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4도의 아침.

바람 없고 쨍하고 좋은. 허리 곧추세워지는 아침.

샘들 해건지기’.

아이들을 건사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부모가 부재한 시간 우리는 그 아이들의 시간을 아는 사람들,

어느 순간인들 소홀할까.

그 무엇보다 내가 서야 아이들도 돌볼 수 있을지니.

샘들이 수행을 한다.

이번 계자는 고래방(체육관이자 강당)을 쓰지 않기로 했다.

한쪽이 무너졌어도 막을 치고 써왔는데,

바닥도 꿀렁거리는 곳을 굳이 무리해서 쓸 것까지야...

이 겨울 구성원도 단촐한데 굳이 그 추운 곳까지 갈 것도 없거니와.

가마솥방에서 식탁을 밀고 그 사이 사이에서 얇은 요를 놓고.

수련하고 명상하고 절하고.

절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티벳 대배 백배 대신 작은 절(절집에서들 하는).

몸을 빠르게 움직이고 마음을 여니 훨씬 가뿐한 느낌. ’힘든 일이 아닌 을 하자고 생각이 들었다

옥샘의 말에 아이들을 건사하는 기쁨과 감동이 들었고, 기운이 났다.’(휘령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다들 경력 이 좀 돼서 그런지 절을 잘하더라고요. 다들 절을 엄청 빨리, 잘해서 따라가기 힘들 뻔했음.’(김현진샘)

해건지기를 하는 샘들을 보고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샘으로 지금 보내고 있구나.(...) 하루를 잘 보내자 또 다짐.’(안현진샘)

아이 때 그가 했던 행동을 지금 아이들이 하며 그를 포함한 우리들의 아침수행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잘 섬기는 어른들이 되고자 한다.

 

해건지기’.

새로 태어나 새 삶을 살 하루, 우리 준비하고 생을 살겠노라.

태극요가를 하고, 호흡명상하고, 학교 마당을 걸었다.

지율이를 앞세우고 아이들이 따라나선.

으레 하는 거구나 하고 자연스레 따라들 나간다.

역시 여러 번 온 애들이어서 해건지기 시간에 나도 아이들 따라 몰입하고 경건해졌달까.’

(현진샘)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곁에 있는 이가 울면 나인들 어찌 편하겠는지.

그래서 우리들의 아침 인사는 이러하다.

윤수와 호수가 남자방 이부자리 뒷정리를 도왔다.

샘이 적으면 아이들을 쓰며 또 계자를 한다.

그것들을 믿고 하는 계자라.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을 먹고

난롯가에서 아이들의 수다가 꼬리를 물었다.

동우 현준 서윤 들이다.

고백을 받아봤다느니, 여자친구가 지금까지 없었다느니.

소소한 이야기들이 우리 삶을 채운다.

아이들도 삶을 산다.

 

손풀기’.

그림 그리는 시간이자 명상이고,

교사로서는 아이들의 무의식을 좀 짐작해보는 시간.

이 시간 꾸리는 법 안내하겠습니다.

크게 그립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립니다, 말없이 그립니다.“

앞에 놓인 사물을 그리고,

자신이 벽이 되어 전시회를 하고,

그리고 그리면서 전시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누다.

새 지우개를 내주었다.

20년은 족히 쓴 지우개들일.

173계자는 그렇게 또 특별한 계자가 되었다.

샘들은 이어질 보글보글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우아하게 그림을 그리며 명상한.

 

보글보글’.

전통적으로는 겨울일정에서 둘쨋날 오전 일정은 들불이다.

이번에는 보글보글부터. ? 173계자니까.

주제는 김치였네. ? 묵은지가 많으니까.

멕일라고. 애들이 김치를 기피하기도 하니까.

- 김치부침개: 지율 은우 도윤 도현 성준이 윤호샘과 함께.

버너에 불을 켜는 것부터 부침개를 돌아가며 직접 부쳤다지.

음식의 퀄리티보다 아이들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어떠한 것도 도와주지 않고( 말해주거나 잡아주거나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윤호샘)

덕분에 음식의 완성도가 떨어진 부분도 없잖았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고.

도윤이와 은우가 자신이 부침개를 부쳐냈다는 것에 매우 뿌듯해했다.

뿌듯함!’, 물꼬에서 중요하게 지키려는 그 자긍심 말이다.

 

- 김치스파게티: 김현진샘이 예린 수범 윤진 현준 서한과.

김치와 스파게티라는 어색한 조합이 아이들 마음을 사지 못했으려나.

그래도 시작은 야심찼다.

