 무엇을 더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가 보고픈 며칠이 뭐 그래 큰일도 아니니까.
그냥 저만 보면 생각이 나는 게지요,
왜냐면 엄마 아빠 보고프면 절 보랬으니...

점심을 먹고 들에 갔습니다,
비료포대 들고.
물이 닿은 길은 꽁꽁 얼어있네요,
날이 꽤 풀렸다고는 하나.
자칫 잘못하다간 미끌거리다 냇가로 떨어져 내리기 십상이겠습니다.
수로를 따라 만들어진 눈썰매장은 얼음 썰매장이 되어 있구요.
속도가 무섭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수로 가의 언덕 쪽으로 길을 내 개미떼마냥 오르고
그래서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은 썰매의 속도는 더욱 올랐겠지요.
겁이 좀 난 아이들은 초급코스를 자연스레 고르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고급코스와 초습코스는 잇는 대형코스가 개발됩니다.
"너무 재밌어요."
덕헌이네요.
"집에 간다메?"
"아니요."
글쎄요, 정말 그는 더는 집에 간다 아니할까요?

교생실습을 나가면 그렇다데요.
2학년 때는 막 이상에 대해 얘기한답니다.
천직으로서의 자리라든가 그런 얘기들이겠지요.
3학년 때 나가면 교사들이
동료교사와의 관계, 애들 다루는 법에 대해 알려준답니다.
드디어 4학년,
애들 안다치고 집에 잘 돌아가면 된다, 수업 안해도 되니까, 한다지요.
사고를 막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을 향해 마악 첫 발을 내딛는 이에게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의 그 깊은 의미를
더 많이 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현서가 다쳤습니다.
눈썰매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눈썰매장이 아니라 얼음썰매장에서 내려오는 아이들의 속도는
어른 가슴을 여러 차례 덜컹거리게 하였더이다.
도중에 아이들을 죄 불러 다시 안전하게 타는 법에 대한 안내가 있었지요.
그때 한 아이 축대에서 외발걷기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현서였습니다.
"그러고 있을 때 위에서 타고 내려오는 아이랑 부딪히기라도 하면..."
얼른 내려오지만 두 차례나 더 주의를 주어야 했지요.
주현이랑 세영이가 튕겨져 나갈 듯한 광경을 보고
아이구, 이러다 정말 사고 나지 싶어 의논이고 뭐고 없이
먼저 발길을 돌려 학교를 향했더랍니다.
"주현아, 세영아, 내가 왜 바로 돌아가자 한 줄 아니?"
저들이 먼저 압니다.
넘들은 안봤으니 모르겠지만 저들 자신은 내려오는 순간 아찔했던 게지요.
현애샘이 끝에서 아이들을 다 확인해 길로 보냅니다.
고이 걸을 리 없는 아이들이지요.
얼어있는 길도 놀잇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서 선수 다시 길가로 갑니다.
축대 너머는 시내지요, 제법 깊은.
"또!"
그리고 내려오는가 싶어 가까이 계시던 샘이 고개 돌렸다는데
그 순간 비명이 들렸더랍니다.
샘이 눈 떼자 고새 또 올라가 당한 변입니다.
서넛을 뺀 나머지들은 이미 학교 뒤편에서 모여
이제 아이스링크 가볼까 하고 젖은 옷이며 장갑이며를 털고 있는데
바로 끝에 있던 서넛 덩어리에서 사고가 난 게지요.
남자샘들이 산에 나무하러 다 올라가있던 터라
보조로 갈 샘이 마땅찮아 류옥하다가 불려나옵니다.
이럴 땐 웬만한 어른 못잖지요.
명백하게 자기보다 힘이 약한 상황의 사람에겐 너그러우니까.
외투를 입고 오지 않아 누가 좀 벗어 달라 하니
현서의 친구 도훈이 의리를 발휘해 류옥하다에게 빌려줍니다.
"전화기 좀 챙겨줘."
"종이에서 현서 이름 찾아 주민등록번호 챙겨 놔 줘."
"현서, 수건 좀 대 줘."
"이제 수건 떼."
어느새 다친 애가 있나 싶게 둘은 자잘거려댑니다.
"형아, 이제 불량식품 먹으면 안돼.
불량식품은 백혈구의 힘을 약하게 하거든.
그러면 세균에 감염이 됐을 때..."
"나도 알아."
아이들의 수다란 참...
"현서 자니? 머리 좀 부축해 줘."
"지퍼가 턱에 닿일지 모르지 좀 내려 주고."
큰 병원을 가면 혹 더 예쁘게 꿰매지 않을까
고개 넘어서 김천제일병원까지 갑니다.
병원에 닿아서야 추워해서 보니 양말 다 젖어있는 현서네요.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줍니다.
발 시려워 혼났어요.
꿰매고 있는데도 우와, '강적 수다' 현서.
"마취주사 몇 번 놨어요?"
"이 수건(얼굴 덮고 있던) 떼면 안돼요?"
"몇 바늘 꿰맬 거예요?"
"다 됐어요?"
현서 두 손을 잡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그의 귀에 가만히 속삭입니다.
"현서야, 턱이 움직이면 예쁘게 안꿰매질 것 같애."
그제야 입을 다물고 기다립니다.
응급실 문을 나서니 이제 배가 고프다는 애들입니다.
오뎅을 사와서 요기를 좀 해봅니다.
집에 연락을 할까 잠시 망설였지요.
(그런 순간에도 집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현서선수)
'엄마가 안다한들 다른 조처를 할 것도 아니고
상황은 이미 끝났는데 전화하면 걱정만 늘지...'
"마지막 날 전화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하세요."
어쨌든 현서 사건으로 아이들은
아이스링크로 가고자 했던 꿈을 접어야했습지요.
또 한 번 우리는 거대하게 우리를 돕는 어떤 힘에 대해 고마워했더랍니다.
세상에,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머리를 부딪히기라도 했더라면,
더한 사고를 막아준 그 힘에 말입니다.
어른들 말씀 따나 액땜했다 싶었지요.
물꼬, 늘 하늘이 돕는다 싶어요...

