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8-20.쇠-해날 / 동창회?

조회 수 1533 추천 수 0 2008.02.20 19:14:00

2008. 1.18-20.쇠-해날 / 동창회?


1.

대전의 ‘심지’와 ‘애지’ 출판사에서
꾸러미 하나가 왔습니다.
편집장님의 시집에서부터 40여권의 문학서들입니다.
이 겨울 예서 한 ‘평화의마을’ 단식으로 맺은 인연이지요.
고맙습니다.
더욱 풍요로운 이 겨울이겠습니다.


2.

다시 이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아쉽고 또 아쉬운 시간이 있지요.
하루 하루가 순간 순간이 그렇겠으나
나날이 또 다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현역이든 재수든 대입 시험을 끝내놓고
긴 터널을 통과한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곳에서 계절학교를 보냈고,
중고생이었을 땐 새끼일꾼이었으며,
드디어 이제 품앗이일꾼이 된 그들입니다.
물꼬 교육의 전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에서
(아직 상설학교 졸업생 배출이 없고 보면)
물꼬 1기 동기회쯤 되겠지요.
아, 첫 계자를 같이 갔고
고교 때까지 해마다 한 차례씩 2월에 모이기도 했던
현아 승아 헌수 현철 종창 보배 희정 세온 창헌 형주 송희
민수 승윤 문달 영수 대웅네들이 있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2기쯤 되겠네요.

이번 계자에 몇이 도움꾼으로 왔고,
해후를 위해 계자 뒤 달려온 또 다른 몇이 있었지요.
무열 기표 소희 영화 수민이 앞이었고,
수진 재신 운지는 뒤의 몇에 속합니다.
영국을 한 해 다녀온 소희는
좋은 차를 선물로 들고 왔더랬지요.
그 차 맛처럼이나 예쁜 어른이 되어가는 그이고,
그건 다른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여
멀리 거제도에서 계원 모(母)가 계원이 동생과 같이 왔는데
계자 끝내놓고 이렇게 많은 손님을 칠 형편이 아니어
결국 다음 기회로 잡자하였답니다.
싱싱한 굴을 이따따만하게 꾸려오셨는데
달랑 그 상자만 싣고 들어왔지요.
두고 두고 죄송합니다.
잘 쉬어갈 수 있을 때 꼭 머물러주시기 바랍니다.

참 많은 부류의 아이들이 이곳을 다녀가는데,
주눅 들거나 막혀있거나 좀 모자란다 싶은 이들이 있는 반면
자기가 퍽 잘 컸다고 은근히 자랑하거나
잘난 저 자신을 잘난 줄 아는 놈,
또 어깨 힘 꽉 들어가 있는 놈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거늘
천지를 모르고 깨춤을 춘다는 어르신들의 우려처럼.
후자의 경우들엔
세상 나가 깨지는 자신을 잘 추려가는 모습에 기대를 갖게도 되지요.
집안일이며 잘 움직이고 컸다고 실컷 자랑해놓고도
사실 채소 하나 다듬는 일도 서툰 애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일상의 일을 척척 야물게 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하는 아이도 있지요.
그만큼 다양한 아이들이 바다에 모이는 물처럼
그리 찾아들고 가고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동창회하는 이 녀석들요?
집안 좋죠, 인물 좋죠, 성격 좋죠, 게다 공부까지 잘합니다.
뭘 나무랄 데가 있어야지요.
세상 참 불공평합니다요.
먹지 않아 부른 배처럼
보고 있으면 자꾸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돌게 되지요.
남이 이렇거늘 저들 부모님들은 오죽하실까요.
그런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이 사회에서 무난하게 제도로 진입해가는 그들인지라
바닥(?)에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떨어지지 않을까,
혹여 서툰 아이들이나 저들 같지 않은 아이들을 보는 시선은
너그럽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염려가 슬쩍 스밀 때는 있습니다.
나이 드니 느는 건 걱정이라지요.

그런데 이 녀석들도 흠이 없는 게 아니랍니다요, 하하.
여전히 ‘아이들’과 같은 면도 있지요.
상상아지트 안에 이들이 흙날에 눈썰매를 타러 다녀와
아무렇게도 던져둔, 짚이 담긴 비료포대를 보았지요.
정리해서 두면 좋으련,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는데...
‘이눔의 자슥들...’
“뭐 저들이 밥을 해 먹어?”
“어이구 내가 믿을 걸 믿지,
이불빨래를 돌린다고?”
눈썰매를 타러 나가던 녀석들 뒤에다 쏘아붙였던 것처럼
‘아이들의 시대’를 접었다고, ‘품앗이일꾼’이라고
당장 바라보는 게 이렇게 냉정해집니다,
저 즐거움들 때문에 보이는 게 없으려니 하고
같이 웃을 수도 있으련만.
‘아, 이 녀석들의 한 시절이 이리 가는구나...’
이제야 비로소 세상으로 나가는 아이들인 양
멀리 대처로 나가는 권속을 아득한 길 앞에 서서 보는 에미처럼
그 아이들 떠나던 걸음이 다시 생각킵니다.

