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께 샘들이 들어왔다.

미리들 연락하여 택시로 한 차를 만들어 들어오거나

일찍 서둘러 역에서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 버스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토록 거친 바람이더니 잦아들었다.

볕이 좋아 이제야 녹고 있는 눈길.

 

낮밥으로 국수를 내다.

요새 한창 해먹는 보은 식 국수라고 콩나물무침을 얹어먹는.

뜨겁게 주고 싶었다.

불 위에서 된장망에 국수사리를 하나씩 풀어 담아주었다.

토렴이군요.”

휘령샘이 알아주었더라.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차례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하는 토렴.

ː(退染)에서 온 말이다.

물든 물건의 빛깔을 다시 빨아내는 것 역시 퇴염.

 

택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자 부모님들이 보내온.

신혜샘이 보내온 견과류와 쌀부터, 이어 유설샘이 보낸 귤.

미처 안내를 받지 못했던 물건도 있었다.

우리 밀 초코파이 누가 보냈나 수배 좀...’

계자 부모방을 꾸리는수진샘한테 물었다.

체포!’

그다운 유쾌한 답이었네. 도윤 정인네 신혜샘이 보내온.

품앗이이자 논두렁 휘향샘이 보내온 방석도 닿았다.

어제는 희중샘이 보낸 그가 사는 지역 특산물 모시송편이 오더니.

171계자, 이 아이들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손발들이 마음들이 보태지는지.

아이들이 좋지 않을 수가 없을.

 

이번 계자는 휘령샘이 오름샘(계자 대장)이다.

그 역시 특수학급을 맡고 있으면서 귀한 방학을 이곳에 써오고 있다. 물꼬 15년차던가.

섬에서 고교생을 가르치고 있는 화목샘도 역시 연수와 연수 사이 물꼬로 달려온. 물꼬 12년차.

의사 국가고시를 막 치고 온 하다샘에

간호사 시험을 곧 볼 태희샘이 의료를 맡는다.

하다샘은 뱃속에서부터 계자를 함께했고, 태희샘은 언니 수연샘과 함께 물꼬 13년차.

재수를 하고 원서를 낸 뒤 온,

물꼬에서 보낸 시간들이 자신에게 교사의 꿈을 꾸게 했다던 현진샘은

초등 계자를 거쳐 청계를 지나 품앗이가 되었다. 물꼬 13년차.

조금 더딘 걸음으로 올 윤지샘만 해도 물꼬 16년차,

새끼일꾼 채성, 일곱 살 아이가 자라 이제 아이들을 돌보는 9년차가 되는.

물꼬 11년차 새끼일꾼 여원.

여느 새끼일꾼들도 그러하지만 웬만한 어른 몫을 넘는 그들이다.

물꼬의 새끼일꾼들은 그냥 그리 부를 수가 없다.

빛나는새끼일꾼이라 일컬어야 겨우 그들을 말할 수 있다.
자기를 쓰면서 성장하는 그네를 보면 눈부시다.

객원으로 마지막께 손을 보탤 물꼬 20년차도 넘는 윤지샘과 지윤샘이 있고,

썰매 일정을 관장할 현철샘이 있다.

밥바라지는, 대학 1년 때 물꼬를 만나 혼례를 올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들 자라 물꼬를 함께 오는 윤실샘(밥바라지 2호기)1호기 나.

그리고 물꼬에서 스무 해를 넘어 보내는 학교아저씨(아이들은 젊은 할아버지, 어른들은 삼촌이라 부르는)

밤새 아궁이 불을 때고 건물 바깥일들을 하며 뒷배로 있다.

 

낮 밥상을 물리고 학교 뒷마을 댓마를 지나 동쪽 산허리까지 걷는다.

아이들과 보낼 저수지의 환경을 미리 구석구석 훑어보기.

얼음은, 두텁다. 10센티미터를 파도 얼음이 저 아래.

계자 기간 계속 푹하다는 예보인데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썰매를 탈 수 있겠다는 가정 아래

한쪽에서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울 곳부터 가늠하고,

안전을 위해 어떻게 살피고 안내할지를 그려보다.

