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계자 여는 날, 2009. 7.26.해날. 바짝 마른 날은 아니나


아이들을 오래 만나고 그들의 성장에 개입하는 일들,
참 느껍습니다.
계자를 다녀간 아이들이 중고생 새끼일꾼으로 오고
대학생으로 오고 사회로 나가서는 논두렁이 되어 후원을 합니다.
그의 동생이 오고 사촌이 오고 친구가 오고 이웃이 오며
나중엔 그 아이의 관계망을 아주 훑게 되지요.
자원봉사를 오는 품앗이들만 해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시집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 자라 옵니다.
긴긴 역사다 싶습니다,
어디라고 사람살이가 그렇지 않을까요만.
젊은 날의 몇 해 물꼬에 손발을 보탰던 품앗이가
장가가고 아이들 키워
이번 계자에 중국에서 오기도 한답니다.
이번 계자 밥바라지를 하는 세 사람 가운데 한 분은
새끼일꾼으로 와 있는 고등학생 현재의 어머니인 경남샘입니다.
자식을 따라 부모가 오기도 하지요.

그렇게 아이들이 왔습니다.
마흔 다섯(이곳에 사는 아이 포함) 아이가 함께 할
<2009 여름, 백서른한 번째 계절 자유학교-그러니까 지금>
첫 일정을 시작하지요.
그런데, 아이 다섯이 모자랍니다.
‘홈피에서 신청확인을 해보고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우리집 달력에 8월 2일부터 빨강 동그라미가 진하고 크게 그려져 있는데..
기차표도 분명히 8월 2일인데 ...
피아노 학원에 또 다른 선생님들께도 8월 2일부터 결석이라고 양해를 구해놨는데..’
인터넷을 통해 하는 신청과정에서 문제들이 좀 생겼지요.
‘무엇보다도
물꼬에 오고 싶었는데 제 실수로 인해 기회를 놓쳐버린 두 친구에게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을 어찌 할까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말 자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여지가 있다는 말이고
시스템 너머를 말하는 것이며
적당히 피해갈 수 있는 변명을 할 수도 있음을 말하지요.
때로는 하늘도 못하는 일을 사람이 결국 한다는
큰 의지의 뜻으로도 쓰는 말입니다.
네, 사람이 하는 일들입니다.
괜찮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더 물꼬의 계자가 이어질 듯하니
오려했던 이들이야 다음 기회에 오면 되고
신청에 오류가 있었던 다섯은
예정대로 다음 두 일정에 함께 하면 될 것입니다.

왔던 아이들이 열넷입니다.
아무렴 왔던 얼굴들이 반갑기 더하지요.
재창이랑 재호, 보고 싶었습니다.
민석이랑 태현이는 어떤 변화들을 보일까요,
임수 희수는 이번에도 집이 떠나가라 싸우다 갈꺼나요,
정인이는 언니 없이 처음 홀로 오는데,
서현이는 한 해 공백을 깨고 왔는데,
현주는 산이 여전히 무서울까요,
가야랑 준하는 둘이 각별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을 잘 안아낼 테지요,
석주는 다녀간 뒤 새 얼굴이랑 왔는데 또 어떨려나요,
정빈이는 얼마나 툴툴대며 질문을 쏟고 씨익 웃어댈까요,
경이가 친구 유진이랑 동행했네요,
그들이 처음 온 아이들을 안내해낼 겝니다.
중 1 순진이와 경탁이에게도 각별히 도움을 청해둡니다.
어떤 나이이든 그 나이대의 몫들을 찾아내고 하는 이곳이지요.

희중샘이 영동역에서 처음 아이들을 맞았습니다.
얼마나 떨렸을라나요.
그저 아이들 모아 버스 태워 들어오는 간단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짧더라도 대장노릇 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역에 아이들 맞이하러가서도
구급상자와 이름표를 놓고 나가는 등 실수가 많았다.
부모님 앞에서도 말 주변이 없어서 그런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하게 되어서 슬펐다.’
새끼일꾼 아람이한테까지 ‘희중샘이 잘 못하는 거예요.’라는 평가를 듣고
희중샘 좌절 깊었지요.
‘오늘 맞이할 때 휑한 느낌이었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도였겠지만 우리가 부족했기 때문.
출석체크 할 때도 허둥지둥 했고...’
새끼일꾼 진주까지 말을 더했거든요.
물론 이왕이면 말 잘하면 좋지요,
그러나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좀 어리버리해도 그가 가진 선함과 성실함을
그래도 아이 키우고 이곳저곳 보내본 부모님들이라면
아이들 잘 섬길 거라는 짐작이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겝니다.
처음으로 영동역 맞이를 나간 새끼일꾼 태우는
‘솔직히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와 보니 아이들이 예뻐보이더라구요.’
그렇게 소회를 전했더랍니다.

