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계자 닷샛날, 2009. 8. 6.나무날. 마른비에다 소나기


뜨끈뜨끈한 아랫목입니다.
산에서 돌아왔더니
바깥바라지 하는 분들이 불을 때놓으셨지요.
아이들은 아주 더워라하네요.
푹 자고 몸 잘 풀어
모두 가뿐한 아침 맞을 수 있을 겝니다.

새벽 5시부터 가마솥방 샘들이 해준 김밥재료를
6시부터 샘들이 쌌습니다.
한편 아이들을 깨워 산오름 옷으로 단도리하고
차곡차곡 짐을 쌉니다.
도시락, 오이, 사탕, 초코파이, 수건, 여벌 옷, 물통, 약상자,...
화장지도 꼭 필요하지요,
거기 엉덩이에 바람 솔솔 닫는 화장실 얼마나 많은지요.
그간 참아온 녀석들도 몸을 움직이며
죄 달려가는 게지요, 나무 뒤로, 숲 그늘로, 바위 뒤로.

물한주차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러 마을길을 달려갑니다.
버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요,
우리가 맞춰야 합니다.
하지만 노래도 부르고 도란거리는 속에
차츰 뜀은 걸음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버스 왔다 하여 우당탕 뛰어갔겠지요.
조금 여유가 없는 듯도 하였으나
아이들이야 이런 것도 다 재미라지요.

산에 사는 존재들의 집을 방문할 때의 예의는
들머리에서 늘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9시, 그렇게 걸어 오르기 시작했지요.
두 아이가 발을 다쳐 학교에 남았고
마흔의 아이들이 어른 여덟과 함께 오릅니다.

우리들이 시작점이라고 부르는 곳에 이르렀지요.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길은
얼마나 큰 비가 왔던가를 잘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낙엽들이 계곡물에 둥둥 떠내려 오다
범람한 물과 함께 울타리까지 밀려있는 게 보였지요.
길도 이만저만 패인 게 아니었습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다리를 쉬며
이 산에 얽힌 이야기를 전합니다.
민주지산 꼭대기에 왜 잠자리가 그리 많은지,
세상의 모든 잠자리가 거기로부터 날아오르게 된 까닭을
귀 쫑긋하고 듣고 있었지요.
“맨 앞은 제가 가고...”
맨 뒤는 희중샘이 받치기로 합니다.
다른 샘들은 사이 사이에 자리를 잡았지요.
저보다 먼저 가면 산 꼭대기의 초코파이가 사라지는 마술이,
희중샘보다 늦으면
산 아래서 기다리는 저녁밥이 사라지는 마술이 벌어지는 게지요.

1지점.
계곡 한 번 가로지르며 건너면
너른 자리에 모일 수 있습니다.
저만치에서부터 거기서 오르는 길 가운데
가을빛이 시작된 나무 한 그루 있데요.
그 계절의 절정에는 꼭 다음 계절이 예비 되어있습니다.
여름 한가운데는 다시 가을의 시작점이 있지요.
길 한가운데 작은 나무가 노란리본처럼 잎을 팔랑거리데요.
여름도 이제 내리막입니다.
물에 벌써부터 발을 담그거나 세수를 하고
물통을 채우기도 하고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얘기, 뭐 수다이지요.
누구라도 익어진 사이들인 게지요, 함께 산을 오르는 일은.
사탕을 나누고 다시 길을 잡습니다.

2지점까지는 깁니다.
몇 군데의 갈림길이 있지요.
그 지점마다 앞 무리 가운데 한 사람 남아
다음 무리를 기다립니다.
다음 무리가 도착하면 그 무리 가운데 다시 하나가 남아
역시 그 다음 무리를 기다려 일행을 연결하지요.
리본을 달자, 종이를 돌에 깔아두자,
여러 의견들 있었으나
사람이 서서 하는 것만 못합디다.
꼭 어른(새끼일꾼 포함)이 아니어도
중 1이나 고학년 아이들도 잘 할 수 있는 일들이지요.

