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계자 나흗날, 2009. 8. 5.물날. 보름달

조회 수 1212 추천 수 0 2009.08.11 18:50:00

132 계자 나흗날, 2009. 8. 5.물날. 보름달


아, 달이 너무 밝아서요,
달빛이 너무 고와서요,
반딧불이도 계곡 따라 풀섶 사이 날구요,
밤길, 훤한 두멧길을 모두가 걸었습니다.
아니 나올 듯 구름에 쌓였더니
아이들을 위해 달 보낸 고마운 하늘이었지요.
어디메서 잠시 멈춰 서서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세상을 채우는 다른 존재들의 소리에 귀도 기울이고,
보름달 보며 마음속에 자기 삶의 소망들을 열어보았습니다.
바램이 차고 넘치면 이루어진다던가요.
돌아올 적엔
그동안 낯을 익히지 못했던 이들과 짝을 이뤄 손 붙잡고
천천히 걸어왔지요.
온 마음이 보름달에 다름 아니었더랍니다.
무슨 말을 더 쓰려나요.
오늘 보낸 시간들을 기록하는 일들이 무색할 만치
이 밝은 달빛으로 지금 마음 가득합니다,
누구라도 아니 그럴까요.

아침, 해건지기 두 마당을 끝내고 달골에 올랐습니다.
마을 건너편 산기슭이지요.
거기 춤명상도 하고 단식도 하고 손님들이 묵어가기도 하고
모임을 하는 이들이 공간을 빌려도 쓰는
물꼬 부속건물인 햇발동과 창고동이 있습니다.
눈가를 모기에 물린 윤찬이,
그 부위가 온통 부어있는 걸 보고
얼음찜질을 부탁하고 오른 길이었답니다.
(하루 사이 금새 가라앉았습니다.
일곱 살 때부터 왔던 2학년 그 아이,
심하던 아토피도 훨 안정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쫑알쫑알 새처럼 지저귀는 아이들입니다.
‘고만고만하게 작은 아이들과 손을 잡고
콧속을 뻥뻥 뚫어주는 아침공기를 마셨다.’(소정샘의 하루정리글에서)
물꼬 달골 포도밭가 복숭아도 따
개울가에서 씻어먹었지요.
그저 자란 것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동안에도.
맛이 들었습디다, 앞 계자는 아직 맛이 덜 차서 아쉽더니.
벌레도 나눠 먹고 사람도 나눠먹는 달골 복숭아지요.
민아가 자기 것은 벌레가 덜 먹고 크다고
언니들에게 한 입씩 베어 물게 하고 있었네요.
‘애벌레와 나누어 먹는 복숭아도 맛있었고요. 벌레 먹은 부분이 적다고 제 몫을 언니들에게 나누어준 민아 마음은 더 예쁘고 좋았습니다.’(소정샘의 같은 글에서)
아이들과 걷는 길은
아이들이 사는 환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기도 합니다.
윤주네 부모님은
멀리 계시거나 늦도록 일을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네가 힘들겠다, 하는데
엄마가 더 힘이 들 거라고, 대단하다고,
외려 어른들을 이해합니다.
딸들이 낫다 싶어요.
세상 무어라 무어라 해도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면 늘 참 ‘희망적’이 됩니다.

‘손풀기’ 마지막 시간인 오늘 아침은 요절복통이었습니다.
한편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문화예술에 대한
야유가 있기도 하였지요.
실제 작품보다 말로 그 작품을 더 예술화시키는 경향이 없잖지요.
때로는 그 그림의 가치보다
말이 더 현란하기도 한 세상 아니던가요.
용승이가 제 그림에 토를 이리 달았데요.
‘이 그림은 그림의 화음과 가운데의 점을 중심으로 하여 주전자의 아름다움과 반짝임을 집중적으로 나타내어 눈을 편하고 딱 맞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그림자의 반향을 반대로 하여 안전감을 주고 주전자를 앞으로 하여 표현하였다.’
동휘도지지 않고 썼습니다.
‘이 작품은 주전자 하나만으로도 원심력의 신비와 타원형의 세밀함을 나타내고 있다. 도형의 모든 것이 들어간 엄청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특히 중간에 걸려있는 손잡이는 그림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들은 정말 재밌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농담을 조금만 이해하기만 하면
세상에 그보다 더 재미난 게 없다 싶습니다.