씩씩하게 마늘을 다지겠다는 서한이에게 칼을 쥐어주다.

일곱 살 아이에게 그래도 되나 싶었다는데,

칼은 어른이 쥐어도 위험한 것.

쓰는 법을 잘 가르치면 될.

손 오므려가며 잘 쓸더란다.

(서한이는 이번 173계자 행운의 아이-마스코트-. 거의 모든 일곱 살이 이곳에서 그러했듯).

선생님이 아이에게 허락해주는 만큼, 아이들은 더 배운다는 점을 오랜만에 물꼬에서 다시금 느끼게 됨.’(김현진샘)

현준이가 마늘을 열심히 썰던 윤진이를 느리다 타박하는 바람에

눈물바람 된 윤진이였네. 이것들이! 집안싸움은 집에 가서 하라니까.

안하겠다고 가버렸더라.

, 제가 될 때마다 수행방 가서 윤진이를 달래볼게요.”

예린이가 말했다.

길어지는 스파게티였는데 예린이와 서한이는 열심히 스파게티를 지켰다.

면 삶는데도 뒤적여본 둘은 면은 자기들이 다 삶았다고 큰소리쳤더라지.

틀린 말은 아니지.

결국 얼렁뚱땅 케찹 맛으로 만들어낸 스파게티에도 아이들은 열광을 잊지 않았다.

윤진이도 울고 언제 왔는지 너무 맛있다고 더 달라고 하고,

수범이도 부침개 먹다 와서 스파게티 맛나게도 먹네.

서한이가 또 말했다, “, 물꼬 또 와야겠다!”

수범 : 엄마 안보고 싶어?

서한 : (먹느라 바빠하며) 으응.

수범 : 진짜?

서한 : ! 엄마 없어도 재밌어!

- 떡볶이: 서윤 윤수 동우 호수 원규 안현진샘 건호샘

어떤 떡볶이를 만들까나.

서윤이가 로제를 말하다. 어라, 샘들의 전략을 알고 있었나?

떡볶이방을 신청한 후 뒤늦게 스파게티의 존재를 알아버려 후회가 조금 밀려들기도 하였으나

재료손질이며에 항상 먼저 손드는 서윤이었다.

동우 서윤 원규 호수가 돌아가며 길게 짧게 넓적하게 저마다 떡을 썰고,

서윤이가 김치를, 동우 원규가 대파를, 서윤 호수가 어묵을 잘랐다.

서윤이가 열심히 젓고. 옷에 튀도록까지.

매운 걸 좋아하는 윤수, 직접 고추장을 더 받아와 매운 떡볶이를 만들었네.

다른 모둠에서 받은 것에 비해 자신들은 적게 준거 같아 미안하다는 윤수와 원규,

물꼬에서는 그런 마음을 사람의 마음이라 일컫는다,

그 마음을 키우려 한다지.

 

- 혁준 준형 민준 태양이 수제비를 끓여냈다, 휘령샘 채성형님이랑.

다른 보글방의 정원 마감에 걸려 밀린 이들의 형국이었는데,

7학년 2명과 저학년 2, 나름 또 조화로움이 있었단다.

심드렁했지만 활동하며 분위기가 살아난.

태양이가 채성형님과 반죽을 하고,

혁준 태양이 휘령샘이 야채를 썰었다.

이제 육수에 수제비 뜨자고 모둠방에서 가마솥방으로 옮아갔다.

민준이가 파를, 혁준이가 양파와 감자, 준형이 감자를 썰고.

태양이가 감자칼이 위험하니 포크나 젓가락을 사용하자 제안하니

준형이가 혁준에게 젓가락을 가져다 주었다.

안전하게 껍질을 벗겼더라.

다른 모둠에 음식을 나누기 전 모두가 간을 보며 엄지척을 해보였다나.

 

문이 길을 잃고 자꾸 옆으로 삐져 문틀에 껴서 꼼짝을 않았다.

샘들이 가서야 툭툭 쳐서 닫을 수 있었던.

출입문이 자꾸 끼는 남자방.

보글보글을 하고 있을 때야 내 짬을 낼 수 있었다.

드릴과 피스와 두셋의 나무 조각을 들고 갔다.

앞뒤로 나무조각을 덧대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였네.

아이들은 놀고, 우리는 그 아이들을 지키고.

이 아이들과 오래 이리 살았던 공간 같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아이들이 노는 밭을 그저 지킨다.

그들이 누릴 수 있게 뭔가 돌보고 고치고...

좋다, 참 좋다.

정환샘이 부엌곳간 드나드는 문 손잡이가 날카로워 손이 아프다 하기

거긴 양말을 말아 꿰맸다.

