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5도의 아침,

마을에 사람이 드문 설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시대 멧골 풍경.

그래도 설이 오고, 떡국을 끓여 먹었다.

올 설은 물꼬를 다녀가는 걸음도 따로 없다.

지나가는 걸음에 들리거나 여기서 명절을 쇠겠다는 이들이 더러 있으나.

보육원 아이들도 자라 저들 짝을 만나니

이제는 시댁이나 처가댁으로 갈 곳들이 생긴다.

더욱 고즈넉한 설이다.

 

며칠 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아흔넷 양금덕 할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 이행을 두고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라 정부는 말했지만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협상안이 일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굴욕적인 협상'이라 규정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금을 한국 기업이 대납하는 정부안이었다.

"내일 죽더라도 한국에서 주는 더러운 돈은 받지 않겠다!"

정부안을 규탄하는 광주지역 60개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에서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에게 돈을 받더라도 일본이 무릎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돈도 받지 않을 거라 했다.

바라는 건 오직 일본의 사죄라고.

설 연휴 이후 서울에서 한일 국장급 협의를 이어간다고 했다.

강제동원 문제를 매듭짓고, 일본의 수출규제를 풀어 관계를 정상화한다니 반가울 일이겠으나...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싸웠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열여섯 살 소녀는 중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일본행을 택했지만

미쓰비시 공장으로 가 비행기 부품을 닦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일에 동원됐다.

일본이 광산과 공장 업무에 징용한 한국인 수는 약 15만 명으로 추산.

이름하여 근로정신대.

전쟁터에서 성적 착취를 당한 위안부랑은 또 다른.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에 소송을 제기한 아흔아홉 이춘식 할아버지 등과 함께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전은 1990년 일본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 기각을 끝으로 최종 패소,

이후 2012년 다시 한국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4년이 흐르는 동안 같이 소송을 제기했던 다섯 가운데 세 분이 세상을 떠났고,

해당 기업들과 법적 공방이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5월 출범한 우리 정부는

전범기업 대신 우리 기업 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놓고 일본 정부와 협의 중이란다.

설이 지나고 가장 기다려지는 다음 소식이 이것이라.

 

양금덕 할머니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곱씹는다.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갔다 온 사실을 알고는 정숙하지 못하다며 이혼들을 당하기도 했다고.

그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덧붙였던 말.

위안부 피해자들도 일본에 취업을 미끼로 한 사기에 속거나 납치당해 강제로 끌려갔다고,

그런데 그 아픔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위로하기는커녕

마치 전염병에 걸린 사람 대하듯 피하고 오히려 경멸했다고.

세상인심이란 게 그러하다.

내 일일 수 있거나 내 피붙이일 수도 있는 일.

그리 여기고 나면 함께 싸울 수 있게 된다.

함께 싸워야 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 모두 우리 새끼라.

그래서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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