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함이 어떤 것인지 직접 가르칠 방법은 없지만,
그 대신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험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 ()
그 선물은 우리가 어른의 감시도, 정해진 어떤 틀도 없는
아이들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 <나쁜 교육>(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저), p.405

 


날씨 좀 보라지.

쌩쌩했다.

, 저 바람소리 들으라지.

고래입김 같다.

새벽부터 바람이 심상찮았더라.

아이들이야 그 바람을 가르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지.

‘2023학년도 겨울 계절자유학교(초등) - 사부작사부작 성큼성큼’,

백일흔세 번째 계자를 연다.

 

샘들이 느긋이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익은 손발들로 어제 한 초벌 청소가 있은 덕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바람소리가 화끈했다는 채성형님 말처럼

바람 거칠어 외려 다행이었달까. 그래서 바람구멍 확인이 쉬웠고,

긴장한 우리는 복도의 북쪽 창 틈들에 문풍지를 덧댔다.

하여 내일 아침 영하 13도를 예보하는 기온을 대비할 수 있었나니.

이런 것도 이곳의 신비함이라고 기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11시 모과차를 마시며 마음 모으기, 그리고 상황점검,

부모님들께 대기실 역할을 할 삼거리집도

방안 온도를 확인하고 열어두었다.

 

휘령샘과 샘들이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아 들어왔다.

새 얼굴이라고는 셋이다.

하지만 한 아이는 일곱 살에 와서 다섯 해를 같이 지난 도윤이의 동생 서한으로

그 역시 일곱 살(2023학년도 기준)이 되어 형 손을 잡고 왔으니

생판 새 인연은 아니라.

나머지 열일곱이 왔던 이들.

물꼬 아이들은 자주 그리 말한다, 가족 같다고, 외가 같다고.

퍽 그러하다.

이미 서로들 알아서 신발장에 붙은 이름도 찾아주고, 가방을 옮겨주기도 하고.

일상 공간 말고도 때때마다 모여 우정들을 나누는 멧골이 아이들에게 있다네.

아장거리는 아이로 물꼬를 봤던,

형을 너무 좋아하는 서한이는 드디어 형만 가던 곳을 왔다.

동생이 온 계자가 도윤이에겐 어떤 날들일까?

도윤아, 서한이가 더 형님 같어!”

동생은 우리가 돌볼 테니 그대는 그대의 삶을 살아,

라고 해줄 것인데 그럴 필요 없게 서한이가 더 단단해 보인다.

아주 오래 물꼬를 알았는 양.

결이 여린 도윤이가 동생과 함께 지내며 보이는 모습은 또 어떤 걸까?

 

옥샘, 저 산오름 못 가요!”

동우야, 우리는 손으로 산을 가지 않아, 다리로 가.”

첫 마디가 이런, 그간 잘 지냈냐도 없는, 어제 본 듯한 우리들의 인사다.

윤수야, 저 칠렐레 팔렐레, 그대 친구 동우는 2학년 때도 저랬지?”

“(동우가)중학생이 되면 철들 거예요.”

눈물 나게 반갑다. 보고 싶었다!

윤수는 쇠약해졌대서 짠했는데, 그래도 여전하게 질기더라. 든든하게 멕여야지!

동우, 잠깐!!”

앞뒤로 옷을 뒤집어 입고 왔다.

팔을 빼주고 목에 걸친 채 옷을 돌려주는데

벌써 애는 운동장을 향해 저만치 간다.

달라지지 않은 아이들이고, 그러나 또한 조금씩 선과 결이 변한 아이들이다.

그리웠다!

지율이가 저리 아름답게 커간다, 그찮아도 점잖은 아이가 더 큰 처자 같아져 왔다.

은우는 같이 왔던 정인이가 못 와 오기 쉽지 않겠네 했더니

옥샘이 보고 싶었어요, 한다, 이심전심, 염화미소라.

현준이와 태양이는 보름 전 청계에서 보았다.

