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온다.

성탄절께라. 친구들모임도 가족모임도 있을.

그걸 뚫고 오는 아이들이다

재미난 것 많은 세상이지만(게다 성탄!) 그런 재미 말고도 다른 재미가 있고,

그것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고맙고 신난다.

자신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시간을 내기 마련이라.

영하 14도의 아침이라더니 웬걸, 볕은 또 어찌나 두텁던지.

정성스럽게 수행(해건지기)하고

아침뜨락의 걸음 길을 따라 오솔길처럼 눈을 치우다.

아이들이 내일 아침 걸을 길이라.

 

착착 손발이 잘 맞았을 때 주는 기분 좋음이 함께한다.

구성원들이 미리 연락하여 오는 방법을 결정하고,

그것에 따라 자신들이 어제 택기 기사와 미리 연락하여 확인을 해두고,

오늘 영동역에서 택시로 출발하며 문자가 들어오고,

들어오는 길에 면소재지에서 물꼬가 전화로 봐준 장바구니를 찾아오고.

 

12:20 짧은 안내모임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어른의 한 사람으로 사과로 시작하다.

우리들이 지나는 순간들 어디 안 간다!”

우리가 애쓰고 있는 순간들이 어디 가지 않고 내게 축적되므로

그 어떤 것도 당장 결과물로 오지 않더라도 조급해 말기로.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할지라.

자기 삶을 살자!”

누구의 삶도 아닌 내 삶을 살기로.

우리 앞에 놓인 이틀도 그러기로.

그 이틀을 확장하여 한 학기를, 한 해를, 우리 생을 그리 살기로!

 

그리고 때건지기.

찬물에 헹군 국수를 다시 뜨거운 다싯물에 한 덩어리씩 풀어 건져냈다.

사람이 적으니 또 이리 하는 행운이!”

그 위에 보은 식이라는 콩나물무침을 올려 먹었다.

땅에 묻어둔 김장독에서 갓 꺼낸 김장 김치가 시원도 하였다.

묵은지로 김치부침개도.

?”

얼마든지 내다마다.

 

13:30 일수행-‘눈이랑

90분 눈 치우기.

다섯이 눈 가래를 메고 달골로. 학교에서 달골 1km.

큰 길에서 계곡 다리까지는 양편으로 차바퀴 다닐 만치만 한 줄로 밀다.

계곡에서 다리빠리 큰집까지 역시 차바퀴 만큼.

이어서 희망의 등대까지 같은 식으로.

그 사이에 있는 아스팔트 일부 구간은 위험구간이므로 전체적으로 싹싹 치우다.

희망의 등대에서 1번 전봇대까지는 양편을 넓게 치워내고,

달골 주차장에 이르는 마지막 50미터 구간은 전체적으로 긁어내다.

눈을 처음 치워본다는 여원.

물꼬에 오래 와도 늘 새로 해보는 일이 기다린다.

나를 넘어 다른 존재를 위해 하는 일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땀이 난 우리는 외투를 벗어 마른 나무에 걸어놓고 눈을 치워나갔다.

물꼬에서 오래 함께한 우리는 기꺼이 마음 내는 걸 안다.

각자의 애씀이 다른 이를 응원했다.

성실한 서로가 서로를 북돋았다.

 

새참.

배추전을 부쳐내고, 담아둔 모과차를 끓여냈다.

배추전을 처음 먹어본다는 무량.

?”

먹고 또 먹었더랬다.

 

15:30 예술활동-‘눈에서

몸을 녹이며 난롯가에서 차를 마신 뒤 이글루 짓기.

햇볕에 잘 살아남는다면 초등 계자 아이들의 놀거리도 될.

여원도 무량이도 채성이도 이걸 또 처음 해본다네.

한 사람이 눈을 긁어모으고

다른 이가 플라스틱 상자에 눈을 채워 눈 벽돌을 만들고

또 다른 이는 그걸 쌓고...

너무 크게 했나 봐요.”

다시 규모를 줄여보고.

2단까지 쌓아올리니 벌써 저녁이 내렸다.

참으로 먹겠다던 난로 위 군고구마는

저녁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며 사이를 잠시 둔 뒤

따뜻한 커피우유와 같이 먹었더라.

 

물꼬 한바퀴’.

처음 온 이가 있었더라면 청계를 이 시간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 익은 이들.

그래서 잊지 않을 만큼만, 되살릴 만큼만

불가에서 물꼬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물꼬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특히 기후 위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실천하는가들.

 

인류가 성탄절과 불탄절을 기념하는 까닭은

성인들이 내린 사랑과 자비를 따르겠다는 것 아닌지.

그 마음을 좇아 우리도 성탄절을 기념하다.

벌써 몇 년째 쓰고 있는 성탄 장식물을 꺼내

가마솥방 밥상머리 무대 위에다 바람을 넣고 걸고.

여러 해 전 류옥하다샘이 성탄절에 해준 장식.

 

그리고 달골을 걸어들 올랐다.

21:30 ‘실타래방이 후끈후끈했다.

보일러를 이틀을 내리 돌린 결과.

오신님방에 둘러앉았다.

여느 청계라면 거실에서였을. 천장이 높아 바람이 많이 드는.

하지만 얼마나 후끈후끈한 오신님방이던지.

가운데 상을 놓고 밤참을 올려놓고서 실타래세상의 모든 질문’.

안전한 동그라미를 상기하니 어떤 이야기도 가능했다.

읽은 책을 말하고, 고민을 말하고, 지금 자신의 위치를 말하고.

깊이 듣고, 따뜻하게 말을 보탰다.

어른들과 하는 계자 같은 느낌이 다 들었다.

어른인 나도 전혀 목마르지 않은 시간이었네.

 

1층은 남자들, 2층은 여자들이 잤다.

바닥은 따듯했으나 외풍이 많은 집,

뜨거운 물주머니를 이불 속에 하나씩 안겨주었다.

깨울 때까지 자기로.

깨우면 싹 하고 일어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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