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8.물날. 눈

조회 수 363 추천 수 0 2023.02.11 10:43:01


늦은 오후 멧골에 눈이 날리고

이장댁 곶감 작업장의 화덕에 마을 사람 댓 둘러앉았더랬다.

겨울 들머리 여러 날 손을 보태 함께 일했던 곳이다.

난로는 후끈 달았고,

고구마와 가래떡이 구워지고 있었다.

상에는 곡주와 함께 먼 바다에서 온 문어숙회와 두어 가지 안주가 올랐다.

사는 일이 별 거 없다,

이런 순간이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계자 때 바삐 빌렸던 종이컵(산오름에서 쓰느라)이며

우리 부엌에서 넉넉한 가래떡이며 고구마 콩나물 당근이며를 나누었다.

언제나 드리는 것보다 받아오는 게 또 더 많다.

요리기름이며가 든 선물 세트, 문어숙회, 막 구워서 잰 김이며를 또 한가득 내미셨다.

계자 때 마을에서 과일이며 들여 준 다른 댁에도 가래떡을 보냈다.

 

교육 일정이 없는 겨울 아침은 또 이런 게 좋다.

천천히 아침을 열었더랬다. 몸을 풀고.

낮밥을 먹고 사람맞이 청소를 했다.


2시 군청 산림과 사람들 셋과 협의가 있었다.

이전 단독 좌담에서 다식으로 쿠키를 사왔던 과장님은

부하직원들과 온다고 더 큰 쿠키 통을 들고 오셨다.

학교터 관련 일은, 지난 1년은 씨름이었다면

1년은 협의의 과정이 될 것이다.

학교터 주인이 바뀌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물꼬가 학교를 사는 일은 엄두도 안 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재산화할 게 무엇 있겠는가.

무리해서 사서 그걸 갚느라 어깨 휠 게 무언가.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니.

큰돈을 들여 사는 순간 물꼬는 물꼬의 순기능들을 잃을 게 뻔하다.

예컨대 지금은 교육 일정에 신청자가 한 명만 있어도 취소되는 일이 없다.

그 값을 통해 유지되는 이곳이 아니니까.

물꼬가 공간을 쓸 수 있느냐 마느냐가 관건.

쓰기로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잘 쓰면 될 것이다.

그 과정이나 방식을 논의하는.

언제나 물꼬의 뜻대로 흐른다.

왜냐하면 흘러가는 대로 가는 물꼬니까.

우리는 거기서 다만 정성스레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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