7학년으로 자신들의 마지막 계자. 한껏 누리시라.

청계를 함께했던 도윤이가 오지 못해 아쉽다.

그때의 분위기를 타고 계자에서 예비 새끼일꾼까지 돼 보면 또 큰 성장의 자리일 텐데.

좀 더딘 준형이도 또 자라서 왔다.

엄마가 병원에 있어서 그대가 고생 많았겠네.”

서윤이가 그만 눈물을 떨구었다.

할머니도 계시고 아버지도 있지만 저 역시 애쓰고 있을 테다.

잘 멕이고, 엄마 잠시 떠나 있는 자리가 물꼬로 조금이라도 채워질 수 있도록 잘 돌보겠노라.

춥고 불편하다고 오지 말까 싶었던 예린이와 호수를

그래도 가보라 밀어준 아버님 고맙다.

해야 뭔가 일어나니까. 와야 뭔가 이루니까.

궁금도 하였더랬다, 그 감성 풍부하고 이야기 많았던 아이들이 또 얼마나 컸을까 하고.

동네 싸움은 동네로 가서 하시고!”

도현과 혁준은 같이 와서 툭탁거리면서도 어느새 또 곁에 앉아있다.

거의 단 한 번도 몸을 한 자리에 둔 적 없는 듯했던 도현은

의심 갈 만치 엉덩이를 잘 붙였고,

혁준은 찡찡거림을 좀 내렸다. , 또 이리 컸구나.

큰소리가 나서 돌아보면 그 중심에 있던 수범이는

이제 어딨냐 찾을 만치 어느새 외곽에 선 그라.

민준이는 이번에도 그 나무집 가느냔다.

알아들었다, 어딘지.

지난여름 폭우에 우리가 깃들었던,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삼거리집이었으나

산을 향해 나섰다 돌아오며 김밥에다 달콤한 걸 여럿 먹었던 그 집.

민준이는 아직 먹는 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이라 간단했는데, 여전할까?

태권도에서 받은 트로피를 물꼬에 갖다 놓고 다음 단계 걸 받겠다더니

또 트로피를 가져왔으면 전에 것은 집으로 가져가든지,

물꼬에 자꾸 제 살림을 쌓는 윤진.

이번에는 학교에서 만든 등을 선물로 가져왔다.

물꼬 사랑이라.

선준아, 어떻게 오게 되었대?”

엄마가 가겠냐 해서, 가마 했단다.

혼자라도 오겠다고 나선 것 잘했다, 말해주었다.

여름에 오고 싶었는데 이제 왔다는 원규까지 열아홉.

 

이 공간을 쓰기 위한, 그리고 물꼬 계자가 하는 생각을 전하는 안내모임을 하고

낮밥부터 먹었다.

밥바라지 정환샘의 정성 좀 보시라.

김치볶음밥에 혹여 매운 걸 못 먹는 아이 있을까 봐 계란볶음밥까지 또 하셨네.

이게 정환샘호 부엌이라지.

도현이도 밖에서 먹는 밥 잘 안 먹어도 물꼬 밥은 인정이라며 아주 흡입한다.

그런 도현을 잘 아는 혁준의 증명.

네가 그렇게 먹는 것 보니 진짜 맛있나 보네!”

 

저것들 좀 보라지.

이 한파에 마당으로 쏟아진다.

심지어 반팔을 입고 축구를 하기도.

내다보니 서한이가 한쪽 골문을 지키고 윤수도 보이고 원규 동우 ...

안현진샘 건호샘 채성형님에다 세보니 열둘이다; 도현 혁준 태양 선준 수범 도윤 호수

그러면 안에 일곱이 있다는 거네.

여자 다섯 가운데 윤진이가 선수로 뛰고 있고

현준 준형 민준이 안에서 어슬렁거렸다.

일일이 기록하지 않아도 그 이름들 다 짐작된다 싶더라.

