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기온이 낮으면 산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제발 푹했으면 좋겠다 바랬더랬다.

그러나 또한 저수지 얼음은 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번 계자는 넉넉한 썰매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두 손 모아 기도했다지, 푹하되 얼음은 남겨달라고.

 

아이들과 산에 다녀왔다.

산은 거기 있었고, 또 변하고 있었다.

산판을 했던 자리에 어린 가시덤불들이 덮였고,

어린 소나무를 심어두고 있었다.

물꼬의 겨울 산오름은 거칠다. 마을을 감싸 안은 산자락에 길을 만들며 간다.

안나푸르나로 간 지난겨울과 비슷한 길이었다.

골짜기가 깊고 그만큼 스민 이야기도 많다.

그 이야기에는 물꼬가 전하고픈 가치관이 담겨있기도.

이번에는,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동학농민전쟁에서 관군에 쫓긴 얼마쯤의 마지막 동학도들이 스며들었다던

멧돼지골을 찾아보는 모험의 길.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고, 왜 멧돼지골을 택했던가 들려주며 길을 떠났다.

길이 어려울 땐 산짐승들이 다닌 흔적이 안전하게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물꼬의 산오름을 참 좋아한다. 이유는 거친 재미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산에 오른다.’(휘령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김밥.

샘들이 김밥을 쌌다.

밥 냄새 맡으며 김밥 싸는 아침은 피곤하더라도 그냥 행복한 시간인 느낌. (기분 좋은)’(현진샘)

샘들은 김밥을 싸며 부모 마음 혹은 이른 아침 나를 위해 애썼던 손길을 짚어보기도.

여원이가 어머니의 딸이 맞구나 싶게 예쁘게 김밥을 싸더라.

멸치와 김치만 들어간 물꼬 김밥,

더하여 김자반을 섞은 주먹밥.

간밤에 샘들이 아이들 여벌옷이며 화장지며 물이며 세세하게 가방을 쌌다.

199841일 훈련을 나섰던 특전사들 가운데 여섯이나 동사했던 민주지산.

그 줄기를 걷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안전하게 데리고 오겠다,

산오름 대장의 말이 귀 기울이며 움직이자 했다.

 

오르는 시간을 늦춘다.

멀리 집을 떠날 땐 정리를 좀 하고 가야지.

돌아와서도 삶은 계속 되고,

때로 우리는 어떤 뜻하지 않는 상황을 만나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잖은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해가 더 많이 퍼졌을 때 가리라는 생각도 있어.

겨울 아침이 늦은 멧골이라.

예선이가 옷을 챙겨 입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나를 챙겨놓으면 다른 한 녀석이 화장실을 가고.

한결이와 건우가 장갑을 두고 실랑이.

한결이라고 적혀 있는데, 자기 장갑을 꺼내주었는데 이렇게 이름이 적혀있다고.

휘령샘이 건우에게 물꼬장갑을 주었다.

 

떠나다.

10시가 넘어서야 학교를 뒤로 했다.

세미가 자리를 털고 같이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발가락을 다친 준형이가 남아 윤실샘의 돕기로 해 서른하나 아이들이 나선다.

산오름 일정의 뒷배 현철샘이 이미 들어왔고,

현철샘과 학교아저씨는 썰매 준비를 해서 우리랑 저수지에서 만나게 될 것이었다.

학교를 끼고 돌아 뒤란 댓마를 지나 마을 뒷산으로 든다.

야광조끼를 샘들 아니어도 고학년 아니어도 더 입을 수 있어

우리 덩어리를 누구든 쉬 발견할 수 있으리.

감기가 찾아왔다. 목이 잠겨버렸다. 어제부터 마스크를 하고 있다. 음식도 하는 터라.

목청 좋은 윤수가 맨 앞에서 확성기 노릇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제 특성을 가지고 적절하게 어른을 도우며 계자를 같이 꾸린다.

벌써부터 언 농로가 우리를 긴장케 하기도.

오늘은 어떤 길이 될 것인가?선발대로 인우와 정인이와 건우와 작도가 길을 같이 뚫어주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깔끄막 아래서 다리쉼을 한다.

