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들 해건지기.

새벽을 가르고 고래방으로 향한다.

무에 대단한 걸 하자고 우리는 모여서 이 고단함을 밀고 이러고 있는가.

아침에 샘들을 깨우는 마음이 제일 어렵다. 그 고단을 알기에 차마 깨울 수가 없는.

5분만 더, 5분만 더 있다가, 5분만 더 잠을 채워주고 싶다.

좋은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는 그런 거,

뭐라도 내가 해보는 거,

이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주는 거.

이 아이들에게 이 시대 넘치는 풍요와는 또 다른 영혼의 충만한 문화를 주는 거,

사람살이의 따스함을 나누는 거,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배우는 일이므로 내 성장을 향하기도 하는

그런 마음들로 우리 모였다.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계자와 샘들 한 분 한 분을 위해 대배했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함.’(현진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겨울, 대배는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몸이 데워지는 방법이 되기도.

눈은 떴는데 정신은 아직 잠 속에 있던 채성 형님을 샘들도 더는 깨우지 않았다.

새끼일꾼들은 하루 정도의 아침은 이리 건너가야 한다. 잠과의 사투가 어른만큼은 어려울.

역시 열아홉이 되는, 품앗이를 앞둔 여원 형님은 아직 꼿꼿하다.

계자의 과정들이 새끼일꾼 저들을 얼마나 키워줄지 생각하면 기대가 크다.

 

호흡명상 때 신비한 체험이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얘기가 길면 바빠지니 저녁에 나누겠습니다.”

특정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뭐 종교성은 있다. 우주에 깔린 절대적 힘에 대한 경외)

살짝 종교적 체험이 일어났던.

커다란 거인이 인자하게 미소 짓고 앉아 아이들을 보고 있고,

그의 오른편 뒤에 내 몸이 그의 몸에 붙어 한 몸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좀 신비주의자인 면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기이하고 생생한 느낌이라니...

아마도 어린 아이들을 건사하고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어떤 기운이 덜어준 것 같은.

좋은 기운이었고, 이 모든 것이 이 아이들에게 닿으리라 여긴다.

물꼬에서 하는 일들이 선할 때만 그 기운들도 힘으로 작용할.

또 열심히 살아야겠네.

 

해건지기.

아이들과 달골에서 하는 해건지기.

몸은 학교에서 풀고 오르다.

내일 산오름에 대한 연습 같은.

달골 대문에 모두가 모여 한번에 느티나무 동그라미로.

둘러서서 이곳의 의미를 전하고, 온실돔 명상방도 소개하고.

지느러미길로 시작해 천천히 걷는다.

감나무 아래 들머리 계단을 오르고 옴자 사이를 걷고,
수로가 휘돌아나가는 뽕나무 아래서 아침뜨락을 지키는 난나와 티쭈한테 인사도 건네다.
아고라에 둘러앉아 새 학년도를 이끌 힘도 받았네.

달못을 지나고 돌의자에 앉아 마을과 학교를 내려다보고
아가미길을 걸어 대나무기도처를 짚고 미궁 앞에 서다.

게송을 외며 중심의 느티나무를 향하다.
그곳에서 하늘과 이어져 오래오래 머물렀다.

다시 나와 미궁을 지키는 뚱카 이카에게 인사하고

버들치들 사는 밥못을 돌아 꽃그늘길로 내려서다.

아이들이 알록달골한 티피를 지나치지 않지.

지금은 계자를 하러 학교로 내려갔지만

다른 때는 멧돼지로부터 아침뜨락을 지키는 제습이의 임시막사라고 알려주다.

다시 느티나무 동그라미에 지금 우리 곁을 스쳐가는 마음을 잡아 서로 나누다.

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화장실은 기숙사 햇발동을 쓰는.


일곱 살 윤진이 툴툴대기는 했지만 제 발로 끝까지 다 걸어냈다.

그의 옆에는 마지막까지 그를 돌봐주는 정인이가 있었네.

길의 마지막 굽은 길은 역시나 얼음이 녹지 않았는데,

오르내릴 때 애들이 계곡 쪽으로 떨어질까 아찔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한다고 휘령샘이 바깥쪽(계곡 쪽에서 안내하느라)에 선 걸

그곳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상황을 잘 아는 내가 그의 팔을 붙잡아 끌어들이기도.

상황이 이래도 아이들은 논다.