태양이가 또 컸다. 매력적인 형님이 되어 아이들을 몰고 다닌다.

동생들에게 인기쟁이가 된 그.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신뢰하는 현준이와는 또 다른 결로.

소나무에도 올라가네, 채성샘이 지켜봐 주고.

여기에서 자란 하다샘이 언젠가 계자 아이들을 이끌고 그리 나무를 탔더랬다.

그 기억을 되살리며 동우 윤수 수범이 오르고 윤진 호수도 따른다.

먹어본 놈이 해본 놈이 안단 말이지.

윤수가 위엄 있게 소나무에 앉았더라. 


두멧길’.

큰모임을 하고 두멧길을 가게 된다, 여느 계자라면.

173계자는 또 특별한 계자라, 모든 계자가 그러하기도 했지만.

속틀을 쓰면서 한 샘이 실수로 두멧길을 먼저 쓰고 아차 하는데,

, 그게 더 좋겠다 싶은 거다.

겨울해가 짧으니까, 해 떨어지면 금세 추워지니까.

우리 모두 바로 그러기로.

우리는 그런 것도 이곳의 절묘함 혹은 기적이라고 느끼는.

옷을 잘 여미고 나섰다.

한 무리의 남자애들은 동우를 앞세우고 군대놀이를 하며 갔다.

큰형님느티나무까지 걸어 계단을 올라 정자에 이르렀네.

잎을 떨구어 마을이, 저 겹겹이 먼 산이, 그리고 저어기 달골도 환히 보였다.

거기 물꼬의 기숙사와 명상정원이 있다.

물꼬의 꿈이, 아이들이 더 자유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학교를 꿈꾸는,

그 꿈이 이 골짝에서 영근다, 자연을 닮으려 하며.

두멧길을 다녀오며 서한이가 그랬네.

다음에 또 올 거예요.”

벌써? 나중에도 같은 마음일까?

 

큰모임’.

돌아왔노라, 우리가 이곳에서 지낼 시간을 같이 짜는 시간.

별도 보고 해요. 그건 천문대(밤마실)’가 있다.

보글보글해요. 당연하지. 늘 하지.

놀아요. 그럼, 그럼, ‘한껏맘껏하자.

왔던 아이가 말한다, ‘구들더께. 해야지. 처음 온 이를 위해 낱말을 설명해주고.

아이들의 나라도 하잔다. 그래 보자.

장작놀이는 마지막 밤으로 보낸다. 창대비만 아니면 밖에서 하는.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잔다. 그래, 그래.

연극놀이해요. 하자.

강강술래도 하고 싶어요. 그러자꾸나.

산도 가요. 그러자 곁에서들 외친다. “()!”,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과자 먹어요. 그럴까?

은행 구워요. 그건 들불에서 하면 되겠네.

처음 온 선준이가 제습이 가습이 데리고 산책을 하잔다.

, 그건 모두가 하기 너무 번거로우니까

제가 나설 때 관심 있으신 분들이 동행하는 걸로 하지요.”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걸 물꼬는 할 수 있다? 대충 그런. 하하.

거기에는 무리한 걸 요구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 거다.

저들도 눈치가 있으니까. 여긴 최소한으로 풍성한 삶을 꾸리는 곳.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들을 보며 물꼬 아니고 어디서 이런 걸 해줄 수 있나 생각하며

더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기로 다짐했다.’(안현진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그리고 둘러앉아 제 글집의 표지를 그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지에 옮기는.

먹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지금 생각나는 것,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고 있다.

정인들이 나눠가지는 거울마냥 글집을 서로 마주 붙여 그리기도.

현준이가 지지난 계자이던가 처음 시작했던 일이었다.

수범이와 윤진이도 그리 그려놓고,

저는 윤진이와 수범이입니다.”로 수범이가 그림 안내를 하기도.

재미난 실험으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현준이는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글집을 식탁 삼아 놓았다.