전체 안내가 있은 뒤 점심을 먹은 아이들 쏟아져 나와
아주 오래 그리 지냈던 듯
개랑 놀거나 잠자리를 좇거나 개구리를 따라다니거나
그네에 앉거나 수건돌리기를 하거나 책방에 모여 있거나
혹은 마당에서 공을 차거나 거닐고 있습니다.
“큰모임 하자!”
방으로 들어와 글집을 나누어 자신의 기록장을 만들고는
가벼운 소개들도 하고
마을길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들 갔지요.
거기 계곡 있습니다.
풍덩 뛰어들었겠지요.
날이 바짝 마르지야 않았지만
춥진 않았더랍니다.

널럴한 첫날입니다.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지요.
처음 오는 샘들 또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은 적응할 때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새롭고, 어설프고, 그래서 피곤하고...
자연 풀내음에도 마냥 들뜨지 않는 자신,
밤 하늘 별들 쏟아지는 것 같은 착각...’
초등학교 교사인 혜연샘은 하루 평가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한데모임에서 모두 한 마디씩 제 소리를 내고
노래도 부르고 손말도 익히고
고래방에 건너가서는 춤명상도 하였지요.
그 끝엔 온 힘으로 대동놀이로
여름밤을 더욱 달구었더랍니다.
잘 놀데요.
새끼일꾼들이 더 신이 났습니다.
바람잡이들인 게지요.
품앗이일꾼들도 못잖았습니다.
‘알알알 게임에서 다이렉트로 인간이 되었다. 한 번도 안지고,,, 정말 아이들 마냥 신났다. 마지막까지 계속 굴러다니던 알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웃겼다. 녀석들...
선생님 저 아직도 알이에요, 하면서 날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예리샘의 하루평가글에서)

모둠 하루재기를 끝내고 씻은 뒤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아이들이 잠자리로 간 뒤
가마솥방에 모인 어른들의 하루 갈무리가 이어집니다.
“131회 계자라는 것에 놀랐어요.”
혜원샘이 그랬지요.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고 올까,
오는 아이 계속 오고,
나는 무엇을 바라고 왔을까...”
“저는 학교에서 주로 목소리로 아이들을 누르는데,
여기서는, 옥샘은, 조용조용 말씀 하시는데 아이들의 집중이 대단했어요,
그런 게 생소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십여 년이 된 예리샘은
첫날 느낌을 그리 전했더랍니다.
물꼬에 익숙한 이들끼리 있을 땐 모르다가
처음 오는 발길이 있을 때 그들을 통해 우리 특징을 보고는 하지요.

이번 계자는 막강부엌입니다.
아줌마들의 힘!
부엌이 안정적이면 계자가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마솥방 세 식구들로 수월한 계자가 될 듯합니다,
아이들도 잘 멕이고.

바람 잘 날 없기야 어디 하루 이틀인가요, 여기.
KBS 2TV <30분 다큐>에서
오늘과 내일 이틀을 촬영합니다.
물꼬이야기를 담기보다
이곳 엄마가 아이를 키워나가는 방식에 대해 찍는답니다.
물꼬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여러 교육사례들이 담기는 모양입니다.
노련해서인지 계자 흐름에 전혀 이질감 없이 카메라가 돌고
아이들 역시 그런 갑다 하고 지나가거나 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분 촬영을 마치고 달골 오르던 길,
그만 수로에 바퀴가 빠져버렸네요.
두어 시간이나 지나서야 견인차가 나타나
길에서 고생들을 했지요.
게다 아이들 들어올 무렵 그만 벌에게 호되게 쏘여
붓기와 혼미한 머리를 어쩌지 못해
아이들 잠든 사이 결국 병원을 다녀오기로 하였는데,
새벽 2시 그 차가 비켜서고서야 우리 차가 내려와
김천의 한 응급실에 달려갔다 5시에 돌아왔네요.
기락샘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운전하는 이가 있으니 오가며 눈이라도 붙일 수 있어.
아이들 얘기 제 때 써서 올리기는 다 글렀습니다요.

어느 해의 여름, 벌에 처음 쏘였던 그 때,
정말 별이 반짝이데요,
이틀을 어찌어찌 버티고 계자 마지막날에야
119로 응급실을 다녀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곁을 지켜주었던 경옥샘은
이제 먼 나라에 가서 살고 있네요.
기억은 꼬리를 물고 가는 건가 봅니다.
그립습니다, 계자를 함께 꾸렸던 많은 젊은이들...
곳곳에서 제 몫들을 하고 살아들 가고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깊이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맛난 엿새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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