이 천지를 모르는 것들이 미끄럼을 자꾸 타고.

채성 형님처럼 예선이처럼 맥없이 그냥 미끄러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수범이가 미끄럼을 타다 계곡으로 날려버릴 뻔도.

하늘이 보우하사!

아이들이 노는 것은, 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다칠까 신경이 곤두섰다

매섭게 안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했던 말들은 내게도 영향을 주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휘령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감정이 담길 때 불편이 일어나는 게 아닐지.

감정을 싣지 않고 상황만 담길 때 듣는 아이들도 말하는 어른도 편할.

휘령샘이 오름샘으로서 어깨가 무거운 계자여 말이 더 강했을 수도.

길이 아주 반들반들해졌다.

밥준비를 서두르려 차를 끌고 올랐는데 내려갈 길이 걱정일세.

아니나 다를까, 내려오던 차가 비틀. 겨우 바로 아래 마른 땅에 무사히 안착했던 차바퀴.

청년들은 그들 문화답게 게임에서 퀘스트를 해결한 기분이 들더라나.

 

달골에서 부엌까지 선물을 들고 온 아이들.

민혁이가 밤톨을 주며 나중에 짬내서 달골에 밤 주우러 가자 했다.

하이고, 내가 시간이 어찌 나겠니.

하지만 저가 뭘 알랴.

그래 가지 뭐. 정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나중 일을 모르는 게 사람 일.

민혁이랑 밤 주으러 가고 싶네.

도토리도 주워 팽이처럼 돌렸던 민혁.

윤진이도 선물을 들고와 내밀었다. 밤이다.

우리 집 아이 어릴 적 집만 떠나면 그렇게 선물을 들고 왔다.

작고 예쁜 돌, 나뭇잎, 나무 열매, ...

새가 둥지에 모이 물어 나르듯그리 보물을 모아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그 마음 잃어버리지 않게 잊지 않게 하고픈 순간들.

사진을 잠시 맡게 되어서 중간에 옷을 버리고 열심히 뛰었는데 뛴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 모습이 너무 예뻤다.’(채성 형님)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감자케이크를 밥상에 올렸다. 유치원처럼 1월에 생일 든 모두를 모아 하는 잔치.

하랑, 소윤, 유빈, 준형, 현준.

나는 예쁘다/ 나는 귀하다/ 나는 기쁘다/ 태어나서 고맙다.”(물꼬에서 부르는 생일노래)

빵과 잼이 나왔다.

귤잼은 간밤에 넉넉한 귤로 한 항아리 만들었다.

감잼은 마을에서 나온 감으로 올 겨울을 위해 진즉에 졸여 놓은 것이다.

감자샐러드를 식빵에 넣어먹기도 하고,

구운 빵에 잼을 발라먹기도 하고,

달걀 입힌 빵에 유기농설탕이며 꿀이며 잼을 얹어들 먹었다. 

 

같이 밥상에 둘러앉아 우정이 다져지기도.

아이들의 배경을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엄마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랑 살며,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듣는다.

정인 지율 하랑과 채성 형님이 같이 앉아 웃는 소리 끊이지 않더니

같이 몸을 흔들더니만

나중에는 복도를 휘젓고 다니더라.

건우가 창작한 안무 알랄랄라가 인기 절정.

 

준형이가 인우에게 폭발했다.

준형이가 밥을 쩝쩝거리며 먹는다고 인우와 고도가 쩝쩝 소리를 따라한 모양.

열 번은 참았다고 준형이가 소리쳤다.

쩝쩝 소리만이 문제였을까. 지난 사흘의 관계가 축적된.

끼어들 수밖에 없는 지점이 된 것.

멀리서 인우를 불렀다.

그냥 장난에 불과했을 테다. 무슨 악의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내 장난에 상대가 저토록 화가 났다면 내 행동은 폭력이었다.

인우에게 준형이 문제를 해결하라 했더니

들려온 바에 따르면 인우가 사과를 한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준형이는 하루종일 평안해보였다.

그 말이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 한마디가 애타게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랑한다는 말처럼.

누군가 원한다면 그 말을 아껴 무엇하리.

사랑한다, 미안하다, 그 말들을 아낄 까닭이 없다.

한편 준형에게도 한 마디 보탰다.

그걸 장난이냐 아니냐 결정 짓는게 나이기도 하다는.

장난이냐 욕이냐 내가 듣는 거에 따라 결정.