저녁을 먹는데 순범이 현석이 논쟁이 한창입니다.
프랑스는 식탁에 포도주가 없음 안돼,
날마다 귀족처럼 먹는대,
포도주가 있어야 하는 건 이탈리아야,
그러니 이탈리아가 귀족이지,
그리고 여러 역사 지식이며를 늘여놓는데,
어유, 아는 게 어찌나 많은지...
그런데 듣는 건 안되고 서로 제 말만 합니다.
이를 어얄꼬,
우리들 대부분이 가진 비애지요.
'대화'할 줄 모르는 이 사회의 슬픔이지요.
정말 우리는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나,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를 향해 귀 기울이고...
우리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고, 이곳에서 그 연습들을 하고 있지요.

류옥하다와 세훈이가 한데모임 진행을 맡았습니다.
어느 순간 류옥하다가 혼자하고 있네요.
"열린교실에서 한 거 가질러 갔어요."
그런데 세훈이 나타나니 류옥하다가 뭘 속닥거리고 나갑니다.
"얼마나 급했다고..."
쉬하러 가는 모양입디다.
둘이서 그렇게 자리를 지키며 진행을 하데요.
하루지낸 얘기들도 하고
열린교실 자랑도 하고
책방 문제도 잘 해결합니다.
책방이 자꾸 너저분해지면 차라리 닫자는데
"열고자 하는 사람은 열고(잘 정리하려는 마음을 갖고)
닫고자 하는 사람(잘 정리할 준비가 안된 이)은 닫자."
결국 각자 마음의 문제로 돌립니다.

아이들이 동화를 듣다 잠이 들고
샘들은 여느 때처럼 난롯가에 앉습니다.
뜬금없이 동인샘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읖조려요.
"그는 별을 본 게 아닙니다."
어머니를 보고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비둘기, 강아지들을 보고
이제는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을 봤다는 겝니다.
요새 읽으신다는 <오두막 편지>도 잠시 꺼내시더니
그 산중에서 홀로 사는 삶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별을 보며 별을 보지 않고 떠나간 애인을 본다면 못견딜 겁니다.
별을 쳐다보며 별을 보고 나무를 보며 그 나무를 보고
바위를 보고 그 바위를 보며 달을 보며 달 자체를 보니..."
그러니 산중 고독 가운데서도 살아지는 걸 게다는 말씀인가 봐요.
우리 오늘 밤 별을 보자십니다.
다른 것 보지 말고 별을 보자 합니다.
그래요, 별이 얼마나 초롱거리는 밤인지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보려구요,
거기에 투영되는 것 말고 그냥 아이들을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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