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2.나무날. 눈

조회 수 248 추천 수 0 2023.01.06 01:58:57


밤새 눈 내린다.

간밤에도 밤 가득 눈이 쌓였다.

저녁에 새나오는 불빛 아니었으면 온 마을이 텅 빈 줄.

사람의 마을인데, 눈은 펄펄 날리는데, 마치 그림 속 정지된 장면 같은.

눈을 쓸면서 마을을 내려가고

눈을 쓸며 달골을 올랐다.

아침부터 청계 구성원들에게 메일.

몇 안 되는 이들이다.

지금 물꼬의 청소년들이 초등 시절 워낙 규모가 작았던 계자였으니...

이 아래 세대만 해도 아이들이 제법 수가 되는데 말이다.

하기야 여원이랑 건호만 했던 겨울 청계도 있었다.

최소 어떤 규모가 되어야 진행한다는 자본주의적 한계와 다르게

한 명이 오더라도 취소하지 않을 수 있는 물꼬의 일정이 다행하다.

재미난 것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런 재미 말고도 다른 재미가 있고,

그것을 찾아오는 청소년들에 고맙고 신난.

재작년이던가 류옥하다샘이 성탄에 운동장에다 만들어놓은 이글루의 잔해를

아이들이 계자 내내 얼마나 잘 썼는지 모른다.

마침 눈 많으니 초등 계자 준비 겸 우리들의 놀이 겸 눈밭에서 한껏 뒹굴자고도 하고,

차편도 자세하게 안내. 열차와 대해리 들어오는 버스의 연계가 쉽 잖은 이번 상황이라.

난로 위 고구마를 얹어놓겠습니다.

가래떡도 준비해야겠군요.

아이들처럼 달고나까지 할까요?’

 

밖은 눈 펑펑 내리고

난로 위 주전자는 펄펄 끓고,

주말에 있을 청계를 준비하며 부엌 먼지를 닦아낼 적

멀리서 벗이 눈길을 뚫고 왔다.

쉼터 오는데도 미끌 하고, 요 앞 삼거리도 어렵더라고!”

이런 날 온다 한 이도, 온다고 또 오라고 한 이도 참...그런데 이런 날이라야 겨우 놀아보는 이곳이라.

주방기구 두엇이며 장을 잔뜩 봐왔다.

다른 비닐봉지엔 경옥고와 홍화씨와 팥도 들어있었다.

콩나물을 무쳐 같이 내는 보은식 잔치국수와

배추전을 부쳐 막걸리를 걸쳤다.

 

동지라.

팥을 푹 삶고(물론 첫물 버리고), 갈고,

불려놓은 현미도 갈고,

찹쌀가루는 익반죽하여 새알을 빚고,

소금을 좀 넣고 끓이다.

한 그릇 떠서 교문 밖으로 나가 벽에다 자를 새겨

삿된 기운들 쫓는 옛 풍습을 따라 해보는.

눈으로 발이 묶인 이가 묵어가게 되다.

같이 달골 올라 눈을 흠뻑 맞으며 달골 주차장에 닿았다.

쌓이면 힘겨울 테지.

눈이 내리는 속에 밤 아홉 시에 시간 반 눈을 쓸었다.

차가 올라오면 돌리기 좋게 주차장께 널찍이,

그리고 마지막 굽이길 50미터,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 사이집까지 100미터.

땀에 젖다,

햇발동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면서

최근 이태원 참사에 대해 서로 마음에 남은 바,

그리고 먼저 산 혹은 책임져야 할 어른으로서 우리 어떻게 행동할까를 나누다.

멧골의 밤, 눈은 나리고

땀이 식어 한기가 드는 몸에 차를 마셨다.

거실도 데워지고 있었다.

서로 닿아있는 생각이 사람 사이 거리를 더 좁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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