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24.달날. 맑음

조회 수 493 추천 수 0 2019.08.13 11:38:17


천막을 걷었다. 잔치는 끝났다.

사람들 간 자리 정리하고

부엌에 나와 있던 그릇들을 창고에 넣고

치워져 있던 교실 물건들도 제자리로 보낸다.

다음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

사람은 가고 쓰레기는 남으니까.


또 한 친구를 곧 장가보낸다.

보육원 아이들도 자라고 혼인을 한다.

그 아이들이 다시 보육원을 가는 일은 드물어도

물꼬에는 여전히 걸음을 한다.

엄마로 부모 자리에 앉거나

어른으로 주례를 서 달라 부탁해 왔다.

그 아이 다섯 살에 만났다.

위로 누나도 둘 같이 있었다.

요새는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도 고아는 드물다.

대개 연고가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있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그 부모가 다시 데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이들은 영영 부모 소식을 몰랐다.

고맙게도 견실하게 잘 커서 대학도 가고 직장도 자리를 잡았다.

그리 크는 동안 간간이 물꼬에 와서 보냈을 뿐인데,

해준 것도 없이 부모로 혹은 어른으로 설 영광이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연어의 날이 끝나고 몇이 남았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 일당(ㅎㅎ) 승엽샘과 초설도.

이생진 선생님은 속이 불편해서 아침을 걸렀으면 하셨다.

야채죽을 끓였다.

끓여놓으니 너도 나도 한 번 먹잔다.

“밥 있잖아!”

그래놓고 덜어준다.

“죽이 뭔지 알어?”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라네. 내참...

또 실없는 승엽샘의 소리, 아재 개그다.


이생진 선생님 일당도 보낸다.

여기 오면 내내 밥 얻어먹는다고

옥선생 부엌에서 떠나게 하자며 황간으로 나가 밥을 사시는 선생님.

머리가 긴 승엽샘, 손끝이 여성 같은 초설, 그리고 이 여자,

여자 셋 거느린 선생님이시라 농을 하며 유쾌한 밥상 되었다.

나는 내 안에 남자 사는데... 하하.


하얀샘이 정리를 도와주러 들어왔다.

교문의 현수막부터 떼 주었다.

달골로 올라 아침뜨樂 미궁의 느티나무에서 아래로 물도 주었네.

그야말로 남은 식구 셋이 늦은 저녁밥상에 앞에 앉았다.

인사도 남았고, 정리글도 남았지만,

사람들이 다 나가고 비로소 연어의 날이 끝났을세.


앗! 오늘부터 마을 수도를 아침저녁 한 시간만 공급하기로 했단다.

가뭄 오래였다.

아이들 드나드는 곳이라고, 혹 물 사정 안 좋을 때 곤란할까 하여

학교 부엌에는 늘 예비로 채워두는 커다란 물통 하나 있다.

덕분에 꼭 물이 나오는 시간에 얽매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사람 많았던 어제도 아니고 오늘이어 얼마나 다행한가.

고마운 삶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16 2024. 4.11.나무날. 맑음 / 화전놀이 옥영경 2024-04-23 168
6615 2024. 3.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3-28 169
6614 2024. 4. 3.물날. 비 옥영경 2024-04-21 170
6613 2024. 3. 6.물날. 흐림 옥영경 2024-03-28 171
6612 2024. 3.20.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09 171
6611 2024. 3.24.해날. 흐림 옥영경 2024-04-10 174
6610 2024. 3.13.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02 180
6609 2024. 3. 9.흙날. 맑음 / 사과 한 알 1만 원 옥영경 2024-03-28 181
6608 2024. 3. 5.불날. 비 그치다 / 경칩, 그리고 ‘첫걸음 예(禮)’ 옥영경 2024-03-27 190
6607 2023.12.20.물날. 눈 옥영경 2023-12-31 195
6606 2024. 1.21.해날. 비 옥영경 2024-02-07 196
6605 2024. 3.28.나무날. 비 옥영경 2024-04-18 196
6604 2024. 1. 2.불날. 흐림 옥영경 2024-01-08 197
6603 2024. 1.30.불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99
6602 2024. 3.27.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17 199
6601 2023.12.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12-31 200
6600 2024. 1.23.불날. 눈 / 끊임없이 자기 해방하기 옥영경 2024-02-07 200
6599 2023.12.19.불날. 흐림 옥영경 2023-12-31 203
6598 실타래학교 사흗날, 2024. 2. 5.달날. 서설(瑞雪) 옥영경 2024-02-13 203
6597 2023학년도 2월 실타래학교(2.3~6) 갈무리글 옥영경 2024-02-13 20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