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15.물날. 맑음 / 회향

조회 수 401 추천 수 0 2023.03.13 23:45:40


겨울90일수행 갈무리.

긴 겨울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즈음 북쪽으로 난 이 골짝 모진 추위도 견딜만하게 된다는.

(하지만 오늘 우리는 아직 남은 겨울의 휘날리는 도포자락에 연탄을 500장 때늦게 더 들였다)

90일수행이라고 별 것이 있는 것도 아니나

좀 더 깊이, 좀 더 천천히

아침을 맞고 정오를 맞고 저녁을 맞고 밤을 맞는 날들이었다.

한 목숨이 여기 이르기까지, 한 목숨을 살려낸 시간에 대한 감사.

불가에서는 이런 날을 회향이라 했다; 회전취향(廻轉趣向)

자기가 닦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돌아가도록 한다는.

수행하는 동안 쌓인 공()과 덕()이 있다면 부디 다른 이들에게도 돌려지길.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서 주위를 밝히고,

향이 자기 몸을 태워서 주위를 향기 나게 하는 것이 바로 회향이라.

더러 같이 한 도반들이여, 고맙습니다!

계자에서 함께한 어린 벗들 또한 고마운.


지난 13일 대설주의보로 설악산이 통제되어 걸음이 막혔고,

내일 다시 산 앞에 선다.

아직 통제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풀릴 거라 예상 한다는

대개 통제가 풀려도 점검하는 하루가 있고 그 다음날에나 산에 들 수 있는데,

눈이 많지 않았으나 바로 들어갈 확률이 높은.

 

 

물꼬를 다녀가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던 기자분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기사가 어렵다면 내가 선명한 언어를 갖지 못했던 까닭은 아닐까 반성하였네.

지금쯤 기사를 출고했겠다 싶은데,

기사에 반영은 되지 않더라도 글월 하나 보내고 싶었다.

누군가 물꼬를 더 이해한다면 고마울 일.

 

(...)

한 때는 버틴 적도 있었겠지만

내내 그랬다면 못했을.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활시위 같았던 시절도 있었을.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바위산은 뻣뻣한 다리로는 걸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힘을 빼고 꿀렁꿀렁 춤추듯 해야.

당위와 책무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기꺼이 선택한(작은 헌신으로 누군가를 돕는) 즐거운 삶의 길로!

그리 흘러갑니다.

 

얼마 전 물꼬의 지금을 이리 말해준 이가 있었군요.

물꼬는 꿈은 상설학교였는데

결과물은 교육자들을 키워내는 허브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 물꼬에서 보고 배운 대로 우리 애들 잘 키우며 연극을 가르치는,

여러 해 건너 보내온 물꼬 30년차 선생 하나의 메일이었지요.

 

딱히 유효기간이 있는 질문은 아니었겠으나 답하고 싶은.

2001년부터 일곱 개 나라 공동체에서 아이랑 세 해를 보냈더랬지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러시아

펜실베이니아의 Hundredfold Farm에 묵던 첫날 밤,

지구 정 반대편에 살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우리가

같은 지향점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에 놀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웃고 울었더랬습니다.

몇 나라의 공동체를 찾아다닌 길은

이미 물꼬 안에서 우리가 하거나 하려고 하던 것들을 만난 시간.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이가

결국 행복이 자신의 앞마당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랄까.

괜찮다, 이리 가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했을 거여요.

방향이 정해지면 일이야 쉽지요.

쭈욱 가면 되는 거니까.

단순하고 충만하게 살기. 그것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딱히 이룬 것은 없으나 생이 성공했다 할 만하다. 충만하다.

내가 전인적 인간으로 다가가고,

그것이 인연들을 이롭게 하고 나아가 좋은 세상에 보탬이 되기.

대단한 걸 할 생각도 없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오늘을 잘 모시려 한다. 기꺼이 작은 헌신과 함께.

그러다 끝 날에 이르러 스스로 곡기를 끓거나 산으로 들어가기를.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직접적 메시지?

애 잡지 말고 당신이나 잘 살아, 부모님들께 그런 농을 던지고는 합니다.

우리나, 우리라도 바르게 걸읍시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

애들이 어디 가르친 대로 되던가요. 그랬다면 세상이 어디 이리 시끄럽겠는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애들을 안내해야.

하여 부모님들과 통화를 하기라도 할 땐 애들 안부 잘 안 묻습니다.

그들은 그들 생명력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니.

우리 어른들이야말로 참말 걱정이지요.

우리가 저 뻗쳐오르는 힘찬 어린 날이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생각을 바르게 잘 다듬고,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게 중요한.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놓치지 않기를.(이게 교육의 한 축 아니겠는지!)

이웃을 걱정하고 애쓰는.

기후위기의 해결법도 바로 거기 있다 생각하는.

 

물꼬의 작은 살림도 누군가와 늘 나눕니다.

그런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믿는.

세월호에 아이를 잃은 엄마 하나가 그런 말을 했더라구요.

그동안 사회적 목소리에 관심 없었는데,

, 내가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싶더라나.

이웃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지는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길일.

그래서 물꼬는 우리말 지킴이에게, 작은 공부방에, 전국특성화고교 노조에, 티벳독립에 후원을 하고,

얼마 전에는 우크라이나에 작은 손을 내밀었고,

그리고 곧 튀르기예를 도울.

 

물꼬는 이리 살아요.

누군가는 또 저리 살테고.

저마다 한 생을 살아나가고 있을 테지요.

영차!

마음 좋기로. 나를 구하면 이웃도 구할 수 있지요. 그러면 세상을 구하는 거구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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