도현이가 물었다, 글은 어찌 쓰냐고,

현준이 치즈 케이크를 떼어내고 글집을 그냥 펼쳐 쓰던 걸.

호수 윤수 동우는 모여서 오목판을 그리고 오목을 두어 완성하기도 했네.

자기가 발견했던 씨앗을 그린 예린이.

눈 밝고, 호기심 많은 예린이스러웠달까.

채성형님이랑 김현진샘은 멀리 앉았으나 약속이나 한 듯 당근을 그리다.

그림을 못 그려서...”

그런데 각자 꼭 자기 체형대로 그려 우리를 또 웃게 했더라.

끝나고 지율이가 비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번 계자에 그는 모자란 샘들 손 하나 되겠다.

새끼일꾼 정도가 아니라니까.

 

저녁밥상.

, 정환샘, 자주 감탄하게 만드는 그라.

예린 호수네서 온 곰국을 꺼내더니 당면을 삶아 같이 내주시네.

낮에 남았던 김치볶음밥을 아이들이 해치우고

흰 쌀밥까지 같이 담아 가다.

문제의 곶감을 후식으로 냈다.

스무 개를 처마에 말려 아이들 멕이자던 걸

하나 따먹는 바람에 아이 하나 빠졌다는 그 곶감.

흔히 유황을 피워 김을 쐬 색을 유지하는데

이건 산골바람만으로 말린 것.

꼴새 이래도 맛은 있다며 건네니

곶감 안 좋아한다는 아이도 맛나게 베어 먹고 있었다.

설거지 들어가도 돼요?”

2모둠 선준이었다. 오늘은 1모둠이 맡았는데.

봉사에 모둠이 어디 있나요?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게요.”

물꼬 적응력 으뜸이다.

저러니 무연고 혼자 신청이 가능했던 거라.

 

저녁상을 물리고 다시 마당으로 간다.

저들끼리 벌써 마당불을 켜놓고.

채성형님이 동우 윤수 원규 호수랑 공을 차고 있다.

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팔씨름을 하는 무리들.

온몸에 힘을 주며 열중하던 서한이.

서한이는 태양 선준 윤진 민준이랑 안현진샘과 좀비놀이도 했다.

그야말로 빛나는 일곱 살.

우리 모두 그런 일곱 살들이었는데

그런데 학교가면 베려놓는다는.

학교는 정녕 어떤 곳인가를 우리 생각해본다.

, 그런데 떨어진 압정을 밟아버린 도윤이!

낮에는 수범이가 무릎이 까졌더랬는데.

많이 놀랐을 거다. 녹슨 게 아니라 다행이라면 다행.

기본처치를 하고 혹시나 싶어 응급의 류옥하다샘한테 연락해보다.

괜찮다며 하는 말, 나도 어릴 때 자주 밟았음.

상처가 깨끗하고 10년 이내 파상풍 주사 맞았으면 괜찮다고,

요새 접종 안 하는 애들 없으니까

기본접종만 안 빠트렸으면 괜찮아요, 했다.

지켜보기로 한다.

 

한데모임.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 모여 같이 좋기 위해 의논하는 자리.

거창하게는 신라의 화백제도를 재현하는.

정성껏 말하고 깊이 듣기.

지금의 마음을 살피기도.

아이들이 기대에 찬 날들에 대해 말했다.

이미 재밌어 했고.

이번 계자는 대동놀이를 낮에 해보자고.

오늘은 일찍부터 먼 길 왔으니 바로 자기로.

혁준이가 자신의 애착인형을 다른 이들이 함부로 만지거나 하는 일로 속상함을 호소했다.

결론은? 문제를 제거하는 쪽으로. 애착인형을 가방에 집어넣고 잘 때만 쓰기로.

홀로 서보기를 하는.

장난이 심한 것에 대해 강도를 규정하자는 말도 나온다.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다 법 안에 넣겠는가.

그래서 상식도 있는 것.

관계 또한 그러하다.

어떻게 다 규범 안에 두겠는가.