선두가 2지점에 닿았습니다.
그리 수월한 산은 아니나 쉬엄쉬엄 노닥거리며 가니
소풍길이 따로 없지요.
그늘 짙은 곳 마지막 물가에서
(예서 물통도 다 채워야하지요.)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가 많고도 많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운동에 미쳤어요.
우리 선생님이 우리 집은 미친 사람들이 많대요.
선생님 부인은 옷에 미쳤다고...”
세운입니다.
“옥샘, 가요, 돌이 미끄러워요.”
수민이가 내려가자 조르네요, 그래도 안 내려가리란 거 알면서.
일곱 살때부터 왔던 그 아이 어느새 5년생입니다.
아이들이 돌길을 네 발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지요.
“왜 그렇게 돌을 던져?”
동규는 계속 계곡만 보이면 그러네요.
“더 재밌는 거 하자.”
“음... 옥샘, 70년대 굶주리다가 어떻게 잘 살게 됐는지 아세요?”
“왜?”
“잘 살아보자 라고 써 붙여놓고(* 여기까진 우리의 근대사가 맞는 듯한데)
중국이 도와줘서 잘살게 됐어요.”
동규의 잡다한 지식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1900년대에 만들어진 뭐뭐가 있다! 뭐게요?”
“뭔데?”
“초고속기차.”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랬지요.
“동규야, 아무래도 네 정보가 내 정보랑 다른 게 많은 것 같네.
집에 가서 서로 다시 확인해보자.”
너무나 웃음이 예쁜 아이 석현,
세상에나, 동생을 둘이나 거느린 장남이래네요.
“이야!”
“그런데 또 하나 더 낳을 거래요. 태어날 거예요.”
게다 하나를 더...
“정말 (아이)부자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약방을 하시고
엄마 아빠는 소나무한의원을 하신다지요.
“정민아, 니네 부모님은 무슨 일하셔?”
“엄마는 법적으로는 일을 하시는데 실제는 안하세요.
자격증을 빌려주고...
아빠는 집 짓는 일 하시고...”
아이들이랑 나누는 이야기들이 재미나지요.
꼭 밥상 앞에서처럼
아이들을 둘러싼 집이며 학교며 지역사회를 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두런두런 앉은 사이를
등산객들이 지나갑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들이 길을 막아서...”
울 아이들은 또 큰 목소리의 인사로
잘못을 다 만회하고 있었지요.
지나는 사람들한테 말도 겁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흥덕산악회, 청주라지요.
사람들은 계속 올라옵니다.
“아저씨들도 흥덕산악회에서 오셨어요?”‘
“아니, 무지개 산악회!”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입니다.
“우리는 담배피고 그런 사람 없어, 깨끗해.”
우리도 얼른 말을 받지요.
“우리도 담배 피고 그런 사람 없는데...”
“우리는 술 마시고 엉덩이 흔드는 사람 없어.”
“우리도 술 마시고 엉덩이 흔드는 사람 없어요. 그치 얘들아!”
“네에!”

그런데 마지막 무리가 아무래도 너무 더딥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지요.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뭔가 잘못된 겝니다.
줄이 끊어진 거지요.
다시 먼저 왔던 마지막 무리를 찾습니다.
“다음을 이어주고 온 거 맞아?”
이런, 역시...
끊어졌음을 말하지 않은 게 아닌데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전달이 잘 안됐던 거지요.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요?
샘들이 긴급모임을 합니다.
“아이 열과 샘 셋이 낙오(?)됐습니다.”
이럴 때 익숙한 류옥하다 선수가 큰 도움입니다.
완전히 운영진이지요.
전체 길을 그가 잘 압니다.
쪽새골로 민주지산을 오른 게 그 아이 열다섯 차례도 넘지 싶어요.
“3지점까지 갔다가 정상에 오르고
다시 3지점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도록 해라.”
샘들한테는 전화를 켜두라 합니다,
지금 이곳은 불통이나 그곳은 통화 가능하니.
아이 스물아홉이 그 뒤를 따르고
몇 샘이 앞뒤로 포진하고 올라가는 걸 보고
놓친 이들을 찾으러 달려 내려갑니다.
이 산을 제법 알지요.
빙 돌아서라도 먼저 간 그들이 점심을 먹고 쉴 쯤이면
거기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림길이 몇 되는만,
잃어버린 그들이 내려가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쉬워 그러지요.
같이 오른 이들이 함께 나누고픈 시간들이 있으니까요.
다행히 이런 상황을 대비해
먹을 것들은 잘들 나누어 짊어졌습니다.
저편만 해도 어른이 셋,
그들 등에 김밥, 오이, 물, 초코파이 다 있지요.
만약 서로 보지 못하면 5시 10분 버스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너른 산에서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요?
달리고 또 달립니다.
가끔 힘은 드나
평지에서 달리는 것보다 더한 가벼움을 느끼고는 합니다.
산은 그런 힘이 있지요.
첫 갈림길, 아무래도 여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듯합니다.
야생으로 돌아가면 더듬이가 작동을 하지요.
그걸 믿어보기로 합니다.
다음 갈림길로 달려가지요.
등산객들이 있습니다, 물어보지요, 보지 못했답니다.
그러면 더 아래겠지요.
다시 만난 갈림길,
계곡을 통해 오르는 길입니다.
길은 패이고 패였는데, 과연 아이들을 끌고 이 길을 갔을 것인지...
갔을 겝니다.
우리들이 그동안 아이들과 해온 산행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니
이런 길이어도 길이라면 앞선 아이들도 갔겠다 짐작하고 길 따라 올랐을 겝니다.
아이들은 또 얼마나 비틀대며 올랐을까요?
웬만큼 가자 가파른 낙엽송 숲,
숲 깊숙이 이런 아침고요가 있다니,
그 와중에도 경이로움으로 멈춥니다.
숨이 가빠서도 다리가 후들거려서도 철퍼덕 앉았지요.
헉헉거리며 땀을 닦고 가방 한 번 내려 다리쉼을 합니다.
부르고 또 불러보지만 대답 없는 그들이지요.
“희중샘!”
“윤희중!”
“어이!”