우리는 마치 절벽처럼 느껴지는 곳을 거미처럼 붙어서 오르려 하니까.

경치 좀 봐!”

먼저 오른 이들이 뒤를 돌아 오르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다

건넛산을 보았다.

산 아래서는 그저 얕으막한 산군이었는데,

겹겹이 산들이 있었다.

정말 에베레스트가 따로 없다고도 하고.

그렇게 한 고개를 넘고 능선에 앉았다.

바람이 자고 있었다. 볕이 두터워 아이들은 여름 같다고 했다.

옷을 너무 많이 여몄더랬으니까.

앞을 풀어헤치고 걷기 시작했다.

지율이가 일곱 살 윤진이를 챙기며 오른다.

몸집이 작은 여섯 살 하준이는 수십 번 넘어졌는데

그럼에도 말은 계속했다. 말하는 오뚝이?

 

능선을 따라 걷다가 다른 산과 만나는 골짝을 건너 오르기 시작했다.

무덤 하나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파헤쳐져 있었다.

그때, 뒷사람들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능선만 따라오면 되는 길인데.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뛰었다. 내려갔고 올라갔다.

멀리서 아이들 소리가 났다.

하준이가 맨 앞에 있었다.

옥샘도 길을 잃었어요?”

거참, 내가 그들을 구하러 갔는데 말이다.

하다샘을 중심으로 세미 율희 하랑 수범 민혁이도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다샘은 길을 잃은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앞이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리 말했다고.

하준이가 도토리를 줍느라고 자꾸 멈췄던가 보다.

정말 끊임없이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하준의 이야기를

때로 하랑이가 들어주기도 하고 빨리 가자 끌기도 하고.

그럴 땐 또 어린 하랑이 큰 누이가 되는.

하준이를 잡고 앞서 달리다시피 길을 되짚어 아이들 무리와 합류.

애가 작고 가벼우니 넘어질 일도 없었다.

손에 달고 오는데, 마치 인형 하나 끌고 오는 듯.

빠른 걸음을 달리듯 매달리듯 걸은 하준.

그 와중에는 말을 멈추지 않는 하준이었네.

 

두 번째 고개는 매우 가팔랐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들은 고라니며 너구리며 똥을 발견해냈고,

상수리며 도토리며 열매들을 주웠다.

참나무잎들이 푹신했다. 저걸 타고 미끄럼을 타고 좋으련,

아직 방향을 틀어서는 안 된다.

곧 너른 곳이 나타난다.

키 낮은 나무들이 운집해있다.

지난겨울 산판을 했던 자리에 어린 소나무를 심는다고 예초기를 돌려

키가 낮아 지나기에 좋았다.

수행자들처럼 걷는다.

무슨 개미떼들처럼 걷는다.

이 산이 무어라고 우리는 온 하루를 바쳐 이리 걸을까?

아이들에게 숙제를 안겼네.

우리 왜 산에 갔는가 생각하고 저녁에 둘러앉자고.

 

도시락.

마지막 세 번째 고개를 넘으며 서쪽으로 난 능선으로 길을 틀었다.

산등성이가 동서로 걸쳐 있는 남쪽 편 경사지는 볕이 좋았네.

멧돼지골도 이쯤이지 않았을까?

멧돼지들이 안전하게 스며든 곳에 마지막 동학도들도 그러지 않았을지.

낮밥을 먹을 장소. 날이 춥다면 짧은 산오름이나 푹해서 길어도 될.

김밥과 주먹밥을 꺼내들 먹었다.

앞에서 서윤이가 떨어뜨리고 온 장갑을 뒤에서 여원 형님과 유빈이가 하나씩 주워온다.

정인과 지율이 채성 형님한테 다가가 새끼일꾼 되고 싶다했다.

채성 형님, 괜찮은 인재가 많구나 싶더라나.

여원 형님은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농을 했다던가.

산오름이 늘 버거운 채성 형님은 자신이 흔들릴 때 큰도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단다.

