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흙날 맑으나 바람 찬 날

조회 수 1564 추천 수 0 2005.03.13 17:37:00

3월 12일 흙날 맑으나 바람 찬 날

봄학기를 여는 산오름이 있었습니다.
해발 1111미터의 '황악산'.
길은 그리 험하지 않으나
꽁꽁 언 얼음길을 타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산오름이었지요.
젊은 할아버지가 바빠지셔서
올 해의 산행은 논두렁 두어 분이 함께 해주기로 하셨습니다.
김천의 직지사에 차를 세우고
앞 패엔 제가, 뒷 패엔 논두렁 박주훈샘이 같이 오릅니다.
가방엔, 가마솥방 주인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물꼬김치김밥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맵습니다.
능선길이라지만 얼음은 반질거리고
곁은 낭떠러지라 부를 건 아니나 아주 가파른 경사지입니다.
거창 YMCA에서 왔다는 한 이가 산을 내려오다 불러세우고 조언을 하셨지요.
"참, 선생님이 용감하시네."
그런 순간, 우리가 늘 얼마나 무식하게 위험으로 달겨드는지,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게 얼마나 많은 지를 문득 생각케 되지요.
"아유, 운동화에..."
아이들의 행색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옛이야기의 무슨 계모처럼,
중무장한 선생에 비해 아이들의 꼴새가 안됐다는 듯도 한데,
그 시선을 알기라도 했는데 큰 놈들이 변명을 해줍니다.
"우리 선생님은요, 무릎이 안좋으셔서..."
강원대 백령산악회라고 소개한 분들은
약품 상자를 꺼내 파스도 주고 물도 채워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십니다.
오르내리는 그 타인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진취성(?)을 검증받고는 하지요.
아이들도 어깨 으쓱하고.
그런데 그렇게 오가는 이들이 건넨 먹을 것들을
어느 녀석이고 혼자 먹어뿌리는 게 아니라
쟁여놓고 같이 먹자합니다.
(워낙 토막토막 끊어져 오르고 누가 뭘 받았는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사람이 자고로 의리가 있어야지...
정상에서 한 자리 모여 다 부려놓으니 한 가방입디다.

가끔 타자를 통해 우리의 진실을 볼 수도 있지요.
그 타자가 치우치지 않은 건강한 눈을 가졌다면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는 귀한 말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주훈샘이 여러 말씀을 건네셨지요.
오늘 고생 좀 하셨습니다.
특히 뒤에서 계속 도와야했던 지용 정근 도형이로 힘드셨을 겝니다
(그간 젊은 할아버지가 하신 역할이지요).
니가(물꼬가) 참 대단한 일을 한다, 시데요.
"부모들도 해봐야겠더라."
아이들을 이해하는데도, 또 물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겠다십니다.
남자 아이들의 자잘한 갈등을 보면서
(산오름 속에 어느새 해소되어 있고,
어느 순간 아이들에겐 힘겨움조차 온통 즐거운 행위가 되어있었지만)
물꼬가 학습교육, 보육만이 아니라 사회교육까지 해야 되겠데라시며
물꼬의 교육 범주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생각했다시지요.
역시 이 곳에 아이를 보내고픈 소망을 가지고 있는 선배님은
더 세밀한 관찰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간 물꼬를 오가며 아이들을 여러 차례 보기도 하셨고,
아이 둘을 키운 아비이므로,
그의 얘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했지요.
"크게 장악하고 도와줄 아이가 있으면 좋겠던데..."
'형님'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했고,
그래서 교사가 참 어렵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에 대한 귀한 말씀도 주셨지요.
새기겠습니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장한 우리 아이들입니다.
영하 10도라는 바람 찬 날에 얼어붙은 길을 너끈히 다녀온 이들이지요.
오르는 길은 암행어사 놀이로 한껏 웃게 했고
내려오는 길은 눈썰매를 타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더랍니다.
펄럭이는 깃발부대놀이는 또 어땠게요.
어떤 어려운 조건도 즐기는 아이들의 긍정은 도대체 어데서 나오는 걸까요?
기어이 비로봉 정상을 밟고,
눈꽃 핀 나무들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질러대던 소리들 속에
새 봄의 결심을 실었더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오름은 정말 훌륭한 공부구 말구요.

아,
제가 오늘 처음 디카란 걸 들고 갔는데
어, 그 바람 신(심한) 정상에 아이들 주욱 세워놓고
사진을 박으려 했겠지요.
근데 꺼져버려요,
배터리가 다 됐다는 겁니다.
마침 그때 세 산사나이를 만났더랬는데
디카 그녀석 쓸만 하기도 하지요,
찍어서 메일로 보내주신다셨습니다.
"제가 집사람한테도 물꼬 보내보자 얘기를 했는데..."
물꼬를 아는 분들이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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