장난으로 받을 수 있는 마음에 대해서도 말해주다.

태양이가 더러 그런 모범이 되었댔다.

아이들이 놀릴 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같이 놀이 속으로 빠져버리는.

준형에게도 태양이가 좋은 예가 되었다.

 

이런 짧은 순간에도 또 쏟아져서 노는 아이들.

건우가 채성 형님을 앞세우고 축구를 하자 원진이도 나가서 골키퍼로 참여.

원진이는 수돗가의 얼음을 가지고 재밌게 놀기도.

 

손풀기.

오늘 가운데 있는 상 위에는 장작개비 하나 놓인다.

해질 때부터 아침까지 뒤란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장작.

(다행히 날이 푹해 낮에는 불을 때지 않고 있다)

학교아저씨가 하는 노고의 알림이고, 우리가 따뜻해지는 것에 대한 앎이다.

먹고 자는 데 들이는 것이 귀한 줄 모르는 우리라.

특히 겨울에 난방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이더냐.

그걸 생각해보자는 의미가 담기기도.

이 멧골은 그런 사람살이의 기본에 대해 알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

한자리에서 모였을 때 고도가 계속 인우나 하늘이와 끊임없이 떠들지만

그게 또 그의 모습의 다가 아니다.

나무를 열심히 보고 다시 그림으로 오기를 수차례, 그 다음에야 선을 긋는다. 신중하다.

저마다 마지막 그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

사흘 만에도 일취월장한 그림들.

마음을 내보이고 마음을 푼 시간들.

 

열린교실.

현재 상태의 낡은 학교터에서 하는 마지막 계자.

그래서 이 학교를 기억하기로.

단추 많으니 그것으로 표현해보기로.

단추로 건설하는 집, 그런 건축교실이었던.

해서 교실 이름도, 세계적인 건축가 셋의 행적을 살짝 더듬고 방 이름도 그 이름을 따라

가우디(안토니오 가우디), 에펠(구스타프 에펠), 김수근 방.

학교터를 말할 기회가 되었고.

학교를 눈여겨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네.

 

가우디방: 수현 채원 우현 한결 하랑 정인 큰도 인우 하늘 고도 태양 율희

어수선함으로 시작하다. 단추가 던지며 놀기 또 얼마나 좋은가.

아이들이 복닥거린다. 아이들이 그렇다.

우리 어른들은 뭔가 말 잘 듣는 것에 익숙한데

아이들은 귀는 피부에도 있고 심지어 그들은 곁눈도 가졌다.

그건 또한 듣는 역할 뿐 아니라 보는 역할도 하는.

어느 사이 어수선한 속에 질서가 생기는.

아이들은 그렇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큰도는 시작하면서 현진샘과 같이 나가

물꼬 바깥모습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 저런 것도 있었네! 처음 봤어!”

자유학교 글자가 적혀진 작품을 그제야 보았노라고.

익숙한 공간도 때로 새로 발견되는 것들이 있잖던가.

사람도 그런 게 있을 것.

서로 잘 알아서 좋기도 하겠지만 그게 때로 서로를 모르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때로는 낯설게 바라 볼 필요가 있을.

본관 벽의 자유학교 글자는 20년 전 계자에 온 아이들이 나무로 만들어 붙였고,

고래방 쪽 바깥벽의 도기 글자는

세 살에 한국을 떠났다가 여섯 살에 돌아왔던 하다샘이 돌아온 그 해 붙였던 것.

공간을 새로 보면서 그것을 거쳐 간 사람들을 짚어보기도.

한결이는 학교의 맏형인 대문 앞 소나무를 완성하기 위해 오래 공을 들였다.

뱃심이 모자란 듯 모두가 둘러앉아 얘기 나눌 때 자꾸만 들썩이던 엉덩이이고 입이었는데

이 시간에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채원은 복도에 있는 소품 신호등을,

수현은 옷걸이를 만들다. 역시 단추로.

꼭 어떤 틀 안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걸 하고프면 또 그걸 하지.

김도는 오토바이를, 윤진이는 눈사람 곰돌이를 내놨네.

하준이는 다른 방으로 이동수업을 가서 단추를 붙여 물꼬 글자를 완성해서

전체 작품 맨 앞에 세웠더라.

지율이는, 마음을 다해 정리를 한다. 향후 학생장감이다! 저도 그런 날을 꿈꾸는.