이게 내가 꿈꾸는 삶의 일부였더라.

 

보글보글의 설거지는 샘들이 한다.

스파게티 남은 면으로 정환샘이

선 채로 한 입씩 먹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후루룩 알리오올리오 해주었더라.

<거의 모든 것의 역사>처럼

거의 모든 것의 요리가 가능하지 싶은 정환샘.

그가 부엌에 있는 동안 자주 밥바라지 역을 맡는 나도 참고할 거리가 넘칠세.

밥을 먹는 즐거움이 유달리 큰 계자라.

밥바라지가 정환샘이니까.

 

불가에서 밥상에서 아이들이랑 나누는 재미가 크다.

처음 온 원규라 호구조사에서부터 그 아이 만나기.

밥 먹는 동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 아이를 들여다본다.

한 영혼을 또 만나네.

이 아이는 무엇에 관심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마음은 어떠한가...

그러면 다시 보는 날에는 이 아이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안부까지 물으며

우리는 꼭 식구처럼 가까워지고는 한다지.

동우가 지난여름 물꼬와 그곳 공부방 일정이 맞지 않아 오지 못했던 그때

물꼬보다 더 짧은 일정으로 진행한 캠프를 다녀온 이야기를 전하다.

물꼬도 같이 오는 공부방 아이들 모두가 갔던.

그가 비교도 해주었다.

거긴 시설이 좋고, 여긴 진짜 자유롭고 재밌고 많이 논다고.

그곳을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는데,

여긴 다시 와서 저리 떠들고 있다네, 하하.

 

한껏맘껏’.

마당에서는 축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거나.

윤수 호수 동우 원규 수범 도현 들이 건호샘과 안현진샘과 선수로 활약 중.

수범 대 동우·윤수 구도가 자주 만들어지고,

동우와 수범의 승부욕이 때때마다 부딪힌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라치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연대할 밖에.

미덥지는 못하지만 별수 없이.

승리가 중요하니까.

수범은 8골의 대역사를 이루다.

 

배드민턴계의 기린아 채성형님이 도윤 선준의 도전을 받기도 했고,

안산초 자부심 이수범과 결전을 벌이기도.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했다. 봐주기 같은 건 결코 있을 수 없었던 채성형님의 압승이 있었다지.

개인 집중레슨도 있었다.

치겠다고 나온 서한과 민준이 의욕은 높았지만 해본 적이 없는.

둘이 해보라 안내하지만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주고받는 것 같은 거라.

휘령샘이 서한을, 민준 채성형님이 민준을 가르쳤다.

게임 때의 기본 준비자세에서부터 서브할 때 공을 미는 자세를 시범 보여주며.

높게 올려두면 톡 치고, 톡 치고, 톡 치고...

그런 걸 주제로 계자 하루를 보내도 재밌겠다. 혹은 계자 전체를 할 수도.

아이들과 할 일이라면 여전히 새롭게 꾸는 꿈들이 재밌고, 결국 그걸 하게 되는 물꼬라.

물꼬 영어교실, 물꼬 체육교실, ...

어디서나 있는 교실들이지만 접근이 좀 다른 물꼬니까.

어느 계자는 기표샘이 격투기를 가르친 적도 있었더랬네.

준형이는 김현진샘께 체스 강의를 받았다.

체스의 어려운 룰과 개념에 준형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같은 실수를 하고는 했는데,

주변에 있던 현준이며 서윤이며들이 그를 북돋았다.

나는 이렇게 못하는데... 어렵다, 체스!”

곱기도 고운 아이들이라. ‘사람의 마음이다.

 

아이들이 사업체를 하나 꾸린다.

얼마 전 계자부터 전통이 된 호텔 사업.

전통은 계승하되 새로움이 있으면 좋겠네,

그리 말을 던졌는데 역시나 아이들은 지혜롭다.

그리 한마디, 한 시점만 던지면 생각을 얼마나 확장하는지.

그리하여 꼬리뼈까지 시원하게 마사지를 해주는 지난 계자의 꼬리뼈 호텔

물꼬리뼈 호텔로 새로이 태어났다.

연속성은 있되 변별성 또한 있는. 과거를 부정치 않고 미래로 가는 느낌.

지율 회장님을 중심으로 운영진이 있고,

각자 자기가 발휘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전체에 기여한다.

혁준이가 내복에 외투도 걸치지 않고 춥다며 이불을 달래서

옷을 더 입어야지 싶은데 알고 보니 호텔 침구를 위한 거였다.