우리는 삶의 관계 안에서 해결을 보기로.

첫날은 만남에 있어 조율의 시간이 아니겠는지.

오늘 만났으니 내일은 또 다르리.

내일을 살아보자 하였네.

 

모둠 하루재기’.

예린이가 언니 오빠들이 친절해서 좋았다고 했다.

물꼬에 모이는 아이들의 결이 참 곱다.

아이들이 모두 엑기스만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든다.’(건호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오래 온 아이들의 결이 특히 그러하다.

그리 품성을 지니고 태어난 이도 있겠으나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샘들이 많지 않은 계자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새끼일꾼이, 예비새끼일꾼이, 준새끼일꾼이 있지.

7학년들 현준 태양 준형이 있고,

6학년으로 이번 계자 학생장쯤 되는 지율이가

윤진이를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있었다.

윤실샘이 곧 오지만 여자 품앗이샘이 하나인 계자의 모자람을 그렇게 채우는.

지율에게는 후배 은우가 있고.

(하하, 그런 줄 알았던가, 여자 아이가 달랑 다섯이더라.

이것도 우리는 물꼬의 소름 돋는 기적이라고.

사람이 가진 게 별 없으면 이렇게 모든 순간이 기적이 되고 감사가 된다.)

물꼬에 다녀본 경험치가 어른 못지않은 일꾼이 되게 한다.

웬만한 어른보다 그 아이들을 부르는 게 더 일이 된다니까.

욕실을 들어서려는 준형에게

예비새끼일꾼으로서 이런 걸 보면 바로 놓기도 하는 거라 하니

흩어진 슬리퍼를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이불을 편다.

태양 서한 수범 선준이 쪼르르 누워 도란거린다.

시골 외가 같다.

곧 아이들 잠자리에서 샘들이 읽어주는 책 소리가 건너온다.

대개 동화책이지만

때론 장난스레 어려운 철학책을 읽어주며 잠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조금 어렵지만 그 뜻이 아이들 귀에 스미라고 읽어주는 좋은 책도 있고.

 

가마솥방 문은 너무 잘 닫혀 도로 튕겨져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찬찬히 닫아야 한다 일러주니

윤진이도 혁준이도 어울리지 않게 가만가만 닫고 나간다.

중학교 교사인 정환샘,

저리 문 닫는 애들 보면...”

교무실 문을 쾅쾅 닫고 드나드는 중학생들 이야기를 하다가

요새 중학생들은 중학교 1,2학년이 아니라 초등 78년생들 같다고.

선생님, 민찬이가 때려요!”

상대에게 때리지 말라고 한다거나 하는 자신의 의지 그런 게 없다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12학년 졸업반인 건호샘한테 물었다.

자신의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려는 척도 면에서

또래 아이들과 같은 선상에서 자신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

퍽 자주적이고 자발적이라는데(새끼일꾼으로 이리 와 있는 것만 해도 그렇고)

그것에 물꼬 역할이 컸다 했다. 고마워라.

 

샘들 하루재기’.

간밤에 현철샘이 준비해주고 간 족발을 냈다.

아직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있어서.

저 넘치는 에너지덩어리들과 놀려면 한 끼 더 먹어줘야 한다.

밥바라지였다면 이 밤참까지 네 끼를 준비할 것인데,

샘들 밤참만 마련하면 되니 나로서는 수월한 계자라.

그래도 그 힘듦을 아니

밥을 하고 나 어수선한 자리를 수습하거나 하며 밥바라지 2호기 역할도.

각 자리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틈새를 메우는 일이 또 뒷배의 역할이기도 하고.

맛있다고 해주는 사람들 덕에 힘이 난다고,

칭찬 격려 지지 응원이 사람을 나아가게 한다며

그간 칭찬에 매우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일었다는 정환샘,

뜨거운 물주머니를 껴안고서야 비로소 잠이 들며 내가 물꼬 왔구나 싶더라고.