현준이는 더 마음을 내보라고, 자리가 사람을 만들게 했던 학생장 자리였다면,

지율이는 더 낸 마음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학생장 자리에 가면 좋을.

마음을 내는 건 정말이지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한 발이 천리길이었을 그를 격려해온,

아이들을 잘 모아내는 힘이 날로 좋아졌던 현준이,

이제 중학생활을 앞두고 있네.

, 정인이가 글루건에 손을 데이다. 얼른 가서 찬물에 씻고 바셀린을 바르다.

그런 사고 두세 차례는 다들 만난 작업이었더라나.

 

김수근방: 세미 서윤 소윤 유빈 윤수 준선 동우 건우 예선 원진 하준

가마솥방과 책방과 고래방과 운동장을 표현하기로.

세미와 서윤은 종이상자를 잘라 가마솥방과 부엌의 단차를 표현하고

종이상자로 냉장고와 싱크대를 놓고, 단추로 식탁과 피아노도 놓았다.

감각 좋은 서윤은 잘 만들어놓고도 펼쳐보이기는 고사.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할 때만 나서는 그 마음을 다르게 쓰도록 안내해보기.

소윤과 유빈이 천을 찾더니만 책방을 꾸미려 했고나.

박스로 책방을 만들고, 책장을 구분한 뒤, 거기 하얀 단추로 책들을 꽂았다.

천은 책방 소파의 쿠션이 되었더라.

윤수와 준선은 고래방 바닥 한쪽 무너진 것까지 표현해내고,

스피커와 난로를 크게 만들었다. 난로가 더 크다면 더 따뜻할, 그 소망을 담았는지도.

동우 건우 예선 원진은 놀잇감이라 여길 듯한 미니축구경기장을 만들었다.

운동장을 보였는데, 골대와 주차장 쪽으로 차를 막느라 세워둔 통나무까지 표현하고

축구하는 사람들이 공을 몰고 가는 장면도, 공도 역시 단추로 표현.

하준이가 이동수업을 와 물꼬 두 글자를 완성하고 간 곳이 이 방이었네.

준선 예선 원진은 고무줄로 새총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다.

아이들이 흔히 그러더라. 선물보다 선물상자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어째도 단추랑 놀았다.

 

에펠방: 작도 현준 민혁 준형 수범 김도 지율 정인 소미 윤진

어디를 표현할까요?”

물꼬 대문, 가습이와 제습이 집, 소나무, 돌탑, 그네를 담기로.

대문을 맡은 현준 수범 정인 김도는 답사도 다녀오고.

처음에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단추를 붙이기로 했는데, 입체가 더 낫겠다고 선회하다.

가우디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우디 방을 가고 싶어 했던 민혁은

아침에 보았던 도토리가 생각나기라도 했던 걸까,

돌담을 그리고 그 위를 팽이처럼 단추를 붙여나갔다.

정인이 물꼬 대문 앞 장승을 멋지게 만들었고,

댓구처럼 지율이 또 다른 쪽을 만들었다.

소미는 가습이 집을 만들고,

준형이는 그네를 그리는 것까지만.

윤진이도 혼자 물꼬 전체를 만들고 싶다 큰소리치더니 물꼬 지도를 보며 그린 그림을 내놨네.

현준과 수범은 금세 흥미를 잃고 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현준이는 제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내는 마음을 계속 꺼내보는 훈련을 하는 계자.

이전 계자에서는 동생을 돌보는 형님의 마음을 연습했고, 해냈던 그라.

소미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상이라도 받아야 할 듯.

늘 끝까지 정리하는 그이다.

 

연극놀이

연극방은 세 개를 열고 있었다; ‘() 아는 방’, ‘() 사는 방’, ‘() 하는 방’.

나를 아는, 나로 사는, 내가 하는.

연극놀이를 기대하는 축도 있었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기도.

하는 쪽으로. ‘하는자유의 자유학교니까.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학교.

연극을 하는 이들이 애쓰니

하지 않는 이들은 그 시간 그만큼 다른 것을 하며 애를 써보자 제안.

부엌에 필요한 일을 좀 해 달랬네.

연극 공연 관람료로 마늘을 내기로도.

하여 하는 방에서는

하다샘을 앞세우고 고도 큰도 서윤 하늘 인우 현준 우현 건우 한결이 가마솥방에 오다.

생각보다 재밌는데요?”