선준과 은우의 안내를 받아 호텔문을 들어가면

안내데스크에 있는 민준 도윤 서한이 예약을 받고,

바로 방으로 안내받아 선준 태양 민준 서한 도윤 혁준이가 해주는 안마를 받을 수 있다.

샘들이 호사를 누렸더라.

저들에게 놀이이기도 하지만, 샘들에 대한 애정이기도 할.

 

오오, 선준이의 적극성. 처음 왔는데 바로 스며들어

경력자들을 제치고 호텔 본부장 자리를 꿰찼다.

물도 챙기고

고객님들이 자야하니 종사자들도 조용하자며 진정한 고객감동서비스를 제공.

선준의 맹활약은 단번에 그를 재계 4순위로 떠오르게 했다.

이 호텔은 가족이 아니라 사내 후계구도가 있다는데

주요 등장인물이 정인(이번 계자에 오지 않았는데도!), 도윤, 그리고 선준.

호텔은 아늑하고 은은했다.

조명관련 여러 장식품들이 거기 다 가 있었다.

고급호텔이라 경비도 삼엄했다. 준형이가 맡았다.

호텔 내부에는 헤어살롱이 있었고,

그곳에서 머리를 하고 나온 이들이 움직이는 광고가 되었다.

채성샘은 여섯 갈래 묶음머리를, 윤진과 휘령샘은 양갈래머리,

도윤과 서한과 김현진샘은 빗질머리를 하고 나왔다.

김현진샘 머리는 외교관 맞춤 스타일이에요.”

하하, 외교관스러웠네.

미용계의 샛별 지율과 은우였다.

움직이는 대형 입간판도 등장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호텔이 되었더라.

 

대동놀이’.

크게 하나가 되어 노는 놀이.

몸으로 놀고 함께 놀고 노래와 같이 노는.

한밤에 토끼사냥도 떠나는. 닭장을 습격하는 늑대랑도 싸우는.

4시부터 대동놀이를 계획하였으나 도현이만 오로지 외치고 있었다, 하자고.

물꼬리뼈 호텔 사업에 밀린 대동놀이라니.

지금 당장 호텔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호텔의 미래 운영방향(?)을 떠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데 그 재미를 존중해주기로 했다.’(김현진샘)

그래서 내일은 대동놀이를 먼저 하고 구들더께로 가기로.

 

시간과 시간 사이에도 역사는 계속된다.

저녁답에 벽시계가 깨졌다.

좀비놀이를 하며 쌓아놓은 상 위를 건너 창틀에 올라가

암막커튼 뒤로 가서 숨고들 하더니만

그예 혁준이가 뛰어내릴 때 시계가 따라 떨어졌다.

커튼은 릴을 벗어나 능수버들을 이루고.

그대가 안 깨져서 다행이야!”

아무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안현진샘이 아이들을 물리고 유리를 정리하고 부스러기 유리를 청소기를 돌리고

그리고 드라이버로 풀어 남은 유리를 빼내고 다시 시계를 걸었다.

물꼬는 너무 위험해!”

누가 그랬다.

어제의 압정, 오늘의 유리가 있었으니.

겨울계자는 왜 이렇게 위험해요?”

은우의 질문에 안현진샘이 대답했다.

추워서 건물에만 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다고.

그만큼 자유롭게 한껏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

가위는 어른이 써도 위험하다. 잘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방법.

안전만을 강조하느라 아이들 움직임을 줄이라 할 건 아닌.

안전사고가 없게 어떻게 더 잘 안내하느냐,

안전사고에 대해 진행자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느냐,

안전사고가 난 상황에서 어떻게 조치하느냐,

그래도 제거할 위험요소는 무엇인가 따지는 게 좋을.

압정의 문제는 박혀있는 압정을 더 박거나

혹여 빠졌을지 모르니 방을 더 잘 청소하거나,

유리가 깨졌다면 얼른 치워내고

혹시 떨어져있을지 모를 유리조각을 넓은 범위로 청소기로 잘 빨아내고 그런.

이 건으로 상 위로 올라가는 것, 창틀에 올라 커튼에 매달리는 일은

다른 재미있는 놀이로 대체키로 하였더라.

 

윤수 호수는 닭다리를 만들겠다며 테이프를 달라고 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이곳 삶에도 영향을 끼쳐

쿠데타를 준비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지하에서 알음알음 무기를 만드는 중?

낭비가 심해!”

채성형님이 거절했는데, 아이들의 설득이 시작되었다.

진짜 치킨 대신 뜯을 수 있다,

호신용을 쓸 수 있다,

들고 다니면 친구가 더 생기는 기분이다, ...