흙날 저녁에는 서울에서 기락샘이 왔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처음 잡은 일자리에서 얻은 수입으로
식구들과 동창회를 위해
안심꾸러미와 삼겹살을 몇 날 며칠은 먹겠는 만큼 실어왔지요.
이 안에 내내 있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지닌 기락샘에게
물꼬를 오랜 세월 지켜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결코 작을 리가 없다마다요.
특히 홀로 이 나라를 떠나있는 재신이에겐
(아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르쳤고
집안 어른들과 각별했던 연도 있어 더욱 그렇기도 하겠지요),
그 역시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있었던 경험 때문에
늘 마음을 많이 쓰게 되나 봅디다.
아이들과 술 한 잔 기울였지요.
계자후유증으로 너무 가라앉아있는 이도 있어
분위기가 좀 묵직해져 버리기도 했습니다만,
뭐, 꼭 유쾌한 것만 그 순간이 좋았다고 정리되던가요, 어디.
산골의 고요한 밤, 짙은 어둠만으로도,
게다 서로에게 선물 같은 이들이 앉았는 것만으로도
그다지 안타까울 것도 없었지요.

신현희님도 뵈었습니다.
동창회에 온 운지의 엄마로 오랫동안 물꼬의 논두렁이었고
최근 몇 해는 아이랑 뉴질랜드에서 보내셨더랬지요
(그러니까 그 유명한 기러기아빠 가정?).
오실 땐 귤 상자를,
운지를 태우러 다녀가며는 가래떡을 실어오셨습니다.
한사코 저녁을 사양하는 아빠 땜에 자리에서 일어나셨지만
잠깐이라도 끓고 있는 냄비 앞에 서서
다사롭게 살아가는 얘기 오고 가서 좋았지요.
여전하시데요, 그게 고맙습디다.
아이들은 성큼성큼 어른들 세계로 들어오는데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라더니,
그래서 같이 늙는대더니...

동창회(일반적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없잖습니다.
옛날 얘기, 좋지요,
심지어 고통까지도 추억으로 오기도 하니까.
그런데 과거의 ‘좋았다’로 그만 ‘지금’이 결여될 때,
치열한 현재가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동창회에 가고픈 마음이 사라집니다.
이번 이들의 동창회는 어땠을까요?
뒷배 노릇만 하여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현장’에서 뜨겁게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기를 바랍니다.
충분히 그랬을 아이들이지요.
그래서 과거가 오늘의 삶에도 의미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런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이곳에 와선
도회의 방식, 평소 사는 흐름대로가 아니라
이곳의 질서, 흐름을 타고 지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지요.
다음엔 그런 기회로 이곳에서 또 뜨겁게 만나길...

눈이 내렸습니다.
한바탕 호되게 내릴 거랍니다.
아이들을 서둘러 내몰았습니다,
길 얼기 전에들 나가라고.
아이들이(그러고보니 여전히 아이들, 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갔고,
비로소 계자가 끝난 느낌이었지요.

모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이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236 111계자 사흘째, 2006.8.2.물날. 땀 줄줄, 기쁨도 그처럼 흐른다 옥영경 2006-08-04 1534
6235 4월 21일 문 열던 날 풍경 - 셋 옥영경 2004-04-28 1534
6234 111계자 닫는 날, 2006.8.5.흙날. 기가 꺾이지 않는 더위 옥영경 2006-08-08 1532
6233 2005.10.26.물날.흐림 / 새 식구 옥영경 2005-10-27 1532
6232 5월 31일주, 들에서 옥영경 2004-06-04 1531
6231 6월 29일, 낱말 정의 옥영경 2004-07-11 1528
6230 4월 21일 문열던 날 풍경 - 하나 옥영경 2004-04-28 1528
6229 124 계자 여는 날, 2008. 1.13.해날. 맑음 옥영경 2008-02-18 1527
6228 2005.12.17-8. 밥알모임 / 무상교육에 대한 다른 이해 옥영경 2005-12-19 1527
6227 6월 19일, 깊이 살펴보기 옥영경 2004-07-03 1527
6226 꽃상여 나가던 날, 4월 13일 불날 옥영경 2004-04-27 1527
6225 2007.12.11.불날. 맑음 옥영경 2007-12-29 1526
6224 7월 8일, 그게 뭐가 중요해 옥영경 2004-07-15 1526
6223 125 계자 나흗날, 2008. 7.30.물날. 맑음 옥영경 2008-08-06 1524
6222 2009. 1.25.해날. 내리고 또 내리는 눈 / 설 옥영경 2009-02-05 1523
6221 12월 7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10 1523
6220 11월 2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4-11-13 1523
6219 8월 18-21일, 김영진 전정숙님 머물다 옥영경 2004-08-25 1523
6218 물꼬 홈페이지를 위해 오셨던 분들 옥영경 2004-02-02 1523
6217 2007. 4.10.불날. 맑음 옥영경 2007-04-16 152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