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계자 하루 전.

푹해서 준비하는 마음들이 무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춥지 않은 대해리가 아니다.

밤이 되자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이더니

예보에 없었던 눈 소식도 들어왔다.

오늘 밤~내일 새벽 적설이 예상되오니... 서행운전하시기 바랍니다.’

재난안전문자.

고마워라 한다.

어중간하게 추우면 외려 더 춥다고만 느끼고 재미도 떨어지는데...”

푹해서 비라도 내린다면 더 춥다고

차라리 쨍 깨질 것 같은 추위이길 바란다는 소망이 있었더라니.

겨울 쨍한 추위(목숨을 위협하는 추위 말고)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날카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더 씩씩하게 만드는 역설이 있기도.

 

낮 버스로 품앗이샘들이 들어온다.

남자샘들만 맞기는 또 처음이라.

여자 샘이 하나 뿐인데다 저녁모임에 맞춰서야 들어오는.

밥상을 물리고 다들 나가 소나무 가에 천막부터 치고,

본관 중심 청소들을 이어간다.

물꼬의 세월이 건강하고 좋은 일꾼들을 길러냈다.

그들의 좋은 품성이 더해지고.

일이 되었다.

마음과 몸을 기꺼이 내고 쓰는 이들이 만드는 즐거움이 있었다.

 

저녁 7시 미리모임.

근황들을 나누고, ‘미리모임 특강’.

최근에 주로 입에 올리는 주제는 책 <나쁜 교육>이다.

작년에 내기로 계약했던 교육서 원고에 대해 나를 담당하는 편집자가 그리 말했더랬다. <나쁜 교육> 한국판인데요, 하고.

원고를 뒤집게 되면서 올해로 밀렸다. 어여 써야는데...

'물꼬에선 요새'에 썼던 지난 글 일부를 옮기자면,

(<나쁜 교육-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저, 프시케의숲, 2019)

젊은 세대의 우울증과 불안증, 자살률이 점점 늘고,

캠퍼스 안팎에서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우리 대 그들을 나눠 적대하며 협박과 폭력, 마녀사냥이 난무한다.

안전이 너무 중요해서 사상과 표현이 가로막히고,

갖가지 인지왜곡이 만연해 상대의 선의를 악의로 해석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바른 마음>에서 진보의 옮음과 보수의 옮음이 왜 서로 다른가를 살폈던 조너선은

이번에는 교육단체 수장과 함께 대학을 중심으로 그 원인을 따져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양극화 사이클이, 안전제일주의의 부모 양육이, 자율성을 박탈하는 입시주의가, SNS중독이,

자유놀이의 쇠퇴가, 안전지향 관료주의가, 뒤틀린 정의관념 들이 그 배경에 있다.‘

 

그래서?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물꼬와 접점 면적이 넓다.

아이들의 자유놀이를 확보하라,

그리하여 안전제일주의가 아닌 모험을 치를 수 있도록,

자욜성이 살아나도록 부디 아이들을 내버려두라,

우리 대 그들이 아니라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공동체적 마음을 회복하도록 도우라,

무엇보다 전자기기를 제한하라, ...

우리는 왜 또 이 모진 겨울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으로 와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를 묻는데 좋은 해답이었다.

건강한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을 만들지.

우리는 그 건강한 세상에 기여하고 그 건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거기 우리 씨앗을 뿌리나니.

우리도 좋고 아이들도 좋아서 하는 계자라.

괜찮은 사람들이 모이고, 나도 그 가운데 하나임이 자랑스럽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서로라.

다시 계자다.

 

계자교장 일을 맡은 휘령샘은 물꼬 15년차 교사 11년차.

이번에도 아이들과 잘 있고싶다 했다.

일곱 살 김현진은 계자 아니어도 학기 중에 물꼬에 머물기도 하며 자라서

새끼일꾼을 거치고 대학생이 되더니 얼마 전 외무고시에 합격했고,

연수를 들어가기 전 계자에 붙었다.

자기가 이곳을 통해 건강하게 길러졌듯 아이들 자라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계자에 처음 왔던 초등 3년 아이는

새끼일꾼을 거쳐 군대를 가고 두어 달 전 전역을 했다.

미국으로 제법 긴 출국을 하기 전 잠시 거드는 윤호샘.

그와 같은 해 안현진도 왔다. 초등 2학년이었다.

물꼬에 드나들며 초등교사를 꿈꾸게 되었고, 교대로 진학했다.

학기 중 뭔가를 할 기운을 다 빼고 쉼에 집중하는 방학에 여기 와 있는 안현진샘.

계자에 처음 왔던 일곱 살 아이가 자라 새끼일꾼 거쳐 수능을 치고 이 겨울에 왔다; 건호샘.

