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5.달날. 맑음

조회 수 154 추천 수 0 2024.01.29 23:48:32


아침수행을 한 뒤부터 늦은 밤까지 손전화를 곁에 두었다.

173 계자 부모님들과 통화하자고 한 날.

(간밤에 계자 기록을 누리집에 마저 올렸고, 아이들 갈무리글까지 덧붙였다.)

아이가 잘 돌아왔고 기록글과 사진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래서 굳이 통화하는 게 부담스러운 분도 있을 수 있어

근래에는 물꼬로 전화를 주십사 하고 있다.

오전에는 드물고, 가끔 오후, 그리고 저녁과 밤으로 몰린다.

오늘도 그러했다.

지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돌아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이의 지금을 말하며 혹 부모의 양육에 보탤 게 있을까 조심스레 생각을 얹기도 한다.

형제를 키우는 댁에는 큰 아이에게 힘을 좀 실어주자고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아이는 좀 헐렁헐렁하게 도와주자 제안하고,

그리고 자폐경향성 아이를 키우는 댁과는 매우 긴 통화가 있었다.

애쓰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과 애씀을 헤아리고 싶었는데,

혹 멀리서 하기 쉬운 말만 한 건 아닌가

돌아서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사망과 임종 연구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의 죽음의 5단계 이론처럼

가족 구성원 가운데 장애를 가진 이가 있으면 그 단계 역시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 들을 거친다.

당연히 이것을 꼭 차례대로 겪는 것도 아니고

지났던 단계로 얼마든지 돌아가 다시 거치기도 한다.

엄마가 (먼저) 좋고(행복하고) 엄마가 단단해야 한다, 이 말 역시 하기는 또 얼마나 쉬운 일일진가.

장애를 둔 부모의 소망은 대개 한결같았다. 아이보다 하루 뒤에 떠나는 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한편 비장애아들이 장애들과 어우러질 수 있게 하고,

나아가 부모가 늙거나 죽어서 더 이상 장애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

그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이 사회가 되는 데

물꼬 역시 힘을 보태고자 애쓰고 있다.

중요한 건 늘 정말 (그렇게)움직인다는 것!

물꼬는 (그렇게) ‘한다’!

 

마지막 통화를 끝내고, 영화 하나 보다; 스페인 영화 <Society of the Snow;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19721013일부터 1222일까지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던 비행기에서

45명 가운데 16명이 생존한 기록.

어린 날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던, 인육을 먹고 버텼던 그들이

이후 정말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었는가를 걱정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영화에는 산 자의 말이 아니라 죽은 자 누마의 말로 나레이션이 흐른다.

죽은 자의 역할(시신이 산자를 살리는 먹을거리로)을 단순히 소모하지 않고,

죽은 자의 이름자들이 기록된다.

날마다 걷고 날마다 뛰겠다, 자막이 오를 때 한 생각이다.

그랬던 난도는 다른 한 인물과 함께 눈 덮힌 안데스를 꼬박 열흘 나아가 구조된다.

아이들과 겨울산을 오를 때면

때마다 산행 대장으로서의 각오와 무게가 만만찮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거친 겨울 산오름이었고,

지금은 요새 아이들은 약하다는 전제를 고려하고 덜 힘든 길을 택하지만

아이들과 들어서는 겨울산의 긴장은 결코 그 밀도가 낮지 않다.

혹여 무슨 일인가 생긴다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어깨에 다 짊어지고 오고 말리라,

온 몸에 그리 새기며 아이들을 뒤에 달고 걷는다.

나이 들며 그 힘이 언제까지 주어질까 가늠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방법 없다. 날마다 수행하고, 날마다 걷고, 날마다 뛰고 있겠다.

 

 

그리고 물꼬에서 지내게 될 발해130026주기 추모제의 변;을 썼다.

 

1.

집안의 막내라 허락에 까다로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작년부터 집안의 제사를 가져와 지내고 있습니다.

절에다 모신다 하기에

지내지 않는다면 모를까 지내는 거면 저희가 하겠다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좀 나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제사를 지내느니 마느니, 옳으니 그르니,

다 각자 생각대로 할 일입니다.

그게 의미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형편 되면 하고 아니면 못하는 것 아닐는지.

명절이 의미 없으면 대안가족 그런 변화도 얼마든지 환영할 일입니다.

그저 관습에 끌려 우리 현재의 삶이 고단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2.

첫 기제를 지내며 뭉클하였습니다.

시어머니 한 분을 빼고는 얼굴도 모르는 네 어르신들입니다.

그런데 뭔가 귀한 인연이 맺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리는 일에

, 깊고 깊은 사람의 일이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예전에 잘 몰랐던 마음들입니다.

젯밥과 함께 차도 달여 올리고, 꽃도 띄워 올리고...

제사가 즐거운 이벤트가 된 거지요.

그것에는 그저 주어진 일이 아니라 선택했다는 점에서,

자유학교 물꼬라는 큰살림을 하며 일이 손에 익어

상을 차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겝니다.

 

3.

뗏목 발해 1300는 제게 의미가 있습니다.

장철수 대장은 이문동에서 몇 해 나눈 우정이 있기도 하며,

몇 개월 임진왜란 400주년 기념행사를 같이 준비하던 뜨거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거의 잊혀졌던 그가 뗏목탐사대 좌초로 다시 불려왔고,

그 해는 탐사대원들을 떠나보내고 저희 집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습니다.

제게 의미가 남달랐듯 또 누군가에게 그럴 테지요.

그들이 온전히 온 삶으로 옳은 행적만을 살았다거나 그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 한 그들의 행위가 뜻 깊었고, 훌륭했다 여깁니다.

그걸 기리고자 합니다.

그들이 떠난 세월 내내 제 가슴에 그들을 새기지만은 않았을 겝니다.

그렇지만 결코 잊히지도 않은 그들이었습니다.

 

4.

집안 어른도 30년 제사 지냈으면 할 만큼 했다던가요.

30주기까지는 제를 지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훌훌 떠나 보내드리고픈 산 자의 소망이 있습니다.

 

5.

먼 걸음이실 터이니 밥과 잠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119일 저녁밥과 20일 아침, 그리고 제상과 낮밥을 나누겠습니다.

오신다면 기쁨이겠지요.

멀리서도 마음 나눠주시기를.

 

 

다들 계신 곳에서 아름다움 삶이시기 바랍니다.

부디 청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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