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라지만 두리번거려도 물러가지 않은 겨울이다.

학교아저씨 일지에는 ‘2.16.. 저녁에 밭에 풀싹들이 보인다. 봄이 오고 있는 중.’,

‘2.24.. 마늘 촉 보임.’ 눈발 흩날리는 속에도 오르고 있는 촉을 기록하고 있었다.

더디나 마침내 오고 마는 봄일 테다.

 

11시 차를 달였고, 정오에 국수를 말았다.

새 학년도를 시작한다; ‘첫걸음 예()’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 일에는 시작과 종말이 있다; 物有本未 事有始終(물유본미, 사유시종)

<예기>의 한 구절이다.

모든 일에, 모든 것에 처음이 있었다.

시초(始初); 맨처음.

사람은 누구나 어미의 뱃속에서 삶을 시작하니 시()가 있을 테다.

()는 옷과 칼.

아득한 그 옛날, 짐승의 가죽을 칼을 써서 잘라 옷을 지었어 입었다는 말이겠지.

우리는 또 첫 땀을 뜬다. 2024학년도다!

 

먼 봄이라지만 경칩이라고 저녁이 내리는 물 고인 논에서 개구리들이 울었다.

, 한국에 왔구나, 멧골에 돌아왔네!’

인도에서 떠나오기 전날 감기를 업었던 지라 오는 비행 내내 초죽음이었다.

첸나이공항에서 델리까지 2시간 45, 그리고 델리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 7시간.

챙겨갔던 몇 알의 약을 다 먹었던 탓에 양 기내에서 다시 약을 얻어먹고

끙끙 앓으며 아주 쓰러져서 왔더랬네,

한여름에서 겨울로 바로 들어오는 입성기가 까탈스러웠던 걸로.

며칠 살살 움직이며 새 학년도를 시작하겠다.

물꼬는 또 어떤 세월을 건널 것인가.

 

멀리 갔다 돌아오면 사람들이 묻는다, 거기 어떠셨냐고.

하루하루를 세월에 맡기고 흘렀는데,

아무 걱정이 없었더랬다.

어쩌면 나는 그걸 연습하러 갔을지도 모르겠네.

아침마다 바닥에 철퍼덕 엎드렸다 일어나는 대배로 삶을 일으키듯

세월에 맡기고 사는 일을 연습하러 말이다.

무얼 걱정하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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