‘우리가락’이 고래방에서 이어졌습니다.
김세종제 춘향가 전 판을 구성하는 대목 대목을 듣고,
설계리 농요를 잠시 불러보고는
모두 악기를 잡았습니다.
품앗이샘들과 새끼일꾼들은 풍물단 꼬리에 붙어
몸으로 흥을 돋우는 잡색이었지요.
어떤 공연보다 즐거웠다고들 합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열심히 장단을 맞추는 그 모습이
귀엽거나 대견스럽다기보다 멋졌다고,
‘제가 이제껏 살면서 보아온 어떤 공연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정샘이 그랬지요.
아마도 어제의 ‘초아’ 공연에
고무된 이유도 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어릴 적 이곳을 내내 다녀갔던 수민샘은
그때처럼 우리가락을 해도 좋겠다 제언합니다.
몇날 며칠을 한 시간씩 해서 마지막날 서로 펼쳐보였지요,
판소리, 탈춤, 풍물로 나누어.
요즘 그 시간이 짧아진 첫째 까닭은
한정된 시간 안에 하고픈 다른 것도 많기 때문이고
또 다른 까닭은 예전만큼 그것을 가르칠 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에게 탈춤과 풍물패는 거대한 무리였는데,
그래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도 그만큼 많았는데,
시절이 변했지요, 예전만큼 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그나마 물꼬 안에서 계속 전수의 형식으로 사람들이 다뤄왔는데,
최근 몇 해를 그냥 넘어가고 있었네요.
다시 정비가 좀 필요하겠구나 싶습니다,
자체 전수 말입니다.
어쨌든 그것도 2010학년도를 넘어가야 되잖을까 싶은데,
아니면 내년쯤 어찌어찌 해볼까 궁리를 해봐야겠습니다.
'애들 실력에 비해 확실히 흥의 수준을 맞춰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는
새끼일꾼들의 반성도 있었지요.
어쨌든 오랜만에 상쇠도 흥이 났더랍니다!

보글보글 2.
그림동화 읽고, 만두 빚고 굽고 찌고 끓입니다.
‘당당한 만두’-주용 세인 세빈 준호 형민.
아이들이 적으면 아무래도 수월하고
마무리도 그만큼 덜 번잡하지요.
만두에 집착 않고 서둘러 밥까지 볶아서 잘 먹었다 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만두를 빚으면
예 오기 전 손가락을 꿰매고 온 형민이가 그 만두를 구웠다지요.
세인이 세빈이가 조금 더 흥을 내면 좋을 텐데,
샘이 아쉬워합디다.
하기야 그저 여기서 쉬어만 가도 좋지 않겠는지요.
자주 왔던 아이들이라 마음도 더 가고
얼굴도 더 살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게지요.

‘자랑스런 만두’-채영 정민 지유 훈정 지윤 지원 신명 윤주.
신명이를 빼면 모두가 여자 아이들,
노래까지 부르며 재미있게 칼질들을 했답니다,
도움을 청하면 기분 좋게 움직이고.
‘구성원 하나하나가 다 같이 하느라 비록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다른 모둠 꺼보다 더 예쁘게 보이고 그랬다.’ 진행샘이 전했는데,
어느 모둠은 아니 그랬을려나요.

‘자신 있는 만두’-우진 예원 승민 동규 준영 은비 지인 세민 정인 민아.
자신있게, 못 생겨도
자신 있게, 맛 없어도
자신 있게, 안 익어도
잘 굽고 잘 찌고 잘 나눠먹었다는 모둠입니다.

‘용기있는 만두’-동욱 형빈 석훈 다니 형찬 성재 재우 석현.
부엌의 희순샘 도움도 받고,
의젓한 성재 석훈이의 도움도 컸고,
이 만두집이 평안했던 까닭이라지요.

그리고 ‘빛나는 보자기’.
용하 효정 윤찬 금비 수빈 용승 류옥하다가 있었습니다.
중 1 귀남이와 동휘가 도움꾼으로 불려와
만두피 공장을 아주 훌륭히 가동하였지요.
큰 놈들이란 뭐가 나아도 낫단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나이가 많든 적든
그 나이의 제 몫을 찾고 해내는 매력이 큽니다.
고마운 일들이지요.

혹여 배가 덜 찼을까,
만두소랑 밥이랑 비벼도 먹고
만두피 반죽을 칼국수도 하고
밥도 내고.....
책방으로 가 있던 삐돌이 세운이까지
모다 챙겨먹었지요.
그 끝에 빙수가 도착했습니다.
바깥바라지 젊은 할아버지와 용찬샘이 열심히 간 얼음 위로
팥과 떡과 시럽들이 예쁘게 얹혔데요.