 

저녁 밥종이 칠 때까지 아이들이 쓸 공간들을 구석구석 닦아내고,

저녁 7시 샘들 미리모임.

이들이 해왔던 역사로, 그 애씀으로 우리는 또 이번 계자를 할 수 있게 된다.

저마다 바쁜 세상에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고 손발을 보탠다.

우리가 미쳤지. 우리는 왜 또 계자를 한다고 해서 이 고생들이라니.

이 모자라는 사람들아! 왜 또 이 가혹한 환경으로 와서 이 고생들을 한단 말이뇨?”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왜 계자를 하는지 안다. 그들을 지켜주는 물꼬란 걸 안다.

그래서 우리는 계자를 열어야 하고, 열고야 만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사회의 어른들이 보여준

사과 없고 책임 없는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부터 전하다.

그것은 약속이다. 그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같이 지겠다는 그런 결의.

아이들을 맞기 위해 안에서 할 준비들로 자정이 금세였다.

여느 해에 견주면 샘들이 적은 계자, 어느 해보다 고될.

아이들과 비율로 보자면 샘들 수가 적은 것도 아니지만

매우 불편한 이 공간을 샘들의 손발로 채우니

손 하나가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물꼬의 어른들은 다 자원봉사자들.

이 자본주의의 하늘 아래 어떻게 이런 공간이 가능한지 우리는 늘 경이로워한다.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 사람을 맞는다.

자정,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던 학교아저씨가 긴급하게 달려 오셨더랬다.

온수기가 이상하다고.

하다샘이 달려갔다. 고장이 났다고 했다.

기계도 기다렸다는 양 자기 존재 가치를 이리 알리는가.

날이 밝으면 아이들이 들어올 텐데.

샘들은 찬물 또는 난로 위 주전자의 물을 가져다 가볍게들 씻었다.

하루재기를 쓰고 있는 지금 03:30,

밤새 아궁이를 지키는 학교아저씨와

달려온 현철샘과 하다샘이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

히터봉을 보고 마그네틱 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단기 확인.

, 거기였다!

03.45 상황 종료. 온수기가 돌아간다!

어떻게 그 댁에는 딱 그 차단기가 있었더란 말인가.

1시간을 넘게 달려와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해결한.

(내일도 보장할 수 없는.

해날이고, 먼 멧골인 이곳이고,

문제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쉬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마침 통화가 가능했던(계자가 시작되면 우리는 거의 바깥세상과 차단된다) 새벽 1

저수지의 얼음 상태 때문에 한 잠깐의 통화였는데,

그저 이곳 상황을 말하는 가운데 문제의 온수기를 들먹였는데,

하다샘이 찍어 보낸 사진을 보고 5분 뒤에 다시 통화하자더니만

차단기를 가지고 달려왔던 현철샘이었다.

 

비로소 모두 눈을 붙이러 들어갔다, 뜻하지 않게 현철샘까지.

학교아저씨가 그랬다.

참 신기하요. ... 자꾸 뭣이 도와주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났던

그 옛날 만화영화의 주인공처럼

물꼬는 사람들이 늘 그리 나타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일을 어찌 사람으로만 한단 말인가,

하늘이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한다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의 일을 할지라.

계자가 그렇고 물꼬의 일들이 그러하다.

돈만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물꼬에 모인 선의지가 서로를 고무하고

우리의 애씀이 좋은 세상에 기여하는 거라 믿는, 결국 좋은 세상을 함께 꾸리는.

누가 돈을 준다고 이 거친 곳에서의 이토록 강도 높은 노동을 하겠다 모이느냐 말이다.

내가 너를 밀고 네가 나를 밀어간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라. 고마운 생이라.

171계자는 그렇게 또 특별한 계자를 예감케 하나니.

 

여담 하나.

하다샘이 그랬다.

인간이 기초교육을 이런 데 써먹는구나...

초등에선지 중학교 과정에선지 V=IR이 있었는데,

전압=전류×저항,

덕분에 고장을 알아챌 수 있었어요.

쓸모없어 보이는 공교육과정이 여기 실생활에선 참 유용하다 싶은순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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