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1.흙날. 맑음

조회 수 275 추천 수 0 2023.02.20 23:34:26


영하 12도의 아침.

 

기침이 쉬지 않고 나와 온몸을 흔들고 쥐어짰다.

누워서는 더 심하니 잠을 통 잘 수도 없는.

결국 황간까지 나가 약을 지어왔다.

설 연휴가 시작된 주말이나 다행히 문을 연 곳이 있었다.

 

학교아저씨는 이번 설을 물꼬에서 쇠기로.

대처에서 들어온 식구들이랑 모여앉아 마늘을 깠다.

수확한 마지막 마늘이 될 것이다.

하다샘은 교무실에서 계자 사진을 정리하여 올렸다.

어제 달골에서 했으나 제대로 일이 되지 않았던.

 

며칠 전 세상을 떠난 한 여배우의 소식을 듣다.

이창동의 <>(2010)는 그렇게 배우 윤정희의 유작이 되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66세 미자는 문화센터의 시 창작교실을 다닌다.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해보라 했다.

미자야, 이리 와!”

미자는 어렸을 적 언니가 다정하게 불렀던 때를 꼽는다.

언니가 정말 나를 예뻐하는구나, 어린 미자의 마음에도 그리 느꼈던 그때.

영화는 우리에게도 그대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가 언제냐 물어주었다.

어쩌면 시는 그 순간일 거라는.

엄마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한때는 대개 아이를 키우는 어느 때가 아닐지.

나는 그랬다. 그래서 앞으로 낼 책에서 저자 소개에 꼭 엄마를 넣고 싶은.

미자는 한 소녀가 외손자 종욱을 포함 몇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하고

이를 견딜 수 없어 강에 뛰어든 진실 앞에 선다.

자기 몫의 합의금을 위해 미자 역시 부자 노인네에게 몸을 던진다.

영화의 말미쯤, 시 창작교실에서 시를 써내라는 숙제를 한 사람은 미자 밖에 없었다.

? 제출한 사람이 미자 밖에 없었지만,

시를 쓴 사람이 미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시를 찾을 수 없었던 미자가 비로소 온 삶으로 온몸으로 시를 썼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보는 사람이고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사람이라던 전형적인 강사의 말은

그것을 통해서만 시에 이를 수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할까.

불편하고 불쾌한 것일지라도 정직하게 대면하고 아프도록 응시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진실 혹은 진심과 더불어 시가 된다고,

이 시대 낡은 시이고 이 시대 바랜 시이지만 그렇게 시를 말하는 감독이었다.

결국 우리, 사람이 뭐하냐고 묻는.

쓰기에 대해, 나아가 삶에 대해 생각게 하는 영화였던.

사람이 사는 일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일,

거기서 무언가를 남기는 일이란 생각을 새삼 한다.

사는 일은 그렇게 과거를 쌓는 일이구나 싶은.

안녕, 한 시대의 고운 배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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