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덥다는 한반도 소식을 듣습니다.

더 오래 여러 날이 그러하리라 했습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데

지중해 연안 도시에서는 기온 높으나 그늘 짙고 바람 좋아 피서에 다름 아닙니다.

이럴 때도 미안함이 입니다.

어머니들이 주고 주고 또 주고도 자식으로부터 받는 작은 선물 하나에

미안함을 우선 생각는, 그런 것까지는 아니어도

내 신간 편안하면 미안함이 그렇게 먼저 압니다.

어쩌면 이것도 제가 옛날 사람이라는 재확인인 셈입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이전 세대는

편안함에 대한 미안함,

밥값을 해야 한다는 채무의식 같은 걸 늘 가지고 있었지요.

오늘은 누리집에 글 한 줄이라도 써야 밥값했다 여겨질

다소 몸이 굼떴던 날입니다.


대해리 겨울 추위도 못잖지만 불 앞에서 여름날 얼마나들 힘이 들었을까,

밥바라지 엄마들을 생각했고,

이 더위에도 식구들 밥상을 차릴 우리네 엄마들을 또한 생각했고,

뙤약볕 아래서도 전을 펴야하고 지게를 져야 하는 사람들도 생각했습니다.

없이 사는 이들이 나기로야 여름이 낫다더니 그것도 옛말입니다.

엊그제는

교육수준 낮고 가난할수록 폭염에 따른 사망 위험도 높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마음 한켠이 저린 것도 미안함과 같은 성질이겠습니다.

나를 보는 것 말고도 곁을 내고 무어라도 해야 한다 마음먹게 합니다.


오는 손님도 반갑지만 가는 손님 뒤꼭지가 더 반갑다는 여름,

가난한 선비의 여름 밥상을 생각했습니다,

낮밥으로는 간장을 물에 풀어 마셨다는.

차를 달이는 한 벗의 초대를 받았던 여름날,

찬 녹차에 찰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보리차에 보리밥을 말아도 좋겠고,

장국에 면을 차게 넣어 먹어도 좋겠습니다.

간명함이 의식의 정갈함과 동일하게 느껴지는 밥상들이겠습니다.

삶이 더 단순하고 가벼워야겠다, 사무치듯 다가오는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저녁으로 한둘 혹은 두 셋 먹는 하루 한 끼 밥상만을 차립니다,

그것도 중심 요리에 더하여 곁접시 하나 놓인 단촐한.

방문 열면 작은 복도, 한 발 걸으면 화장실,

다시 한 발 디디면 거실, 다음 한 발 옮기면 부엌인 이곳입니다.

물꼬에서 내 한 밥이 많기도 하였구나, 내 쓴 비가 닳을 만도 했겠구나,

대해리 그 너른 살림이 정녕 제가 했던 일이었을까 아득합니다.

다시 그 겨울로 그 여름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요...


물꼬에서 받는 질문 가운데 절대적으로 많은 하나는

계자 끝내고 아이들 돌아가고 나면 무엇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일이라는 게 그렇기도 하겠지만

풀들의 일을, 먼지의 일을, 밥의 일을,

이른 아침부터 자정을 넘겨도 아직 손에 잡혀있는 산마을의 일을 어이들 알지요.

재미나게도 이곳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오늘은 스페인 친구가 지금 돌아가면 저녁에 뭘 하냐 물었습니다.

그건 안식년에 가까운 해인데 바쁠 것도 없지 않느냐, 혹은 지루한 날들은 아니냐는 말.

마치 물꼬인 양

이곳에서는 이곳의 일들이, 이곳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 걸.

왜 이렇게 바쁘지, 종내 그리 중얼거리고 마는.

아, 그래서 옥샘 있는 곳이 물꼬라는 말이 이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지요,

물꼬 같은 움직임이 있는 곳.


강녕하시라는 말을 하려던 참입니다.

부디 그러하시길.

분명 우리는 곧 낙엽을 밟게 될 것입니다.

지켜주시는 손발과 마음들로 이곳의 오늘을 삽니다.

내일도 그리 오늘로 살겠습니다.


옥영경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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