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건지기를 끝내고 아침뜨락으로 들어 제습이랑 걷다.

산짐승들의 움직임이 다 보인다.

눈밭에서는 발자국을 숨기기 어렵다.

멧돼지도 있고, 고라니도 있고, 너구리도, 내려앉은 새 흔적도 있다.

그것들이 농작물을 거덜내거나 아침뜨락을 헤집어놓으면 괘씸하다가도

비가 굵거나 눈 무거우면 걱정인데,

고마워라. 다들 잘 살아있구나. 찡했다.

 

곶감이며 호두를 돈 사느라 부산한 이즈음의 멧골.

오늘은 이장댁 일손을 거들기로.

물꼬 일도 없지 않지.

학교에는 가마솥방 청소, 통로 창틀 먼지를 털고.

대나무 두 그루 베러 가야는데...”

곶감을 정리하며 그리 중얼거리자 명숙샘이 그런다.

가만있어 봐!”

그 댁은 앉아서 할 곶감 포장 일이 넘쳤고,

물꼬는 마을 대나무밭에 가서 커튼봉으로 쓸 대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야 하는.

안주인이 마을에 나가 있는 바깥어른한테 전화를 걸었다.

무엇에 쓸 거냐, 얼마만한 굵기냐, 몇 개면 되겠냐 물어오셨네.

제가 곶감 열심히 싸겠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일을 바꾸다.

해주십사 하길 잘했지.

지름길로 가서 두 그루를 금세 잘라 오셔서는 잔가지 다 치고 마디를 사포질하고

휜 부분을 토치로 지져 펴주시기까지.

어찌나 정성스레 하시는지 감동이었다!

제가 곶감 더 열심히 싸겠습니다!”

논두렁 심지윤샘과 어제오늘 문자가 오가고 있었다.

그 댁 예린이와 호수는 이번 계자를 건너뛴다.

예린이는 코로나검사가 싫고, 호수는 엄마아빠랑 지내고 싶은 겨울이라 했다던가.

가래떡을 뽑을 거라 떡국떡을 좀 보내신다는데, 4킬로면 한 끼를 먹냐셨다.

양 가늠이 안 된다고.

사양 안하겠습니다. 그 양이면 딱입니다!

내 새끼 가지 않는 계자에도 그리 써주시는 마음이 감동, 그리고 힘입니다!’

 

수 년 지나 물꼬의 바깥샘 대상샘과 통화.

대구 교사풍물모임 울림을 이끄셨고, 설장구를 전수해주셨으며,

물꼬 상설학교 시절 해마다 삼월삼짇날 학교 문 연 날 잔치에서

달성 다사농악 관호샘과 부산추임새국악예술원 도근샘과 풍악을 울려주셨다.

옥선생이 2018년 바르셀로나 갔나 보다, 1년이나 있나 보다 하시고

이제 왔겠네 하며 어느 새 또 여러 해가 지났다고.

우호적이고 전적인 지지를 해주시는 선배들은 힘이다.

그것이 변치 않음은 더욱 감동이다.

 

올 김장김치가 당장 먹기는 맛이 좀 떨어진다 하자(대신에 익으면 더욱 시원할 것이지만)

마을 어르신 한 분이 김치 한 통을 들여 주시다.

애들 오면 쓰일 일 많겠다고, 당신 댁에는 못다 쓴다고 욕실 용품들도 한 상자 주시고,

갓 짜온 참기름 한 병도 맛보라 챙기셨다.

멧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이 찡하다.

 

밤에 돌아와 레이스 커튼을 달다.

코바늘 손뜨개 한 것.

대나무가 그리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지 않았다면

거의 2미터에 이르는 길이에 뜨개줄 고리를 100개도 넘게 끼우는 데 애를 먹었을 것.

뭔가를 엮고 마무리를 짓는 일은 언제나 감동이다.

걸어놓으니 좋다, 참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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