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90일수행은 마지막 날이 가까운데

수행은 자꾸 힘을 잃는다.

세상으로 나갔다 올라치면 그만 흐름을 잃고

안개 속 시야처럼 몸도 균형을 놓친다.

호흡명상으로 흐름을 챙기는 아침.

 

들어왔던 이가 떠나자마자 다저녁에 비가 흩뿌렸다.

어두워지며 눈비가 되더니 자정을 넘기며 굵은 눈이 펑펑 내렸다.

벌써 제법 쌓인 눈,

새벽 3시 달골에 있던 차를 아래 계곡으로 내려놓았다.

물이 많은 눈은 언 눈과 다르게 또 미끄러웠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더랬다.

 

아침 10시가 좀 지나 한 신문사에서 찾아들었다.

서울 걸음에 만날 수도 있었으나

대해리 안에서 보기로 한.

지난해 말 냈던 책이 계기였고,

그 안에는 30년도 넘어 된 인연이 걸쳐도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해오는 기자(논설위원)였다.

이 계절에 찾아드는 낯선 이의 방문을 꺼린다.

겨울90일수행 기간이기도 하고, 사실 그것은 순전히 이 골짝의 추위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꽃 피는 봄이 오면 만나자고도 할 것이나

한편 고즈넉한 이때가 깊은 만남에는 또 좋을 수도.

그가 추위 혹은 거침과 낡음에 편할 수 있다면 말이다.

친구의 친구라

멀리서 벗이 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 마음으로다가 기다리며 설렜고,

같이 있으며 즐거웠고, 보내고 벌써 다음이 기다려지는 만남이었다.

 

흔한 인터뷰처럼 묻고 대답하며 시작하지 않았다.

물꼬에 들면 물꼬 한 바퀴가 있으니

공간을 돌며 물꼬 이야기를 전하는.

우리가 키우고 말린 시래기국밥으로 낮밥을 해먹었다.

달골에 갔고, 아침뜨락을 걸었다.

아고라의 말씀의 자리에 번갈아 앉으며 서로가 산 삶을 나누었다.

80년대 후반을 같이 관통해왔던 우리는

그 시절에 대한 말이 많지는 않았으나

그때 했던 몸짓이 삶에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짚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여전히 그 시절의 건강한 생각을 잊지 않고 있음이 고마웠다.

앞으로도 우리가 그리 살아갈 것이란 생각에 더욱 고마웠다.

우리 나이에 이르도록 상처 없이 어찌 살았겠는가.

나는 그에게 한 스님의 노래 하나 햇살 자락처럼 불러주고 싶었네.

민중가요를 만들던 청년이 스무댓 살에 홀연히 사라지더니

스님이 되어 돌아와 노래를 불렀더랬다.

그 댁 여섯 형제 가운데 넷이 그리 절집으로 갔다.

당신 떠난 지도 10.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고, 남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네.

 

사진을 잊을 만큼 이야기가 넘쳤다.

스산한 겨울 풍경, 그래도 몇 장을 찍었다.

피사체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지 않도록 기자가 말을 자꾸 시켜주었다.

흐려가는 하늘이어 아쉽더니

사진 찍을 무렵 잠시 해가 나와 주었다. 물꼬 날씨의 기적 그런 거.

여섯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못다 한 이야기 있을 수도.

빠진 이야기라면 글로 서로 더할 수 있을 테고.

저녁 7시에 서울에서 있다는 약속에 맞춰 낮 430분에 떠났는데,

9시가 다 돼 약속 시간에 닿았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차가 꽉 막혔더라지.

얼마나 많은 일이 우리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지.

그러므로 그리 용 쓸 것 아니다. 너무 애쓸 것도 아니다.

세상은 흐르고, 다만 우리는 정성을 더할 뿐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의 인생을 읽는 일.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결과, 지금의 결과가 미래이듯.

물으러 온 이였으므로 자신의 말은 아꼈을 것이나

우리의 몸에는 과거가 어떤 식으로든 담겼다.

흔히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단이 그에게서도 묻어났다. 물론 사실은 모른다.

건강한 세상을 위해 힘껏 살아온 생으로 보였다. 고마웠다.

자신의 생에서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이는 몸놀림이 보였다.

그런 것 아니어도 모두 수고로운 생이라.

우리 서로 만난 적 없으나

어쩌면 자신이 선 자리에서 서로의 생을 받쳐주었을지도.

 

한편 그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내 생을 또 돌아보았나니

교육이니 공동체니 별 할 말이 없음을 알았다.

그저 오늘을 산다.

내일도 오늘을 살겠다.

다만 방향성은 있다, 선한 세상으로, 아이들을 지키는 쪽으로.

 

잘 도착했다는 문자에 답했다.

먼 걸음, 애쓰셨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리 즐겁다니요!

여유 있게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머지않은 시간 안에 다시 해소해야겠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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