학부모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덕분에 밥바라지 일이 너무 수월해졌고

곳간이 가득 찼습니다.

아이들의 삼시세끼 먹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밥바라지 정환샘)

내일 나가서 아쉽지만 오기 잘했다 싶다. 사회생활의 시작점에서 나의 방향키를 다시 재조정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샘들에게 이 공간에게 더 배워가야겠다.’(현진샘)

물꼬에서 어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는 현진샘,

내가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겠다 싶더란다.

그럼, 그래서 선생이라.

아이들 앞에 선 모두는 선생이라,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는 의미에서.

가르치는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 들은 대로 하는 아이들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잘 사는 게 잘 가르치는 일일.

하여 어른이 먼저 잘 살기, 내가 행복하기!

‘... 손끝에 힘 바짝 세우는 태도를 배우는 물꼬랍니다.”(건호샘)

무슨 말이냐 물었더니

옥샘이 일하고 계신 걸 보니 정말 손끝까지 힘이 들어가 정성스럽게 하고 계시더라고요.”

품앗이 첫걸음은, 아이에서 새끼일꾼으로 넘어갈 때도 그러하듯이

새끼일꾼에서 품앗이로 넘어가며 세계가 확장되는.

내 삶 뒤에도 얼마나 많은 손발들이 있을 것인가,

그 애씀으로 내가 오늘 누리는 것들이 있을지니,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은 무임승차이고 빚을 진.

그러므로 기꺼이 내 삶을 내어 쓰이는 것 또한 마당할.

그게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리 키우고픈.

그건 손해가 아니다! 외려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큰 이익이라.

 

해찬샘의 메일이 닿았다.

안부를 물었고, 새해 인사를 건넸고, 계자가 잘 끝나기를 기원해주었다.

계절학기를 듣는 중인데,

여름 구성원들 가운데 자신만 못 온 듯해 아쉬움이 있다지.

멀리서 마음 쓰고 응원하는 이들이 또한 이 계자를 같이 꾸리고 있는 셈이라.

희중샘이 귤을 보냈고,

마을 형님이 먹을거리를 들여 주었고,

인사차 들렀다가 봉투를 내밀고 가기도 하시고,

논두렁이면서도 할인제도를 포기하며 물꼬 살림을 더 보태주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내고 또 내서 부엌 먹을거리를 살펴 반찬과 간식을 준비해준 부모님들

(병상에 계시면서도 소홀하지 않으시기도),

그리고 이 귀한 겨울 한 때를 좋은 일에 자신을 쓰러온 샘들,

좋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둘러치고 계자가 간다.

 

밤새 뒤란 아국이에 불을 때고 아침 7시 잠자리로 가는 학교아저씨한테는 그지없이 미안하다.

어째요, 힘드시지요... 밤에 드실 거를...”

아이요. 내 신경 쓰지 마소. 알아서 하요. 일 년에 딱 6(미리모임 포함) 아이요!”

달력을 가리키며 벌써 하루가 갔단다.

학교아저씨의 계산법이라.

그러고 보니 계자 때 우리(샘들), 죽었다 하고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오직 지금만 오늘만 있다 하고.

그리고 장렬히 전사하는.(아무리 재밌어서 해도 힘든 건 힘든 것)

아이들이야말로 또한 그런 존재 아닌가. 지금에 충실한.

지금을 잘 살겠다. 그 지금이 실하면 내일도 실하리.

오늘 하루 갔고, 내일은 온전히 하루를 여기서 다 살고,

모레는 계자 중간에 하루 거의 쉬어가는 느낌일 테고,

다시 힘내서 하루 살고, 그러면 산에 다녀오고 끝이다.

하늘에 별이 진짜...”

꽈악 찼어요, 꽉 차!”

휘령샘과 학교아저씨의 밤하늘에 대한 전언이었더라.

첫 밤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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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7 2024. 3. 6.물날. 흐림 옥영경 2024-03-28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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