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딸루냐 TV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정상이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고 있었다.

까딸루냐어나 스페인어나 모르기로야 도긴개긴인데,

김정은의 선언이 ‘한국어’였다!

촛불에서 여기까지, 현 정권 퍽 열심히 달려왔다.

때마침 한국에서,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차오르는 동료(동지가 더 옳다)로부터

잘 지내고 계시냐, 오늘같이 울컥 눈물 나는 한반도의 봄을 알리노라며

‘오늘부터 우리 사이 1일입니다’라는 그림이 왔다.


2002년 6월,

나는 만 네 돌이 된 아이와 호주를 거쳐 뉴질랜드 깊숙한 곳의 한 공동체에 머무르고 있었다.

윌리엄이라는 친구가 아침부터 수선스레 찾더니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탈리아전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탈리아를? 그가 잘못 알았거나 내가 잘못 들었거나.

뉴질랜드 산골 인터넷이 그리 수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다시 호주로 넘어가 중서부 깊숙이 있는 한 공동체도 이동했는데

이웃 아줌마 하나가 타운을 나갔다 오면서 신문을 들고 방문을 두들겼다.

바글바글 유리상자 안의 거품도 아니고...

세상에! 사람 머리였던 거다. 4강 진출을 응원하러 광화문을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축적돼 촛불혁명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 뜨거웠던 한일월드컵의 6월이 내 생애는 없다.

그 미공유가 얼마나 큰 거리였는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한국을 떠나있었음을 여러 해 동안 실감하게 했더랬다.


유난했던 2002년이었다.

생의 최대의 사건들을 몇으로만 압축해도 그 몇 개가 그 해 집중되었더라 할.

그해 9월 초 시카고의 하이드파크에서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까지 운전하는 차 안에서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휩쓸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악이라 했다.

물꼬에 연락이 통 되지 않는 며칠이었다.

산마을조차 휩쓸려 내려갈 것 같은 비였다 했다.

쉼터 있는 곳까지 물이 차올라 완전히 길이 끊겨 고립되었더라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강에다 콘크리트 제방이 쌓이는 걸 보며

백년 만에 한 번 올까말까한 피해라면

차라리 맞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해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소식도 물꼬로부터 들었다.

내 한 표를 더하지 못한 게 한이 되지 않아 다행했다.


한 번씩 나라 밖을 나갈 때면 의미 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비껴나는 것 같은

조바심이 살짝 생기고는 했다.

2017년 3월 10일 헌재의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는

그나마 네팔 마르디 히말을 걷고 돌아와 막 인천공항에 내려서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오늘! 2018 남북정상회담과 4.27 판문점선언.

또 이렇게 멀리 있다.

인간사는 어떻게든 이어진다, 그가 있거나 없거나.

무수한 전장에서 이름도 없이 한 덩어리 속의 일부로 턱 턱 죽어나가는 상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래서 개인이 더욱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말이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허무한 유한적 혹은 무상한 삶이므로

그래서 이왕이면 더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이왕이면 선한 일에 복무하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결정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결정된 상황이 나를 둘러는 쌀 거라는 거.

그러니 지구 끝날까지 역사로부터 결코 개인이 자유롭지 않을 거라는 것.

새삼 젊은 날의 높은 이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순간도 그것을 놓지 않았던 삶이었단 걸 알았다.

그것이 다시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주고 있었다.


마음도 한참 떠나와 있던 한국이 오늘은 아주 성큼 가까웠다.

물꼬의 젊은 친구들이 가끔 외국에 머물기라도 할 때면

한국은 조금도 그립지 않지만 물꼬는 달려가고 싶다던 그 마음에 나도 다르지 않더니

오늘은, 한국이, 그리웠다.

고맙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 걸음이 남북 민중들의 삶도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기대로 이어진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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