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가면 새로운 낱말을 줍는 즐거움이 있다

그곳에서는 아무렇게나 뒹구는 말.

그러나 나랑 처음으로 마주쳐서 싱그러운 말.

지난 어느 걸음에는 째복이 그랬다.

서해안에 바지락이 있다면 동해안(양양 수산항이 유명한)에 째복이 있었다.

민들조개 비단조개를 일컫는.

물놀이 하다 발에 치여 쓰윽 잡을 수 있는, 널린 조개로

크기나 볼품이 쩨쩨하고 보잘 것 없다고 째복이 되었다는.

명주조개에 치여 대접 못 받는 백합류이나 국물맛이 일품.

오늘은 날 온다더니...”라는 말을 들었다.

맥락상 비로 들었다. 비 소식이 있었으니.

맞다 한다. 비가 온다더니, 라고 한 말. 그렇다면 비와 동일하게 쓰인 낱말.

비 뿐일까? 궂은 날의 준말로 그리 쓴 게 아닐지. 눈일 수도 있을.

붙들고 물을 상황이 아니어 지나쳤으나

지내는 동안 물어보아야겠다.

날 온다는 말은 기다리는 날이라는 의미로도 읽혔네.

 

여기는 인제 용대리 황태덕장.

09시에 소개한 어르신네를 가서

같이 현장으로 갔고, 바로 작업을 안내 받다.

거기는 벌어먹을 게 없어요?”

“그러게요...”

무어라 답할 텐가.

일한다. 어른의 학교 현장이라고 하자.

겨우내 말린 황태를 걷어 내리고, 끈을 자르고, 자루에 집어넣기.

요새는 덕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드물다지.

춘천에서 봉고차를 타고 온 열 명 가량의 태국인들이 있었다.

용역 반장 일을 하는 여인만 한국인.

황태를 걸기 위한 덕목을 세울 때도 요새는 용역회사에서 외국인들이 들어온다는.

2인으로 짝을 맞춰 작업한다고.

한 명이 황태를 내리고 끈을 자르면, 다른 한 명이 자루에 넣는.

15년을 덕장에서 일했다는, 가위로 끈을 잘라가며 일하는 베트남 여인이 1인 작업.

그리고 내가 있었다.

 

조경일도 그렇고 농사일도 그렇고

그 작업현장에 특화된 기구들이 있다.

정작 돈은 그들이(농자재상이라든지) 번다는.

덕장도 그러했다.

베니어합판에 낫을 거꾸로 고정해서

황태를 잇고 있는 노끈을 당겨서 자르도록 만든 작업대가 있었다.

자루에 잘 집어넣기 위해 쇠꼬챙이로 만든 사각 바닥에 세로로 네 귀퉁이를 세운 자루잡이.

거기 자루를 넣고 네 귀퉁이에 꼬챙이를 끼우면

입을 벌린 자루로 황태를 쉬 넣을 수 있는.

재활용 자루처럼 말이다.

 

1통에서 10통까지 나누는 황태 크기.

9통은 140미를 자루에 담는 것이었다.

심지어 작업자 실명제라.

'9/ 140/ 영경/ ** 덕장'

성이 생각이 안 났던지 덕주는 이름만 적어왔다.

자루마다 작업자 용지를 넣고 지퍼를 채워야 한다.

용지라고도 하고 종이라고도 하고 만보라고도 하던가.

그리하여 나는 또 '만보'를 알게 되다.

인부에게 일 한 가지를 끝낼 때마다 한 장씩 주는 표,

그 표를 세어 삯을 주는 것을 만보라고 하는.

현장용어를 넘어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낱말.

한자 없는 우리말이었다.

 

밤새 바람이 어찌나 거친지 후두둑거리는 빗소리인가 내다보기도.

간밤에도 그러했는데.

여느 때도 그런 바람 많다는 여기는 용대리.

덕장의 황태가 겨울을 났을 그 바람.

게다 종일 비 내린다는 예보였다.

하여 작업이 하루 더 밀리려나 했더니 웬걸, 그저 바람이 소식을 대신하고 있었다.

덕장은 용대리 풍력발전기들 가운데 한 기 바로 아래 밭이었다.

오가며 보았으나 그리 가까이서 들여다본 적 없어 신기해라 자꾸 고개를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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