마늘을 까며 인우가 던진 말.

일이란 게 하다보면 재미가 든다.

그러니 일다 보시라.

처음엔 싫다더니

친한 이들끼리 몰려와서 그런가 자잘한 장난 속에 화기로웠다.

이전에는 토라진 그를 달래고 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번 계자에 온 서윤이는 토라지면 활동을 하지 않던 지난계자들과 달리

이제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나 역할도 받아들이더라. 아이들이 무시로 큰다!

이 방에서만 해도 서윤이는

왜 이렇게 까?”하며 품질판별사로 제 자리를 잡고 제일 환하게 웃으며 보낸 시간.

우현이가 마늘 꼭지 칼로 따주면 나머지들이 까다.

명상이 따로 있지 않았다. 재미 역시 다른 게 아니었다.

 

아는 방: 태양 동우 윤수 준선 예선 원지 소미 소윤 채원 수현 세미 유빈

막장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아이들.

어른들의 문화를 그대로 아이들이 따르기 마련이라.

자극적인 드라마들을 아이들도 안단 말이지.

전래동화를 업고 막장 요소를 넣어보라 진행샘들이 안내하다.

모둠 대장으로 가위바위보를 해 태양이 정해졌고, 꽤 격양되긴 했지만 전체를 이끌다.

리허설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던데 무대에 극을 무사히 올렸다.

이곳에서의 연극이야말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과정 안에서도 열심히 노는 모습들이 참 재밌고 좋아보였다.

이렇게 열심히 놀기 위해 아이들은 또 물꼬에 오겠구나 생각했다.’(휘령샘)

이게 될까 했는데 연극이 가능한 수준이라서 좀 놀랐다.’(채성 형님)

예선이 해설을 맡고,

윤수가 팥죽할미를, 동우 준선 원진이 각각 알밤과 토끼와 삽이 되고,

소미 소윤 채원이 멍석과 송곳과 지게가,

수현 세미 유빈이 호랑이와 자라와 똥이 되었더라.

 

사는 방: 지율 정인 율희 하랑 윤진 작도 현준 김도 민혁 수범 하늘

일정이 많이 늦춰져서 연극놀이를 할 수 있을까 했는데 하게 돼서 놀라웠고,

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화목샘)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맡기니 내 마음도 편하고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애들의 많은 문제가 그렇다.

저들 문제를 왜 어른들이 나서서 그리 걱정하나.

저들한테 주고 나면 어른도 편하고 아이도 즐거울.

현준이를 중심으로 각자의 아이디어가 하나씩 포개졌다.

쌓여가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없는 시간을 이런 배역나눔에 쏟지 않기 위해

간단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하고 그리했더니 모두가 수긍.

내용은, 연극놀이를 하자 쉬자로 나뉘어졌던 직전의 우리들 상황을 사극버전으로 만들기로.

작도 왕을 중심으로 양편에 늘어선

연극파(현준 정인 김도)와 마늘파(수범 지율 율희),

호위무사 민혁, 암살자 하랑, 마녀 윤지, 그리고 당황한 구경꾼 하늘.

 

연극놀이 펼쳐보이기.

깐마늘을 관람료로 내고 보는 연극이라.

채성 형님, 태양이한테서 자신이 보이더라고,

극단을 이끄는 태양이의 모습이 마치 팀이 마음에 안 드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재밌었다고.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 어른들의 거울.

애들이 웃는 지점에서 나도 웃고 있었다.

하다샘 왈, (자기들은 썰렁한데 옥샘은 웃더라며)

그래서 옥샘이 이 일을 계속 저리 재밌게 하는구나 싶더라고.

계자는 아이들을 보지만, 또한 우리 자신을 보게 하는 장이라.

, 내가 이 일을 참 좋아하는구나,

나는 아이들의 농담이 재밌는 사람이구나...

 

시간과 시간 사이에도 많은 역사가 있는 게자라.

수현이가 또 울었네.

채원이와 연극놀이 하는 걸 현준 큰도 율희 하랑 서윤, 또 하나가 누구 였나, 방해하고 나선.

그야말로 장난.

그러나 진지했던 그들에겐 방해돼 속상했던.

어찌들 풀었을까? 어느새 또 어울려 다른 놀이로 넘어 갔더라..

세미가 아팠고, 서윤이가 자주 챙겼다. 외사촌 동생이기도 하고.

