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통제와 해제를 반복하며 며칠이 흘렀다.

13일 달날부터 엿보던 걸음이었다.

하지만 가지 못한 날도 그 나름 좋은 날이었다.

세상의 모든 날이 좋다, 라고 썼더랬다.


08:30 내설악 용대리에서 일행을 만나 아침을 먹다.

백담사와 용대리를 오가는 마을버스는

설악산 통제와 맞물려 있다.

해제와 더불어 버스도 다니는.

아침까지 운행이 불투명하다 했지만

길이 괜찮은가 올라가는 관리자들을 만났고,

아마도 버스가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통제가 갓 풀린 날에는 산에 드는 사람이 드물기 마련.

산 아래서 대기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해제 안내를 보고서야 움직이게 되니.

버스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첫 매표로부터 30분 뒤에 출발.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거쳐 수렴동 대피소에서 차를 마셨다.

논두렁 훈샘이 동행했고,

국립공원 시설관리를 오래 해온 두 사람을 만나 같이 걸었다.

암반에 꽂아놓은 기계가 무엇인지를 알았네.

갭게이지? 크랙게이지. 계측기? 균열폭 진행 측정기였다.

구조물에서 발생한 균열의 진행 상태를 파악하여

원인을 찾거나 보수방법을 결정하는.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만나는 이들이 여럿이겠건만

역시나 통제 뒤라 그런지 만난 이들이라고는 두엇이 전부였다.

소청산장 곁에서 묵을 거라 느린 오름이기도 해서 또한 그랬겠고.

갈 사람들 벌써 다 올라갔을.

오르는 내내 발목이 빠지는 눈길이었고, 아이젠은 필수였다.

 

봉정암에서도 더러들 잤다.

너무 좋아 계획 없이 자기로 결정했다는 이도 있었다.

1박 만원에 무려 최대수용인원이 500.

미리 사찰에 전화 예약을 해야 되지만

궂은 날이라면 받아주는.

시간이 맞다면 오르내리는 이들도 밥공양을 할 수 있는.

 

소청산장에 이르자 싸락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설악산 2월답게 바람 세고 몹시 찼다.

멀리 짙은 구름이 산을 덮쳐오고 있었다.

취사실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중청대피소에서 묵기로 한, 사진 찍는 두엇이 카메라를 세워

아래 봉정암과 봉정암을 낀 용아장성, 그리고 오른쪽으로 공룡능선을 담았다.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저녁이 내릴 때까지 더는 문을 열지 않았다.

한 청소년이 혼자 취사실에서 떨고 있었다.

입성이 부실해보였다.

친구랑 둘이 속초 여행 왔다가 무작정 왔다는 산오름.

갖은 고생을 하고 대청봉을 올랐는데,

다행히 장년의 사진작가를 만나 아이젠도 한쪽 얻고,

중청에 잠자리도 마련하고,

그 길로 소청 사진 찍는 데까지 따라온 거라고.

내일은 중청에서 오색으로 내려갈 거라 와 본거라고.

친구는 대피소에서 쓰러지다시피 쉬는 중.

제발 준비 좀 하고 산에 오르라는 간곡한 대피소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열여덟에 만나는 설악산 대청봉이라.

어쩌면 그의 생은 대청봉으로 앞과 뒤가 갈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네.

 

현재 소청대피소는 예약을 받지 않고 있었으나

설악산을 드나드는 동안 맺은 인연들로

밤에는 대피소 직원 한 분이랑 국립공원 관리인들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때 산장지기를 꿈꾸던 나는 그렇게 그들 삶을 엿보다.

4,3제로 산을 오르내리고 있는 그들이었다.

오르는 날 포함 네 밤을 자고, 내려가 세 밤을 자고.

험악했던 날,

구조 요청을 받았으나 산을 올라온 구조대들이

바로 앞에 있는 이를 구할 수 없었던 빚짐에 대해서도 어렵게 들었다.

부디 산에 들 때는, 겨울산이라면 더욱, 준비하고 들어가시라.


설악산의 밤, 바람이 바람을 메어치고 있었다...

 

설악산 대청봉 백담코스는 총길이 23.9km.(설악산에서 가장 긴 코스?)

긴 거리에 견주어 난이도가 높지는 않으니 1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소청에서 석양을, 중청에서 새벽에 대청봉 올라 일출을 보기 좋을.

백담사-매표소, 7.1km, 버스로 20분 이동

백담사-영시암, 3.5km 1시간

영시암-수렴동대피소, 1.2km 30

수렴동-쌍용폭포-봉정암, 5.9km 3시간 10

봉정암-소청대피소, 1.1km 50

(소청대피소-중청, 0.6km/ 중청-대청봉, 0.6km)

수렴동에서 낮밥을 끓여먹고 차도 달이느라 1시간,

영시암에서 쌍용폭포에서 봉정암에서 다리쉼도 하고,

백담사 10시 발, 소청 17시 착(7시간)

 

* 학교에서는 어제 들인 연탄 일부를 된장집 창고로 옮겼다.

* 서울신문 2023-02-16 25면: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자유학교 물꼬 옥영경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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