연극놀이?
못했지요.
그런들 어떻겠는지요.
계곡에 가서 현장극(?) 했습니다요.
차근차근 조금씩 적실려고 했는데,
‘나를 앉히시고 손수 물을 퍼다 주신 친절(?)하신 희중샘의 배려’로
그럴 필요가 없어졌더라는 연규,
그렇게 적시고 나니 훨씬 놀기가 편하더라지요.
뭐 살신성인이 따로 없는 물꼬 샘들...
큰 아이들이 다 들어가 격해지고
그래서 좀 다치기도 하였네요.
그리 대수롭지는 않은 상처들이었지요.
약간의 상처는 그냥 바람에 나아갑니다.
깨끗이 상처를 씻기만 하고 놔두는 게
약보다 밴드보다 나은 산골 여름이라지요.

저녁 먹고 대동놀이에선
사냥을 다녀왔습니다, 물론 고래방에서였지요.
샘들이 더 신났습니다.
족제비보다 빠르게 닭도 서리하고 토끼를 몰아오고
심지어 멧돼지도 잡았대나 어쨌대나요.
그리고 춤명상 대신 오늘은 밤마실을 떠났습니다.
보름이었네요, 달 휘영청 올랐습디다.
좀은 뚱해 있던 동규도 마음이 다 풀렸지요,
재밌었답니다.
자연은 그런 겁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위안하고...
어깨로 내려앉는 달빛을 받으며 두메산길을 걷는 길은
아이들끼리도 더 친해지는 계기이고
어른들 또한 아이들이랑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용하 동욱이, 부딪혔던 녀석들도 아무렇지 않게 같이 갑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늘 부럽습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지요.
어른들은 미움을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지금도 행복하지만 그때도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지요.’,
옛적 아이들이 밤마다 여름 밤마실을 나갔던 계자가
수민샘은 자꾸 떠오르나 봅니다.
아름다운 시간들이 삶을 밀고 나가주지요.
이 순간도 우리 아이들의 삶에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부작사부작 돌아오는 길,
모두가 잔잔한 호수였더랍니다.

우리 새끼일꾼들 웬만한 어른들 보다 낫다마다요.
이놈의 우리 어른들의 존재란
뭘 좀 했다고 얼마나 유세를 하는지요.
그런데 우리 새끼일꾼들 그저 아이들 뒷바라지를 다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복무할 뿐이지요, 아무 댓가도 없이.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공부로 내모는 이 시대에
한 주일씩이나 받쳐.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맙습니다(그러면서 더 깊이 배우다마다요.).
프로그램 말고도 사이와 사이의 시간 틈에 아이들 속에서
저들 어릴 때 예서 배운 매듭으로 팔찌도 만들고
아이들은 또 ‘이게 뭐예요?’ ‘어떻게 해요?’
곁을 파고들어 익힙니다.
계자의 또 하나의 일정이 거기 있는 거지요.

‘끝이 나고 있다.’
샘 아니라도 이 즈음에 이르면 벌써 그런 느낌을 줍니다.
“불날 지나면 다 지난 것 같애요.”
신명이가 오늘은 또 그러데요.
또 하루를 마치는 밤,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책은
듣는 아이들도 좋지만 읽는 어른도 좋아라 하지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합니다.
삶이 그런 건 갑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듯하나 시간 속에 다 다릅니다,
그래서 새롭고 그래서 날마다 맞는 아침도 새 아침인 게고.
아이들이 잠든 밤, ‘샘들하루재기’입니다.
수민샘은 정리글에서 이리 쓰고 있었지요.
‘무엇이 이곳에 오게 하는가?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지치는데 나는 왜 계속 이곳으로 향할까? 이곳에서의 사람들 외의 다른 사람들을 이곳에 오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곳은 이곳으로 남기고 일상과 섞고 싶지 않은 욕구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계속 오게 되나 보다 싶다.’
그래요, 이곳에 물꼬가 있고
다들 그냥 자연스레(제 각각의 까닭으로) 때가 되면 이곳에 모입니다.
적어도 건강한 곳이라는 공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기꺼이 시간을 내고 손발을 내는 것 아닐지요.
아이들은 왜 또 오는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선 모든 어른들이
자신들을 향해 온전히 서있다는 게
그 까닭 하나쯤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안정감이 있고 믿음이 있는 듯...

늦은 밤 빨래가 개켜져 들어옵니다.
그것도 일이지요.
지난주는 부엌바라지 셋 가운데 희순샘이 맡아주었고
이번에는 바깥바라지 중 한 분 용찬샘이 맡으신 일이랍니다.
고솜한 볕이 닿은 옷을
내일 아이들이 또 입고 뒹굴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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