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23.나무날. 맑음

조회 수 291 추천 수 0 2023.03.19 23:48:27


여보세요?”

응답기에 남겨진 목소리는 그게 전부였다.

약간의 망설임과 아득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의 결로

이미 이곳을 아는 이가 아닐까, 그 정도의 짐작.

교무실의 오래된 자동응답기는 번호가 차곡차곡 저장되는 게 아니라

그 뒤로 걸린 번호가 있으면 앞의 번호를 덮어버렸다.

다행히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긴 번호가 남아있었다.

번호가 남겨져 있어 전화드렸는데요...”

아직 내가 누구냐 말하지 않았는데,

전화를 받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 그 순간, 그 오래된 이름을 나는 대번에 알아버렸다.

십년도 더 넘어 된, 한참도 넘어 된 그 이름.

오히려 내 기억이 온전한 것인지 그 편에서 확인을 했다.

울보 민상이요...”

그럼, 그럼, 그 이름을 들었던 순간

겨울 남색 윗도리를 입고 울던 그 아이를 떠올렸더랬으니까.

계자를 와서 우는 아이가 어디 한둘일까.

딱히 울음이 많아 기억된 것도 무슨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마흔넷씩 한 계절에 두세 차례 계자를 하던 시절이었다.

무엇이 그 아이를 바로 기억케 했는지는 모르지만,

초등 3학년 쯤이었던 그 아이,

작았다, 착했고, 여렸던 아이로 기억한다.

 

스물다섯 청년이 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했고, 군대를 아직 가지 않았다는데.

미국에 있었더란다.

계자에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품앗이샘으로 꼭 함께하고 싶었다고,

올 여름에는 갈 수 있겠노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서야 딸려오는 기억들이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친구랑 같이 와서 내내 붙어다녔다.

두어 해 지나선가 동생과 함께 왔더랬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만 그 아이를 보았던 듯하다.

 

무수한 날들이 한 사람의 생을 지났을 것이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그도 변했을 것이다.

그래도 물꼬라는 공간을 우리가 공유했고,

그것이 서로를 이어지게 한다.

불운인들 왜 없었을까.

어쩌면 행운이 더 적었을지도 모른다.

스쳐가는 어떤 한 마디로, 나는 엄마의 혹은 어른의 직감 같은 것으로,

그의 어떤 부분을 섣부르게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었든 오라, 오시라.

물꼬는 여기 있겠다. 나는 여기 있겠다.

온전히 지금의 그대로 맞으리라.

 

 

태양광 사업 하나를 신청했고,

달골 기숙사 지붕을 생각했다.

하지만 저녁 해가 서둘러 떨어지는 곳,

오늘 1차 현장방문이었다.

선정은 되었는데,

사업성이 있으려나 실무팀이 와서 다시 따져보기로.

어른계자 앞두고 가마솥방과 부엌과 통로며 욕실이며 맞이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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