이 길이라면 만날 수 있도록 바지런을 떨어야겠지요.
길은 끊어질 듯하며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좁고 그리고 수없이 꺾이고 꺾입니다.
그런데 굵은 비 쏟아집니다.
서둘러 다시 오르막을 안간힘을 쓰며 오릅니다.
이것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젖은 옷은 이제 살에 달라붙습니다.
아이들도 다들 물에 빠진 생쥐일 텐데...
작은 능선길이 저어기 머리 위에 있다 싶은 곳,
다시 온 힘으로 불러보지요.
“어이!”
“아, 옥샘이다! 어이!”
뛰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와락 달겨들 기세이지요, 아이들이 눈물 그렁거립디다.
내 마음도 그리 그렁거렸지요.
만났습니다!
더러워진다며 손으로 아무것도 짚으려 하지 않았다던 준우,
죽는 줄 알았다 호들갑입니다.
“더러워질래, 죽을래?”
샘 하나 좀 과격하게 엄포놨다네요.
툴툴거리기는 하나 징징대지는 않더랍니다.
“이 길을 타고 1킬로미터쯤 가면... 먼저 가서 기다릴게.”
길을 안내하고 앞서 다시 뛰어갑니다.
이 정도의 속도면 산봉우리에서
먼저 올라간 앞패랑 만날 수 있겠지요.
걸음은 바쁘나 마음은 안도하여
꽃들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더이다.
북쪽 높은 산이면 쉬 만날 수 있는 동자꽃 거ƒ…고
노루오줌 활짝 폈고 비비추 기웃대고
무릇도 많습디다.
말나리 거ƒ…고 눈개승마도 보이고
보라색 저건 산수국이던가....

하산길로 갔다가 빙 둘러 둘러 정상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먼저 갔던 패들은 아래 있었습니다.
“어이!”
하도 떠들어대서 부르는 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데요.
한참이나 있다 나타난 아이들,
“어, 날아오셨어요?”
“애들 만났어요?”
“비행기 타셨어요?”
“언제 오셨어요?”
아이들은 온통 진흙투성이였지요.
가슴이 뜨거워집디다, 대견도 하고.
아이들은 하늘 뻥 뚫린 정상에 서서
어느새 툴툴거림도 잊었지요.
먼저 온 이들은 아주 먼 마을을 더러 보기도 하였으나,
어느 틈에 안개구름 몰려와 우리를 덮쳤지요.
이제 아무것도 뵈지 않고 그저 구름 속입니다.
“아,...”
언제 구름을 밟아보겠느냐, 그런 감동이 없더라지요.

쪽새길에서 오르면서 주용이 심하게 넘어졌다는데
현희샘이 잘 달랬다지요.
저도 힘든 산길,
앉아 공부만 하는 고등학생일 텐데,
짜증나고 힘들 텐데 기분 좋게 달래가는 모습이
윤지 같은 어린 새끼일꾼들에게 자극이고 감동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보고 배울 것입니다.
밥을 펼쳐놓고 먹는데
어느새 처졌던 마지막 무리도 닿았지요.
꼴새들이 말이 아닙니다.

밥 먹자 체온 급격히 떨어집니다.
구름도 무거워지고 있었지요.
서두릅니다.
각호산으로 조금 향하며 쪽새골로 꺾어지는
조금은 돌아가는 길,
아직 계자 아이들과 내려가 본 적은 없는데
(앞 계자에서 거슬러 오르기는 해봤지만)
가보기로 합니다.
뒤처졌던 무리들은 올랐던 곳을 되짚는 게 되지요.
하지만 정신없이 올라서서 그 길이 그 길인 줄을 알기는 하려나요.

