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7.흙날. 펑펑 내리는 눈

조회 수 264 추천 수 0 2023.01.06 01:54:56


해 있을 시간 내내 눈 펑펑 나리는 멧골.

아직 녹지 않은 눈 위로 두터운 층을 이루었다.

한낮 기온도 영하 4, 오는 새벽은 영하 15도를 예보하고 있다.

 

수행하고,

제습이 밥 먹이고 산책하고,

마을을 나섰다.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함박눈으로 변한 눈이 어느새 발목만큼 쌓이고 있었다.

동행한 이가 자작시를 읽어주었다.

눈은 퍼붓고, 아직 길은 미끄럽지 않았고,

차 안에서 시를 들으며 시골길을 달린다.

좋다. 운치 있는, 그래서 또 사는 일이 좋았던 순간.

눈을 헤치며 돌아오는 길에 면사무소에서 모래주머니도 실어왔다.

염화칼슘을 준다 하나 받지 않았다.

그것이 부르는 토양오염과 망가지는 도로를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읍내 건재상에서 연탄보일러 화덕을 사왔다.

사택 된장집 보일러가 삭았더랬다.

낡은 학교를 건사하고 살아온 시간은 늘 보수 중혹은 공사 중이었다.

학교터가 계약서상 1231일이 종료인데

계약 완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삭아 내린 보일러가 야속했지만

그렇다고 이 엄동설한을 그냥 견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온수매트가 있어 제 노릇 톡톡히 했다.

보일러 화덕을 바꾸고 연탄을 지폈으나 물이 돌지 않았다.

여러 날 얼어있던 보일러는 터진 것 같지는 않은데.

오후 내내 뜨거운 물을 끓여 부으며 밸브 쪽을 녹였다.

밤에도 방은 따뜻하지 않았다.

부디 다른 문제가 아니기를.

그저 얼어서 다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풀리고 있는 것이기를.

 

중앙현관으로 쓰는 통로의 문이 자꾸 말썽을 부렸다.

낑낑대며 여닫기 두어 달,

잠깐을 살아도 좀 수월하자고,

무엇보다 겨울 계자에서 아이들이 드나들기 수월하자고

알류미늄 새시 미닫이문의 하부레일을 오늘은 그예 바꾸었다.

작업을 하느라 떼 놓은 문짝. 자꾸 눈은 안으로 들이치고...

 

책방 앞 복도 신발장에 있던 여름 운동화들을 이제야 빨았다.

기표샘이 올 때면 신는 커다란 운동화를 빨고 있는데,

기표샘 전화가 들어왔다.

받지 못하고 나중에 문자만 주고받았다.

겨울 한가운데의 산골 노모 안부를 묻는 그런.

 

긴 하루였다.

멧골 사는 일이 참...

하지만 삶이 생동감 있어 좋았다, 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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