그렇다. 애들을 믿고 하는 계자다!

제 깊은 걱정이 뭐라구요?”샘들요!”

아이들이 알고 있듯이 머리 큰 어른들이 더 골칫덩이(까지는 아니고 ).

 

낙엽을 긁어내고 흙을 좀 파서 버너 두 개를 켰다.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앉은 자리에서들 저 뒤로 움직이도록 안내를 했다.

꼭 안 듣거나 잊어버린 아이 하나쯤 있지.

서윤이가 앞으로 지나다 나무뿌리에 걸려 엎어졌다.

버너 위로 얼굴이 쏟아진. 아찔! 덜컹!

코펠이 뒤집어졌다. 얼른 불을 껐다.

신의 가피라. 서윤이의 손바닥만 살짝 긁혔다.

하여 코코아를 아이들만 먹었다. 마실 물도 모자라게 된.

더 안전한 상황을 또는 위험을 잘 알리지 못한 어른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서윤을 비난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다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하나쯤 날선 말을 던질 만도 할텐데.

이번 계자 아이들 결이 그러했나니.

혹 마지막 끓인 물이 모자랄까 큰도를 맨 뒤로 가게 해서 코코아를 못 먹을 수도 있다 안내했는데,

아이들 모두 딱 다 먹을 수 있었네.

없으면 더 찾는다. 아이들이 물을 찾았다. 떨어졌는데,

다행히 아래 저수지로 썰매를 끌고올 이들에게 마실물을 부탁해두었던.

저수지가 멀지 않다. 혼자 뛰어갔다 물을 갖고 와도 될 만치.

서윤이가 넘어져서 너무 식겁했는데, 잘 처치하고 잘 마음을 추슬러 다행이었다. 덕분에 모두들 코코아 타먹는 순서와 시스템이 생겨났다

그래 우리는 또 그렇게 일어난 일에서 배우고 또 변화해 가는구나 싶었다.’(휘령샘)

이제 길이 넓어질 것이었다.

산판 하던 차량이 다니던 곳.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썰매장.

바로 아래가 우리들의 아이스링크다.

간밤의 우리가 두 손 꼭 모으고 기도했던 보람이었나.

푹해서 산은 수월하게, 그러나 얼음은 녹지 않게!’

이 주 내내 그토록 푹했는데, 얼음은 두터웠다.

현철샘과 학교아저씨가 대기하고 있었다.

두어 차례 아이들 걸음에 따라 시간이 조절되었더랬다.

3시 만나기로 했고,

마른가지 사이로 저수지가 보이고 있었다.

어이!”

어이!”

화톳불 위에서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었고,

썰매들이 대기 중이었다.

물이 끓고 있었고.

가장자리로는 현철샘이 안전줄을 쳐놓았다.

여기선 준선이가 윤진을 또 그리 챙겼네.하준이가 와서 턱 아래서 또 종알거렸다.

옥샘, 자유학교는 정말 좋아요! 물꼬 잘 왔어요! 옥샘 짱이예요!”

어떻게 이 아이를 시끄럽다 하겠는지.

아이들이 쏟아진 얼음판은,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 없었다.

끌어주고, 밀어주고, 같이도 타고, 번갈아가며 타고, 발로도 달리고,...

현철샘의 제안으로 두 패로 나눠 경기도 한 판하고.

그래도 역시 그냥 제 뜻대로 노는 게 더 재밌는 썰매라. 그게 더 물꼬스런.

무슨 썰매까지 우리가 경쟁하느냐 말이다. 경기는 경기대로 의미를 같겠지만.

학교아저씨는 진즉 아궁이에 불 지피러 내려가고

현철샘과 채성 형님이 뒷정리로 남았다.

저수지물로 믹스커피도 마시고, 썰매 잘 타는 법 특강도 들었다고.

채성샘, 내 잊지 않겠네, 썰매를 더 타다 그대가 의자 하나 해 드셨다고, 하하.

흐려진다던 예보가 있었더니

해 넘어가도록 말짱해 아이들이 얼음판에서 나올 때까지 그리 춥지 않아 또 감사했던 하늘.