일곱 살 아이가 자라 열일곱이 되었으니 물꼬 11년차로 새끼일꾼 중인,

학기 가운데도 체험학습을 써내고 온 채성.

물꼬 드나들며 성적을 더 높이겠다는 의지를 현실로 만들더니

학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물꼬로 오는 걸 부모님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채성 형님.

아이였던 그들이 이제 동지로 동료로 일한다.

밥바라지 정환샘, 2011년 대학 초년생이던 그는 6년차 교사로 전남의 중학교에 근무하며

11월 혼례를 올린다.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도 물꼬에 적금 넣는 중이라는 그다.

심지어 그는 첫 월급부터 후원회원인 논두렁으로 물꼬 살림을 아주 크게 보태고 있기도.

겨울계자는 10년만이라던가.

물꼬는 밥을 돈을 주고 맡긴 적이 없다.

그는 밥바라지의 으뜸이라. 편안하고 무엇보다 맛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중심에 서려는 오만도 없는 사람,

그래서 나를 자꾸 가르치는 그라.

엄마도 저리 못 먹이지 싶게 정성스럽게, 그야말로 최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저런 사람을 안다는 게 자랑스럽도록 하는 사람.

현철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무슨 종교도 아니고, 뭐 하러 시간 내고 돈 내고 이곳에 모이는가,

가만히 지켜보다 작년 초부터 비로소 뒷배로 합류하게 된 현철샘은

작년겨울 그 소문난 물꼬 썰매놀이를 진행하신 전설이다.

이번에는 들불의 진두지휘권을 맡았다.

주치의도 대기하고 있다. 응급의 류옥하다샘이 우리의 연락에 응답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닿지 않은 윤실샘.

물꼬랑 대학 초년생 때 만났고, 혼례를 올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계자를 오고 있다.

여전히 물꼬에 손발을 보태는 품앗이샘이자 논두렁.

그리고 불침번 아궁이지킴이 학교아저씨 영철샘.

2003년부터 물꼬 식구로 크나큰 뒷배이신 당신은

계자 가운데는 화목보일러의 아궁이를 밤새 지키고,

제습이와 가습이 밥을 챙기며 여러 바깥일을 맡으신다.

 

여기는 가마솥방.

계자 흐름을 잡아보고

그 속에 샘들 움직임을 짜보는데

가마솥방이 교무실을 더하고 모둠방을 더했다.

아직 데워지지 않은 모둠방이었고,

망가진 교무실의 연탄난로였다.

리모델링을 할 텐데 쓰지 않을 물건을 다시 마련하자니 낭비라

석유난로를 잠깐씩 쓰기로.

하여 교무행정 일도 랩탑을 들고 와 여기서,

속틀이며 계자 지내는 동안 필요한 작업들 역시 가마솥방 식탁에서.

자정에는 일을 갈무리하고 다시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현철샘이 밤참으로 옥수수를 쪄주었고,

내일 밤을 위해서 현철샘표 유명족발요리를 해놓기도.

샘들이 챙겨온 와인이며 자신의 냉장고를 털어온 것들도 같이 내놓고

작은 잔치가 열렸네.

서로가 애쓴 한 해를 같이 떠나보내며

축하하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위로했다.

지난여름 미리모임이 새벽 3시까지 이어져 고단이 컸던 바

이번 겨울은 일은 최대한 당겨 끝내자 하여

낮에 최대한 걸음을 쟀더랬다.

계자는 자유학교도들의 부흥회라고 농들을 하고는 한다.

여기 모여 한바탕 서로를 끌어올리고 나면

그 힘으로 한 학기를 살아낸다고들 하는.

시작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에 맞춰 낮밥을 바삐 내고 있을 때

마을에서 한 형님의 전화가 들어왔다.

문자도 전화도 편치 않은 날이다.

계자 지나고 들리겠다 했는데, 바쁘면 직접 잠깐만 다녀가시겠다 했다.

푸성귀들을 오며가며 들여 주시는 분.

곶감과 청국장을 띄워 돈을 사고 계셨다.

당신 가진 것 나누노라 청국장을 주셨고,

더하여 실한 무들이며 매실장아찌에다 무말랭이무침까지.

올해는 청국장도 못 띄웠는데 이리 또 살림을 더해주신다.

오늘 잠시 걸음한 분은 후원 봉투를 남기고 갔네.

휘령샘의 인연들이었다.

'김은주님, 김용욱님, 고맙습니다!'

물꼬는, 계자는 안에서 움직이는 샘들 말고도,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들 말고도

또 이렇게 온기를 더하는 살핌이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지.

좋은 사람들이 연대하여 안전한 그물망을 만들고 아이들을 에워싼.

그저 한때의 캠프가 아닌 그야말로 유구한 느낌의 여정이라.

 

, 아이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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