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눈 덮인 산이 눈에 왔다.

날마다 보는 산인데, 언제나 거기 있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훅 들어올 때가 있다.

불룩불룩 녹음이 깊은 산도 그러하지만, 겨울산은 더 크고 단단하게 그러하다.

해야 하는 일이 줄을 선 시간에 쉬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두 달 대장정 집짓는 일을 억지로 마무리 지으며 시공자를 보낸 16일이 지나고도

더 바삐 돌아가는 현장이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더니,

기둥에 부딪혀도 뚫고 지나치는 것만 같은 시간이더니,

오늘 산이 앞에 섰다, “너, 뭐 다(하)냐?” 물어왔다.

그 앞에 사람의 마을은, 사람은, 더욱 작아졌다.

사는 일이 참 아무것도 아니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게야,

순간 잠시 호흡 가다듬고 느리게 걸을 수 있었음은

순전히 거대한 겨울산이 그렇게 느닷없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은 날쌔야 하는 또 하루이라...


눈 내린 아침이었다. 밤새 이미 쌓인 눈이 적지 않았다.

달골 길을 쓸었겠지.

여느 해라면 아래 학교에서만 옴작거렸을.

여기 눈이 내리든 눈에 묻히든 잊어먹고 있었을.

올해는 12월이 오고도 달골을 쓰고 있어 눈 내리면 바로 쓰는 것부터가 일의 시작.

벌써 몇 차례의 눈을 쓸었던가.


“그냥 외주 줘. 고생은 죽도록 하고 뽀대도 안 나고, 결국 돈은 돈대로 들어. 내말 들어!”

도배를 하고 말아라고 간곡히 권하던 은식샘이,

기어코 페인트를 칠하고 싶다하니 한 발 물러나 한 제안이었더랬다.

이틀 퍼티 작업을 하던 우리는 결국 시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일만을 하고 있을 수도 없었던.

그리하여 준한샘과 순배샘이 페인트 일을 의논하러 들어온.

페인트공 둘 들어와 나무날과 쇠날 하고, 바닥 에폭시 작업까지 도와주기로.


계단 바닥 마감 칠과 문틀 재벌칠들,

그리고 안팎 정리. 퍽 끝나지 않는 일이다.

오늘도 야간 작업은 계속된다.

틀들을 덧칠하고,

계단 바닥은 종이 발판을 만들었다. 페인트로부터 계단을 보호하자면.

한밤에는 무산샘 들어와 이동 비계를 놓고 거실 조명 구조물을 끌어내렸다.

거기 마감재도 칠하지 않은 채 당장 달기부터 해두었던.

그것부터 잊어먹게 해두어야지 싶어.

그래야 비계도 돌려줄 수 있고.

이동식 비계는 집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시영샘네서 빌려다 놓았더랬다.


달골에 혼자 남은 걸 못 보고 점주샘은 또 하루를 더한다.

무산샘이 붙잡기도 했고.

해남을 다녀오는 동안 자리를 좀 채워주시라 한.

오늘도 우리들의 작업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네다섯 시간 걸린 해남행을 해치고 저녁에 들어온 무산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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