 

저녁 때건지기.

겨울산을 오르고 내려왔다고 어른들 하산주 마냥 어묵탕을 준비했으나

잘 팔리지 않았네.

김밥이며 초코파이며 군고구마며 잔뜩 배를 채운 터라.

부엌에는 지윤샘과 윤지샘이 와 있었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반기다.

쪼르르 달려가 저들 근황도 전하고.

정인이는 산 갔다 와서 윤진이를 씻겼다 자랑도 하고,

귓속말로 댄스대회에서 인기상 탔다고도 하고.

아이들이 입을 모아 이번 계자 너무 재미있었다 해서 인상 깊었다는 윤지윤샘(우리는 두 샘을 그리 엮어 부르기도).

2023년 한국에서의 첫 목적지가 물꼬가 된 윤지샘.

태국에서 새벽비행기 타고 한국 오자마자 바로 달려온.

지윤샘은 올해 첫 휴무일을 여기서 보내는, 내일 출근하려 아침 버스로 나가야 하는.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이 속틀 보고 바로 움직이는 그들이었고,

차림표 보며 바로 필요한 재료들을 찾아내 씻고 자르고 있었다.

그찮아도 샘들한테 산오름까지만 힘껏 달리라고,

다음은 윤지윤샘들이 애들 건사할 거라고...”

샘들 바닥난 체력에 이제 정말 쓰러져도 되는.

우리에겐 윤지윤샘이 있다.

휘령샘은 정말 아이들을 씻긴 뒤 저녁밥을 포기했더라.

저녁 설거지도 두 샘이. 그야말로 샘들의 체력보충이라.

윤실샘이 걸레질 행주질을 하고, 윤지샘과 지윤샘이 재료를 썰고,

현철샘은 김치부침개를 붙이고, 나는 이 불에 잡채를 볶고, 저 불에 떡볶이를 젓고, ...

넷이나 붙어서 마련한 저녁밥상이라.

산을 다녀오면 안간힘을 쓰며 차릴 밥상일 것을...

 

샘들은 좀 늘어졌으나 아이들은 산 하나 더 넘고도 오겠다.

여전히 뛰어다니는 아이들.

큰 산을 하나 넘고 온 아이들은 용기백배해서 밥상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세미 유빈 서윤이가 현진샘이랑 밥을 먹으며 눈을 뜬 것을 감은 거라 장난을 치는데

그걸 또 진지하게 놀이로 하고 있기도.

자리를 옮겨가며.

옷방도 북적이고 있다. 옷방이 옷만 갈아입는 곳, 이불방 만이 아니다.

은밀한 이야기가 흐르는 곳.

수현이가 모태솔로지만 연애상담은 잘한다며 현준과 하다샘에게 연애특강도.

하랑이는 못 알아들으니 연극처럼 남자 여자 역할을 두어 설명을 하는데,

밀당을 잘해야 하는 거더라고, 연애가.

현준이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었네. 자신의 전 연애에서 밀기를 못했나 보다 한.

수현 하랑이는 여기서 처음 봤는데 친해졌다고.

정인이와 지율이가 여기서 여러 해 쌓아가는 우정처럼 그리 또 보면 좋을세.

 

지율이가 어떤 계자보다 재밌는 산오름이었다 했다.

저 산 위에서 보니까 윤진이 챙기고 다니느라 엄청 힘들었을 텐데...”

근데 재밌었어요!“

맞아, 누군가를 돌보는 건 힘들지만 우리를 뿌듯하게 해.”

돌봄을 받는 이는 받는 대로 주는 이는 주는 대로 성장하는 산오름.

 

한데모임.

때로 노래를 통해 세대를 잇기도 한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불렸던 노래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함께 부르는.

거기에 담긴 시대의 기억들이 있고,

그 좋은 역사를 또 같이 나누고픈.

오늘은 농민활동을 하던 이들이 부르던 농민가를 같이 불렀다.

우리(아이들)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불렀음직했을.

