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26.물날. 비

조회 수 313 추천 수 0 2020.09.17 23:51:28


 

고맙기도 하지.

어제 제도학교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곳 사택에 머물렀다면

심란하기도 심란했을 밤이라.

그리고 오늘 움직이자고 했으면 이 어둔 하늘과 길을 오며 힘깨나 들었을.

오늘부터 연가.

대략의 일들을 어제 갈무리하고 돌아오다.

제도학교 측에서 물꼬의 사정을 헤아려 두루 편의를 봐주었다.

특히 본교의 특수학급 교사의 도움이 컸다.

아마도 좋은 동료도 오래 만날.

어느 공간을 가면 꼭 물꼬랑 깊이 오래 만나는 인연 하나는 엮어지더라.

분교에도 한 사람이 그리 있었네.

 

어둑신한 하늘이었다.

달려온 여름 일정을 모다 마무리한 느낌.

7월 마지막까지 한 아이의 중학 진학 건으로 달리고 달리며 제도학교 지원수업을 끝냈고,

돌아온 날 준비하여 주말 청계를 진행했고,

이어 한 주 계자 준비, 그리고 계자 한 주,

다음은 제도학교 근무와 함께 특수학급 아이들의 특별수업,

그리고 24일 개학하여 이틀 업무 마무리,

마침내 돌아온 어제 늦은 밤이었다.

 

일단 좀 쉬었다.

니체를 다루고 있는 책을 읽었다.

악행과 선행은 동일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다만 어떤 상황에서 그것이 악행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선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그래서 악행도 행하라는, 행해 버리라는.

그 과정에서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해결하고 그렇게 삶이 새 지평을 얻는.

어쩌면 작은 악행들이 더 큰 악행을 막는 제어도 되는.

무식한 울어머니 그러셨다. 사람이 뭐라도 해야 한다고’, 때로 그것이 나쁜짓일 때도 있다고,

하지만 그 속에도 배움이 열린다셨다.

니체는 그렇게 우리 삶 속에 가까이 있었더라니.

(오늘 들어온 젊은 친구의 문자에 전하는 대답도 또한 이것이었어라.)

 

해우소 바깥 벽으로 있는 되살림터에 내놓은 철제선반이 보였다.

계자 때 부엌에서 나온 것.

낡은 게 기우뚱거리자 보다 못한 하얀샘이 사들고 들어와 자리를 대체하고 나온.

정환샘과 휘령샘도 이제 바꿀 때 되었다 하고 주문하려고들 한 참에.

저희가 주문할라 그랬는데...”

하얀샘 발이 좀 더 빨랐던.

그런데 새 것인데도 먼저 있던 게 주는 다부진 안정감은 부족한.

둔탁하나 든든한 옛것들 따르지 못하는 요새 물건이 어디 한둘일까.

뒤쪽으로 X자 모양 철제가 떡하니 튼실하게 버팅기고 있던.

바로 그 하나가 부러져 기웃하고 만.

하기야 어디 그것만이 다였을까,

이미 칠이 벗겨져 덧칠만도 두어 번,

이번 계자 앞두고는 구멍 하나하나 솔질을 했더랬지.

그게 아까워 또 더 쓰고 싶었던.

 

그런데, 아무리 부잣집 세간도 밖에 부려놓으면 너절하기 매한가지라.

그게 제 자리를 잡고 있을 적엔 제법 모양새를 갖더니만

세상에! 밖에 부려놓았다고 그리 허름할 수가 없더라니까.

그런 거다, 자리에 있다는 건 그 자리값이란 게 있는 것.

노인의 자리가 그런 대표적인 것일 테다.

집안에서 당신 목소리가 자신의 자리가 있을 때 추레하지 않은,

그만 당신 손끝이 끝나면 마치 삶이 거두어지는 것 같은, 바스라지는 존재감이라.

내다 놓은 부엌 철제선반 하나가 오래 시선을 묶었더랬네.

어둔 하늘 아래라 더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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