이쯤되면 없는 테이프도 만들어줄 판이다.

채성형님은 교무실 곳간에서 테이프를 꺼내줄 수밖에 없었다지.

 

약 먹는 아이들이 여럿.

아침에 먹을 걸 저녁에 먹는 일도 있지만

저들이 잘 챙긴다.

말을 던지면 이미 먹었거나 먹으러 가거나.

 

한데모임.

민준이는 엄마 보고 싶다 크게 울었다.

울음을 담아둘 필요가 있나.

버렸다. 그리고 말개졌다. 그뿐이었다. 일종의 푸닥거리랄까.

어느새 울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울음은 가고 노래만 남고.

아이들은 정말이지 노래를 좋아한다. 목청껏 장르불문 노래를 부른다.

손말도 익히고.

오늘은 어찌 살았는가 돌아보고,

같이 머리 맞댈 일을 의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일들을 전하고.

아이들 사이의 큰 문제들이 이곳에서 구성원 모두의 지혜를 구하게도 된다.

은우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흔들릴 때 그 이야기의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주었다. 깔끔하게.

잘난체하는 톤으로 말고.

그건 잘 듣기 때문이었고, 이해했기에 가능한.

그리고 격하지 않은, 잘 고른 적정낱말을 써서 상황을 정리하게 하는.

 

모둠 하루재기가 지나고

머리맡 책읽기’.

뭐보다 뭐라고, 책보다 이야기라.

옛적 중고교 교실에 들어가면 입을 모아 첫사랑을 묻던 학생들이었는데,

언제 적부터 잠자리에서 초등 이 아이들이 샘들의 첫사랑을 캔다.

사랑은 인간사 고전적 주제라.

나란히들 누워 실근실근 나누는 이야기들에 배시시 웃고들 있다.

어느새 저들 이야기를 하고 샘이 듣고 있다.

자신들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멧골 겨울밤은 깊어가고...

(사족: 왜 사랑 노래가 가득한지에 대해 언젠가 하다샘이 쓴 글이 있었네.

사랑이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감정이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근대 이후에도 사회일반에 사랑 이야기가 주류가 된 것은

사랑·연애야말로 가장 소비 친화적이고 자본 친화적이기 때문이라던.

그 자체가 소비를 강화한다는.)

 

샘들 하루재기.

교대를 다니는 안현진샘에게 계자는 실습 같은 느낌이란다.

학생들에 대한 분석이

물꼬가 기준이 아니더라도 교대에서 가르치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적이 들어왔다고.

결국 실용성, 현장에서 맞이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교대에선 부족하게 가르치는 듯하다

물꼬에서의 시간을 더 잘 보내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한다고.

누워있는 아이들 입술에 바셀린 발라주는데 어미새가 된 기분이더라는 채성형님은

어제도 오늘도 지율이 이야기를 빼지 않는다.

새끼일꾼이라면 자신의 직속 후배가 되는 거니까.

욕실을 나오다 보면 지율이가 앞에서 슬리퍼를 정리하고 있고,

항상 빗자루에 먼저 접근하고 있다지.

지율이는 본인이 모르는 일을 내가 하고 있으면 꼭! 배우고 감.’(채성 형님)

처음 온 아이들이건 와본 아이들이건 물꼬라는 장소와 친숙한 모습을 보여 놀랐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놀거리를 만들어서 노는 모습을 보고 항상 아이들은 잘 논다는 사실이 상기되었습니다.’(건호샘)

 

무슨 범죄현장? 소리는 없고 움직임만 있다.

여자애 하나가 조용히 다가와 뭔가를 건넨다.

나는 그걸 이면지 종이에 싸서 가방에 넣는다.

아이는 돌아가고, 나는 욕실로 그것을 가져간다.

여자 아이들에게 달거리 속옷을 그러라고 일렀던 터다.

빨아서 야밤에 난로에 말린다.

? 엄마면 그랬을 거니까. 지금은 여기가 집이고, 샘들이 부모를 대신하니.

이런 곳에서 그렇게 나온 빨랫감은 난감할 것이라

대체로 가방 구석에서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릴 테다.

그러나 물꼬에서는 그것을 빨아서 건네준다.

전 계자도 그랬고 전전 계자도 그랬고 그 전전 계자도 그랬고 ...

이런 풍경도 물꼬의 어떤 특징적 한 모습일. 좋다, 참 좋다.

아이들과 샘들이 퍽 가까운.

 

계자 기간 날이 푹해서 눈을 구경도 못하겠다던 일기예보였는데,

눈 소식이 점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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