형제애가 더욱 깊어지는 계자라.

누가 묻는 소리가 났다.

수범이!”

수범이가 누구야?”

몰라? , 유명하잖아!”(장난꾸러기로?)

, 수범이가 유명한 아이였더랬네.

민혁이는 봇물 터지듯 말을 쏟는다.

담아 놓은 이야기가 많을. 흘러라 흘러라 흘러 넘쳐라 하고 이야기를 받는다.

뭔가를 만들면 들고 와 물었다. 여기 놔두면 나중에 와서 볼 수 있냐고.

이전 계자에서 남았던 아이들의 작품 이야기를 들으며 했던 생각일 테지.

애들 놀고 있는 걸 맥없이 바라보고 있는 여원 형님에게 다가간 지율,

샘들 힘드시죠?”

하하, 저들 눈에도 애들이 퍽 자유롭거나, 샘들이 꽤 지쳐보였거나.

 

저녁 때건지기.

밥상머리공연을 서윤이 책임지다.

피아노 공연; I love you so

권한 게 아니라 신청이었다.

아무리 권해도 안 하겠다는 아이가 이제 한다.

둘러앉았을 때 한 마디도 못하던 윤진이가 말을 시작했고,

원진이가 목소리를 밖으로 내민다.

예선이가 허리를 세우고,

동우가 말을 참고,

인우 고도 하늘 하랑 율희도 귀를 세우는 법을 익혀간다.

계자에서 저마다 받은 숙제를 해나가는 아이들.

 

저녁상을 물리고 아이들이 논다.

여자방에서 소윤 채린이가 거리 춤공연을 보여 박수를 받고,

소미 율희 윤진이 하다샘을 껌딱지처럼 붙어서 같이 ABC놀이도 하고,

복도까지 진출해 주저앉아 소윤 채원 하랑 들과 손바닥 때리기를 하는 하다샘.

 

한데모임.

어제 샘들하루재기에서 휘령샘이 새로운 노래를 불러보면 좋겠다 했지만

오늘 보니 그런 생각 들더란다.

처음 온 아이들에겐 이 노래들이 좋을 수도 있겠구나.

처음처럼 신나게 부르는 게 중요하겠구나 싶더라고.

물꼬의 생각이 담긴 노래들이 줄줄이 나온다.

자유학교 노래와 이번 계자 주제곡이 먼저 불리고 나면

함께 목소리를 모아 부르는 군밤타령’ ‘신아외기 소리’ ‘은자동아 금자동아가 뒤를 잇고

이어 저들이 부르겠다 외치는 노래들.

도깨비 빤스’ ‘너의 의미’ ‘서울에서 평양까지’ ‘인터내셔널가’ ‘임을 위한 행진곡’ ‘여행을 떠나요’ ...

장르 성별선호도 계층을 넘나드는.

마지막 묵묵히 물꼬 노래집 <메아리>를 모으는 소미.

눈에 보이지 않게.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 참 곱다. 흔히 생색내기 잘하는 우리들 아니더냐.

의논하고 알리고 안내받고, 마음이 담은 이야기를 꺼내며 한데모임이 간다.

 

대동놀이.

오늘은 샘들의 요청으로 내가 투입된, 앉아서 하는 대동놀이.

<장화 홍련> <흥부 놀부> <토끼와 거북이>가운데 고르라 하니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고른 아이들.

마주 앉은 이와 악수한 채 손등치기를 하는.

간단하다. 이야기 속에 토끼 나오면 토끼 쪽이 치고, 거북이 나오면 거북이 쪽이 치는.

토끼마을에서 토끼를 응원했습니다. 다른 쪽도 응원을 했습니다.”

아니 왜 거북이 안 불러주냐고 애타게 요청하지만

양편을 거의 비슷하게 불러주는 게 관건.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가 절대 커지는 법이 없으니

그 얘기를 들으려면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때리는 제 손이 더 벌개졌다고들.

언제해도 즐거운 놀이였을세.

 

하루재기.

소미와 소윤이가 늘 정리하는 자리에 있다.

보이려는 게 아니다. 그게 필요하니 거기 있다.집안내력인가 보다. 그들의 부모가 궁금해질 만하다.

지율, 새끼일꾼 하면 퍽 어려울 것 같다고 하지만 꼭 하고 싶은 그다.

근데 아이들 잡는(?)건 너무 힘들 것 같다나.