인우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몇 번이나 부르고 싶어 했는데,

기회가 왔다. 그런데 2절까지 부르고 흐지부지 다음 곡을 고르느라 떠들썩한데

작게 3절까지 끝까지 혼자 부르고 있었네.

 

오늘 산오름이 어땠나 물었고,

왜 우리는 산에 갔냐 물었는데,

저마다 다른 대답이 재밌고,

그러나 계자를 돌아보면 모든 계자가 비슷한 대답이기도.

그런데 가장 놀라웠던 건 말하기와 경청.

솔직했고, 진지했고, 또박또박했고, 잘 조직한 말하기,

그리고 말하는 이를 향한 예의를 갖는 경청에 대단히 놀랐다.

첫날 끊임없이 두더지작전처럼 복닥거리던 아이들이었는데,

누군가 말하면 다른 이들이 모두 그를 향했다,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의 나눔이 끝날 때까지.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고맙던지.

학교에 남았던 6학년 준형은 자기를 쓰며 뿌듯할 수도 있었으련만

좀 뺀질댄다고 윤실샘은 시키기보다 당신 직접 하는 쪽을 택했던 듯.

일은 많고, 실랑이 혹은 설득의 시간보다 그냥 내 손이 빠를.

"샘, 힘이 들어도 경험을 주어야 다음에 그도 할 수 있어. 그래야 우리가 써먹을 수 있음."

우리 흔히 잘 하는 아이 중심으로 심부름도 시키기 쉽다.

안 움직이는 아이 엉덩이도 일으켜 세우기.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준형을 좀 쓰지 못해 아쉬운 하루일세. 그에게 줄 경험 세계를 하나 놓쳐서.

 

강강술래.

모든 계자 가운데 가장 재밌었다 말할 수 있을.

진행자의 큰 목청도 한몫하거늘 감기로 목이 잠겼는데,

뭐 같이 해도 뭐 같이 알아먹는 말처럼

아이들이 목청을 빌려주었네.

마지막 온 몸 풀어주는 강강술래.

열이나서 타이레놀을 처방 받고 잠이 들었던 건우,

우리 노는 소리에 좀이 쑤셨던가보다 문을 열고 들어와 같이 뛰었다.

이제 다 나았다며 약주고 이불 챙겨주던 채성 형님을 고맙다고 안아주기도.

대동놀이 땐 옥샘 목 때문에 걱정이 컸으나 이상하게 너무 재미있었다.’(채성 형님)

이심전심이라. 우리 모두 어느 계자보다 재밌는 강강술래였어라.막 합류한 윤지윤샘발도 있었을.

 

장작놀이.

가랑비 내리는데도 불을 피웠다.

근데 불 피울 때 비가 와서 건우 간신히 살려놨는데

불도 못 보다 했지만 비가와도 불을 피우는 게 물꼬스러웠다.‘(채성 형님)

물꼬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 한다 뭐 그런? 그런 걸로.

불가에서 아이들이 둘러서서 노래를 부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나는 안부를 거야.”

그래놓고는 뛰뛰빵빵 대목에 이르러 참지 못하고 그만 열창을 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동우.

불쇼도 하고(입에서 불을 뿜는 그런 거 아니고 그저 빛싸라기 하늘로 올리는),

꼬챙이에 끼운 마시멜로도 불에 구워주다, 현철샘과 손 엄청 뜨거워하며.

 

지난 닷새를 되돌아보며 마음 나누기.

또 놀라지, 한데모임의 그 말하기와 듣기를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밖에선 수선스럽기도 하련만.다음 계자를 기대한다는 아이들이었다.

하랑이는 친구들이 영어캠프 간 대신 여기 있는데 너무 좋다 했고,

세미 율희 계속 붙어 다니며 계자 또 오고 싶다 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는.

불가에서 불꽃 보며 한무데기 꽃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모두 꽃이니 어느 때고 꽃으로 피리. 이 밤인들.

꽃으로 필 것이니 이미 꽃인.

이 겨울 얼마나 환하게 핀 꽃들인가. 향기가 다 나려는.

 

인디언놀이.

감자가 익어갔다.

