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3.쇠날. 맑음

조회 수 265 추천 수 0 2023.03.05 23:54:03


아침 8시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할 경옥고였다.

사흘 곤 경옥고를 다시 하루 식힌 뒤 꼬박 하루를 더 곤다 했다.

장작불 때서 경옥고를 만드는 벗네서

같이 불을 지키던 며칠이었다.

나머지 일은 그에게 맡겼다.

이른 아침 대처 식구네 가서

차례로 쌀죽과 찐 가리비로 밥상을 차려주며 출근을 돕고 서울 길 올랐다.

여기는 여의도.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말없이 가다 백미러를 보며 기사가 말했다.

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됐거나 하는, 여기 사람 아니라는 그의 확신.

특별한 옷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 아이의 막내고모가 준 너무나 평범한 외투를 걸쳤을 뿐이었다.

영어 한 마디 쓴 것도 없는데요...”

분위기가 그렇단다.

멧골 촌부의 어리숙함이 보이기도 했으려니.

끊임없이 사람을 태우고 내리는 택시 아저씨들은 반 무당이라던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삶을 안고 산다.

특이한 옷이 아니어도 말투가 아니어도 그의 삶은 그에게서 묻어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서울역에 내리니 기표샘이 차를 끌고 와 있었다.

오늘과 내일의 움직임에 동행하기로 했다.

말이 동행이지 직장인인 그가 반차를 내서 산골 할미를 거든.

인수봉이 내다보이는 곳의 오래된 중고서점에 가서

30년도 넘어 된 인연들을 만났다.

하나도 나이를 먹지 않은 주인아저씨가 2층에서 내려왔다.

세상에, 어찌 그리 세월을 비껴갈 수 있는가!

오른쪽 어깨를 살짝 앞으로 내민 특유의 행동이 여전한 아저씨.

그런데 아저씨는 바깥에 책을 보러 가셨다는 걸.

큰아드님이었다.

20대의 그는 아버지랑 그리 닮지 않았더랬는데,

이제 아버지랑 똑 같은 특유의 자세로 앞에 섰다.

유전자의 무서운 힘!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늘 생각하지만, 헌책방은 책이 너무 싸다.

값을 더 내야할 것 같은 생각으로 몇 권의 책을 들고 나온다.

 

작은 모임 하나를 건너 부암동으로 이동, 선배가 하는 커피상점에 들어선다.

물꼬에 오는 걸음에 견주면 너무 야박한 방문이다.

그간의 삶을 주고받은 뒤 선배가 안내하는 두 곳을 찾아간다.

평화나눔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꾸리는 공간이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는 이들의 부지런함을 본다.

그것은 어제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는 내 뜻이기도 했다.

 

낮밥도 그랬거니와 저녁밥도 미리 물어온 기표샘 덕에

집안에서 와인과 조개찜을 그득하게 해먹는 호사도 누리다.

누군들 바쁘지 않은 삶인가.

고맙네, 그대.

물꼬의 인연들이 지역마다 곳곳에 있고,

그래서 강연이라도 가면 그곳의 인연들을 이리 만나 길을 안내받는다.

고맙네, 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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