새끼일꾼이 되면 알려줘야지, 잡으려 하면 안 잡힌다고.

안 잡히는 걸 뭐 하러 잡으려 하냐고. 더구나 잡을 대상도 아니고.

생각을 다르게 먹자 하겠다.

큰도가 한 새끼일꾼 한다. 열린교실에서도 빗자루를 먼저 들더니 하루재기에서도.

그저 마음을 내고 하는 그다.

그런 사람들이 영향력 있는 자리에 가야 한다.

그래서 저런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물꼬이다.

 

잠자리로 간 아이들,

여자방에서 서윤이와 주변 아이들 아직도 하루 흥을 보내지 못하고 떠들자

정인이가 말했다, 내일 힘드니까 조용히 하자고.

남자방은 채성샘이 책 읽어주니 잠이 잘 오더라나.

자기 목소리가 좋아서?

<국부론>의 지루함도 한 몫 했으리.

 

샘들하루재기

화목샘이 말했다. “수범이도, 인우도, 고도도, 동우도, 준형이도, 서윤이도, 현준이도  ...  나아지겠지요?”

어릴 때 윤호 건호가 참 미운 짓 많이 했는데, 훌륭하게 컸다고 하던데,

수범이며들도 그렇게 크지 않겠냐고.

, 윤호 건호가 샘들 입에 많이도 올랐더랬구나.

그럼, 그럼, 아이들이 거쳐 가는 시간이 있다. 미운 짓하고 못됐고 얄미운 그런 시간.

그러므로 그 이름들은 특정 이름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 아이들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아이들이 의젓할 시간이 기대된다

사람 참 안 변하지만 변한다. 거기 교육이 있다.

물꼬 일 35년차, 계자만도 1994년부터,

고교 때 입주과외까지 따지면 아이들을 만난 게 거의 40,

내 믿음의 근거로 충분한 시간이다.

현준이는 자기 좋아하는 것만 하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만 한다.

그러면 (그 아이가 싫어하지만 해야 하는 것을) 안 시키기 쉽다.

그의 엄마 농담처럼 더러워서 안 시킨다.”고 했듯

그러면 안 된다. 시켜야 한다.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다. 경험이 쌓여야 잘 하는 거다.

안 한다면, 자꾸 외면하면, 그는 결국 안 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래서 교육은 시도라는 낱말의 다른 이름일.

그렇게 마음을 한 번 내는 그 어마어마한 한 걸음을 현준이가 해왔다.

'한' 그것을 보기로. 놀라운 일 아닌지. 사람 안 변하는, 그걸 해준 거 아닌지.

 

물꼬의 역사,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고, 있던 이들이 띄엄띄엄 오기도 하지만

물꼬가 하나의 큰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 역사에 이 계자도 있다.

여원 형님이 말을 할 때 여러 사람이 말을 덧붙이며 여러 차레 말이 끊기자

꼭 희중샘 얘기할 때 같다고 했다.

그때의 계자가 지금의 계자로 불려나오는.

아이들 이름자도 그렇다.

그때의 아이들이 이 계자로 불려나온다.

같은 사람이 이어가지 않아도 공간에는 역사가 쌓인다.

198912월부터 시작된 물꼬이고,

1994년 여름부터 열어젖힌 계자이다.

 

화목샘이 물꼬에 올 때마다 하다샘이 그에게 묻는단다.

샘은 왜 물꼬에 계속 오냐고.

전에 한 대답은 생각나지 않는데,

지금은, 뭔가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환영받고 반김 받고 그래서 오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게 아니라 대단한 그이다.

그만이 아니라 샘들 하나하나가 그렇다. 우리 대단한 사람들이다.

선한 일에 뭐라도 보태고자 함이 그렇고,

이 휘황찬란한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뭔가 가치 있는 사람노릇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물꼬의 이 말도 안 되게 낡고 거친 현장으로 오는 자체가 그렇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심지어 돈 보태가며),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돈만이 사람을 움직이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저항도 있는 셈이다.

이들이 나를 살려주고,

물꼬의 사랑을, 뜻을 살린다.

내 생이 사람 하나 살려낸다면 그만한 생이 또 어딨겠는지.


우리는 꿈꾸는 사람들이다. 꽃들에 다름 아니라.

한 생명으로 태어나 어떻게든 생을 꽃피우고 있다.

그 지금을 산다, 우리,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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