현준이와 나는 인디언놀이 만큼은 오랫동안 서로 공격(?)하고 방어해왔다

우리는 친하진 않지만(?) 그런 면에선 또 스스럼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왔다.’(휘령샘)

오늘도 그런 날 하나였다고. 즐겁고 행복했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신이 났다고.

아이들끼리도 그렇지만 어른들도.

검댕이를 묻히는 법도 날로 진화하다.

방어가 허술한 목을 공격하기도.

아예 얼굴을 내주는 모두였더라.

하나둘 먼저 자러 들어가기도.

 

모둠 하루재기.

모둠방에 자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여자 방에 모일 수밖에 없어

1,2,3,4모둠 모두가 같이 한 하루재기.

한데모임, 전체 갈무리 이어 벌써 세 번째 동그라미다.

다 같이 들어주고 말하고 웃고 하는 모습을 한 번 더 봐서 좋았고,

우리의 주제곡을 빠뜨리지 않고 손말로 노래 불렀네.

예선, 물꼬에 하루만, 아니 이틀만 더 있으면 안 되냐고 묻고 있었다.

 

잠자리.

아이들이 잔다.

여자방에서 윤지샘은 다 다 꽃이다라는 이번 주제에 맞춰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어주고 있었다.

눕지 않은 아이들 부를 때도 “1번 꽃 2번 꽃 누우세요. 3, 4번 꽃도 누우세요...”

금세 쌕쌕거리는 아이들.

 

샘들 하루재기.

초기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지,

계자 초반 샘들이 힘을 기울이는 것 하나는 이런 거.

엿새를 함께 살기 위한, 그 새로운 세상이 잘 굴려가려면

초반에 안내가 잘 되어야.

그러면 아이들이 주인으로 계자를 잘 꾸려가는.

샘들 수가 적었던 계자에 견주면 흐름이 아주 좋았던 계자였는데,

휘령샘이 오름샘으로 서서 태희샘과 화목샘이 시스템을 잘 만들어주었던 게 첫째 까닭 아니었을지.

태희샘과 휘령샘은 공간을 너무 잘 알고 전체 과정이 머리 안에 다 있는데다.

화목샘이 안정적인 분위기를 잘 만들어준.

그러면 아이들이 주인으로 잘 꾸려가진다.

부엌의 안정감도 큰.

어수선하면 어려운데, 계속 청소하고 정리하는 밥바라지 2호기 윤실샘.

재료와 준비물을 알려놓으면 바로 음식을 할 수 있도록 다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런 안정감이 있어 태희샘을 보낼 수 있었고(간호사 국가고시를 앞두고 있어),

그 빈자리로 윤지윤샘들이 들어온.

어떻게든 (무사히)굴러가는 물꼬라.

 

지윤샘은 여기 와 있는게 안 믿긴다고.

날씨부터 물꼬에서 겪어보지 못한 겨울날씨가 거짓말 같았다지.

처음부터 참여했으면 좋았을 걸 싶기도 하고, 멋지고 애쓰셨다 말해주고 싶어요.”

가마솥방에서 차부터 마시며 꼭 외갓집 온 기분이었다 한다.

윤실이모와 삼촌과 사촌동생 준형과 사촌언니 지윤과...

아이들이 컸던데, 저녁에 보니 키만 컸더라나.

마지막 날인데 아직도 에너지가 엄청 나 놀랐다고.

이 문장은 언제나 계자 끝에 우리가 곱씹는 문장이기도 하다.

사람이 힘들 때 밑바닥이 나오는구나,

내 몸이 건사가 안 되니까 아이들 건사도 너무 힘들었다는 하다샘의 고백도 있었다.

무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오길 잘했다.

이번에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곳이 마음과 시간을 많이 내야지만 올 수 있는 곳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서,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느끼기기 위해서이다.’(지윤샘)

반갑다는 느낌을 평상시엔 느끼기 어려운 것 같은데

오늘은 하루 종일 내내 반갑다고, 그래서 좋다고 했다.

옥샘도 다른 샘들도 정말 많이 애쓰셨습니다.”

