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1.흙날. 맑음 / 132 계자 미리모임

조회 수 1036 추천 수 0 2009.08.06 08:10:00

2009. 8.1.흙날. 맑음 / 132 계자 미리모임


간밤에는 퍽이나 따뜻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끝낸 계자를 좀 수습하고
밤 11시에 가마솥방에 길지 않게 앉았더랬지요.
131 계자를 마친 품앗이샘과 132 계자를 위해 들어온 품앗이샘
그리고 십여 년 전의 몇 해를 품앗이샘으로 함께 했던 이가 자리했습니다.
중국에서 아이들을 보내왔던 창운샘이
승미와 주미를 데리러 왔다가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고,
이 여름 세 계자를 다 보내는 희중샘,
다음 계자를 위해 전체 준비를 하러 먼저 들어온 수민샘이
그들이었습니다.
추억의 자리이고 성찰의 자리이고
그리고 희망의 자리였답니다.

132 계자 미리모임이 있은 저녁이었습니다.
지난 십여 년 물꼬의 논두렁이었던
희순샘의 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달 12일부터 아이 둘과 이곳에 머물고 있었지요.
실제 물꼬 안으로 들어와서 살아낸다는 건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꼬의 삶은 매우 지난한 삶입니다,
정말 힘들고 원시적인.
효율성 면에서 굉장히 떨어지지요.
그런데 물꼬는 우리가 필요한 ‘절차’라는 걸 생각게 하죠,
교육적 ‘살림’.
많은 부분에서 힘든 일이지만
씨앗을 뿌리고 자라는 과정이죠,
우리가 사는 도시적 삶이 결과적이라면.
과정을 가르치는 배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몸으로 익히는 게 큰 도움인...”
그래요, 말 그거 아무나 하는 거고
평가 그것도 누구나 하는 쉬운 일이지요.
문제는 실제 지금 여기에서
누가 움직이고 있는가가 아니겠는지요.
그 ‘과정’을 누가 구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132 계자는 오늘의 미리모임에 있는 이들이 함께 하는 거죠.

132 계자 가마솥방은
미선샘과 희순샘이 131 계자에 이어 맡습니다.
한 분 더 함께 하기로 하셨으나
그만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건이 일어났네요.
빨리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깥바라지는 젊은할아버지와 용찬샘이 맡았습니다.
안에서 전체 흐름을 꾸리기는 희중샘과 수민샘이 합니다.
여러 해의 여름과 겨울방학을
온전히 다 예서 보내고 있는 희중샘이고,
이번 역시 내리 3주를 함께 합니다.
초등학교 3년생이던 수민샘은 중고생 새끼일꾼 기간을 거쳐
대학생이 된 지금에 이르렀지요.
이번에 석사논문을 끝낸 소정샘이
물꼬를 오가다가 계자 품앗이로는 처음 붙고
우리의 영광 새끼일꾼들 다섯,
아니다, 넷이 붙습니다.
시설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올 친구가
다른 일정에 밀려 다음 참가를 기약하면서
그 쪽 아이 둘도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다음에 오게 됐네요.
작년부터 새끼일꾼이 된 고교생 현희샘이
친구 석영이랑 함께 와서 관계를 넓혀주고
윤지가 이태째,
그리고 드디어 우리의 공연규 선수,
초등 2년에 처음 계자에 왔던 그 아이,
새끼일꾼으로 입성입니다.

계자에 모이는 어른들의 중심은
‘계자의 아이들’입니다,
다행히 우리 어른들도 행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들에게 철저하게 복무하는 것이지요.
천 날 만 날도 아닙니다.
5박 6일 그걸 못하겠는지요.
그래서, 이곳에서의 어떤 일의 기준도
그것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웠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었는가로.
이곳은 관망하거나 관조하거나 엿보는 이가 아니라
같이 아이들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온몸으로 유영할 어른이 필요하지요.
동시에 샐린저의 소설에서처럼
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킬 호밀밭의 파수꾼이 필요하답니다.

가끔 우리 어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당연히 저라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자기 내부의 해결력이 참 없다 싶습니다.
어떤 갈등이 생길 때도 굳이 상대와 얘기를 나누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자신이 상대에게 하고픈 말이 더 많지요.
정작 들어서 해결이 오는 게 아니라
(말을)해서 해결을 가져온단 말입니다.
헌데 그 과정을 자신의 내부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어야지 않겠는지요,
어른이니까,
대단한 무슨 영성이라고 이름할 것도 없이.
우리가 흔히 ‘이해한다’라는 것도 잘 보면
그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정보의 있고 없고에 따라 다른 것일까요?
미리 내 안에서 이해하는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지요.
꼭 상대와 앉아서 그의 말을 통해
단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이해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런 기제 없이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겝니다.

계자 미리모임은 구체적으로 움직임을 그려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구석구석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결국 교사들의 마음가짐에 대한 준비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애를 써서 준비한 게 있어도
전체 일정에 유용하지 않을 때 폐기될 수도 있지요.
흔히 우리는
결국 내가 얼마나 빛났느냐에 따라
그 단체의 가치까지 정하는 우를 범합니다.
내가 더 많이 두드러졌으면 그 단체도 좋아져버리고
내가 좀 덜 했다 싶으면
가차 없이 그것이 마치 그 단체의 문제인 양 화를 내는 이들이 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함으로(자신을 ‘씀’으로)
정녕 훌륭하게 빛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물꼬에서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도 보았지요.

결국 계자는 어른들에게 자기를 보는 자리가 됩디다.
내가 무엇을 못 견뎌하는가,
내 한계가 무엇인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게 되지요.
물꼬 역시 마땅히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충고대로
순전히 나르시즘인가,
매너리즘은 아닌가도 살펴보고,
사실 그런 말들의 정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자신을 잘 보라는 말들이겠지요.
잘 돌아보고 잘 다듬어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온 몸으로 섬기겠습니다.

내일 또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함께 할 계자 날들의 중심은
오직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같이 하는 어른들을 잘 살필 수 없음에 늘 죄송합니다.
그만큼의 에너지는 안 되는 게지요.
물꼬의 존재가치, 아이들을 향해 있음을 더 크게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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