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숫자를 센다.

몇 사람이 먹을 밥상이냐, 양을 가늠하느라 묻고

수저를 놓기 위해서도 묻는다.

동그랑땡을 몇 개씩 먹을까,

밥을 나누면서도 개수를 센다.

생활 구석구석 숫자를 셀 일은 널렸다.

 

아침 해건지기에서 대배 백배를 하면서도 숫자를 센다.

사실 그 숫자가 그리 의미 있는 건 아니다.

대충 백 언저리에서, 조금 못 미치거나 넘치거나 가까이에서 멈춰도 된다.

숫자를 세던 이들이 말하길

어느새 잊는다고.

그리고 안내하는 이를 따라 끝에 이른다고.

? 대체로 몸으로 오래 한 일이라 몸으로 세는 편.

나 역시 잊을 때가 있으나 오래 몸으로 익힌 것이라 호흡으로 그 숫자에 대개 이른다.

 

어제부터 황태덕장이 어른공부터이다.

09시 출근, 18시 퇴근. 낮밥 1시간.

일은 간단하다.

덕목에 걸려있던 엮인 황태를 내려 노끈을 자르고 자루에 넣는 일.

어제도 숫자를 셋고 오늘도 셋다.

9(명태 대가리의 크기를 말하는) 140미를 자루에 넣는 일.

어제 세 자루를 쏟았다. 숫자가 의심스러워.

오늘은 시작하면서 한 자루를 쏟았다.

아니 좀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하며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맞겄지!”

그건 내 생각이고.

상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일성 아니겠는지.

개수가 틀리다면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초기에는 개수가 틀린 불량자루가 있기도 했을.

열 마리씩 방향을 바꿔가며 넣고, 끝내는 방향과 높이를 가늠해서 넣었던.

그 왜 동전을 셀 때

열 개씩 쌓고 다음부터 일일이 세지 않아도 같은 높이로 놓아 계산하지 않나.

그처럼 한 거다.

그런데 생물이라는 게 만들어진 크기가 아니지 않나.

큰 놈도 있고 작은 놈도 있고, 황태가 놓인 위치로 서로 잘 맞물러 높이가 낮을 수도 있고.

그러다 다섯 마리씩 일일이 세게 되었네. 상품이니까.

저기 다른 덕목 아래서 일하던 베트남 여인이 가르쳐준.

숫자를 세던 내가 자주 먼 곳으로 마실을 떠나기도.

그걸 불러다 또 숫자를 세고.

마치 호흡명상 하다가 천지로 가는 자신의 생각을 부르고 또 불러와 호흡을 지켜보듯이.

명상이 따로 없을세. 나날이 명상이고 순간이 다 명상일세.

 

어디나 물꼬 인연들이 있고,

오늘은 오색에서 넘어온 지원군이 있었다.

그 편에 오색 어르신 한 분이 쌀이며 간장이며 된장이며 김치며 보냈고,

논두렁 분이 과일이며 빵이며 들여 주었다.

 

일찍 자기로 한다. 더는 무엇을 할 수 없겠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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