미안하고 행복하다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잘 살자고,

꽃노래도 좋고 배우고 싶고 손말도 이쁘다고.

지윤샘이 그리 써놓고 갔다.

내일 눈 뜰 때면 지윤샘은 대해리발 영동역행 버스를 타고 있을 테다.

 

가마솥방은 음악으로 채운다.

아이들에게 물꼬가 하는 말 같은 것.

CD플레이어가 자꾸 덜덜거렸다.

윤실샘이 하나 사 주었다.

계자 기간 중에 물건을 주문하고 그 물건이 배달돼 와서 쓴다. 신문명이다.

마음을 내고 나눠주어 고마운.

샘들이 이곳에 오면 그런다. 둘러보고 필요하다 싶은 걸 채우는.

어제는 교무실 인터넷 상황이 원활치 않아 기사가 다녀갔다.

오늘 온다는 걸 당장 써야할 사정을 전했더니 그나마 일찍 온.

가까운 곳에 어제 오전 공사가 있었고, 정오께 될 거라더니

안 돼서 계속 연락했는데 이제 우리 쪽 회선이 문제라나.

와서 정작 연결은 쉬 되었는데,

그쪽에서 뭔가 보고를 하는 단계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켜 1시간여 머물다 떠났네.

참 쉽잖은 계자 기간일세.

글을 쓸 수 있는 그 시간을 딱 책상을 점거하고 있었으니.

밤에도 쓰지만 오후 어느 때 잠시 그리 앉아서 써야 합하여 하루치가 써지는 기록이라.

여튼 인터넷은 다시 연결되었고, 이렇게 쓸 수 있다. 고맙다.

 

운이 정말 좋은 하루였다. 서윤이도 크게 다치지 않고 흘러갔고,

날씨도 따뜻했지만 썰매놀이를 할 수 있는 따뜻함이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고구마도 먹고 핫초코도 마시고 운수 좋은 날의 연속이었다.’(현진샘)

이날만 그러했겠는가, 계자의 모든 날이 그러했더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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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6 2월 어른계자, 2023. 2.24~26.쇠~해날. 맑음 / 산오름(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황룡사) 옥영경 2023-03-20 532
6255 2023. 2.23.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03-19 291
6254 2023. 2.22.물날. 맑은 낮이었으나 밤비 밤눈 옥영경 2023-03-19 251
6253 2023. 2.21.불날. 맑음 옥영경 2023-03-17 274
6252 2023. 2.20.달날. 맑음 옥영경 2023-03-17 341
6251 2023. 2.19.해날. 맑음 옥영경 2023-03-15 269
6250 2023. 2.18.흙날. 까만 하늘 옥영경 2023-03-15 282
6249 2023. 2.17.쇠날. 맑음 / 다시 백담계곡으로 옥영경 2023-03-15 264
6248 2023. 2.16.나무날. 흐리다 오후 눈싸라기 / 설악산 소청산장 옥영경 2023-03-15 292
6247 2023. 2.15.물날. 맑음 / 회향 옥영경 2023-03-13 400
6246 2023. 2.13~14.달날~불날. 흐리고 눈비, 이튿날 개다 옥영경 2023-03-13 260
6245 2023. 2.12.해날. 때때로 흐린 / 설악산행 8차 열다 옥영경 2023-03-11 254
6244 2023. 2.11.흙날. 흐림 옥영경 2023-03-09 270
6243 2023. 2.10.쇠날. 흐림 옥영경 2023-03-07 254
6242 2023. 2. 9.나무날. 다저녁 비, 한밤 굵은 눈 옥영경 2023-03-07 260
6241 2023. 2. 8.물날. 맑음 / 2분짜리 영상 옥영경 2023-03-06 278
6240 2023. 2. 7.불날. 맑음 옥영경 2023-03-06 297
6239 2023. 2. 6.달날. 맑음 옥영경 2023-03-06 281
6238 2023. 2. 5.해날. 맑음 옥영경 2023-03-05 284
6237 2023. 2. 4.흙날. 맑음 / 입춘제 옥영경 2023-03-05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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