일행이 끊어지는 사건은 버스 시간을 빠듯하게 만들었네요.
걸음을 재야겠지요.
“학교에 가야 물이 있고,
학교에 가야 밥이 있고,
쉬어도 학교에 가서 쉬어야지.”
우리의 수민샘 그렇게 아이들을 앞세우고 갑니다.
아저씨 하나 우리를 스쳐 가는데
손에 든 저게 무얼까나요?
“계란버섯 아니에요?”
그렇답니다.
개체수가 많지 않아 돈으로도 계산할 수 없다는 맛난 버섯,
이맘 때 잠깐 나기에 그거 따러 다니신다셨습니다.
맞아, 맞아, 우리도 저거 따야지,
눈을 크게 뜨고 내려갑니다.
계란버섯, 황제버섯이라고도 하지요,
로마의 네로황제가 좋아했다는 버섯,
이 버섯을 따가지고 가면
무게를 달아서 그 무게만큼 황금을 주었다하여 황금버섯이라고도 하는.
그런데 모양과 색이 화려하여 독버섯으로 오인 받고는 하지요.
노란 것도 있고 하얀 것도 있고 또 한 가지가 있었는데....
버섯 갓이 너무 부드러워서 요리하면 금방 녹아버려 흠이지만
스프를 끓여놓으면 다들 맛으로 놀래시데요.
“아, 저기!”
앞서가던 신명이와 류옥하다와 같이 땄습니다.
의심스러울 땐 냄새로 구분할 수 있지요,
식용버섯 특유의 냄새가 나거든요.
등산수건 하나를 엮어 주머니를 만들자
신명이가 그걸 산 아래까지 챙겨가기로 했답니다.
우리의 효자 신명이, 부모님께 꼭 드리고 싶답니다.

길, 정말 만만찮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굴러 내려왔지요.
어느 곳에서는 경사도가 너무 커서
바짝 힘주고 달려내려야 했습니다,
미끄럼을 타기는 쉽않은 진흙이었으니.
그게 또 이 장난끼 많은 녀석들을 부추겨
다시 기어오르고 내리고 하기를 반복케 하데요.
그런데, 성재에게는 심각한 상황이었지요.
나무에 얼굴을 부딪힌 것입니다.
모두가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지요.
세상에, 광대뼈가 조금 긁혀 다행이었지,
거기 부러진 가지라도 있었다면 눈이 어찌 되었을 것이냐,
순간 오싹합디다.
하늘 또 고마웠지요.

다시 1지점.
마지막 계곡을 건너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주차장까지 족히 40분은 잡아야 하지요.
그런데 꼭 절반이 그 시간 안에 닿았네요.
류옥하다와 중 1 귀남이에게 임무를 부여합니다.
버스를 잡고 있을 때까지 있다가
스물일곱의 아이들 버스에 무사히 태우고 대해리 들어가라 했습니다,
샘들은 오히려 남은 아이들을 건사해야겠기에.
금새 도착한 다음 무리도 버스를 태울 수 있겠기에
중 1 동휘를 앞세우고 내려 보냈지요.
그때 수민샘이며 한 무리가 또 닿았습니다.
그래도 어른이 낫지요,
달려가서 버스 아저씨를 설득하라 합니다.
시골버스가 그런 게 또 좋답니다.
물론 다음 7시 버스가 없는 것도 아니고
트럭이며 다른 방법이 또한 없는 것도 아니나
일정대로 하는 게 수월하지요.(5:10 버스)

마지막 무리들 보셔요.
여섯 살(일곱 살이라 우기는) 은비,
얼마나 야무지게 내려오는지요.
그런데 저어기 어째 재우가 영 힘에 겹습니다.
알고 보니 신발이 껴 발가락이 아팠던 거지요,
아고, 얼마나 아팠을라나요.
그런데도 쳐다보니 눈물 쓰윽 닦고 아무 일없는 듯 내려옵디다,
가끔은 이 녀석 이러는 게 속이 상합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짜증도 내고 그러면 좋겠다 싶지요.
일곱 살 민아, 작은 걸음으로 꾸준히 내려옵니다.
힘이 들텐데, 그래도 울지도 않고 내려옵니다.
주용이, 너무 너무 다리가 아팠는데,
걷다보니 안 힘들다나요.
어느 순간 걷기는 놀이가 되고 있었지요.
저 아이의 맑음과 긍정, 저런 걸 잘 지켜주고 싶지요.
준우, 다른 때도 여간한 툴툴이가 아니니
이 순간들을 놓칠 리 없지요, 아주 물 만났습니다.
다리 아파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어찌나 종알대던지요,
나중에는 아주 웃겨죽는 줄 알았답니다.
계속 돌돌거리는 걸 보니 아직 죽을라면 멀었다 싶었지요.
절대로 다시는 아니 온다면서
나중에는 말하고 걷는데 신이 났더라니까요.
지윤이는 아주 이를 갈데요,
역시 다시는, 다시는 절대로 안 온다고.
그래도 걷지요, 또 걷지요,
무어라 무어라 말을 받아가면서.

이런데도 우리는 왜 산을 가는 걸까요,
재미난 거 다른 것도 할 것 많은데,
왜 굳이 하루를 다 들여 산을 오르는 걸까요....
아이들에게도 다녀와 물었습니다.
힘들다고 다시는 그런 짓 안하겠다할 것 같지만
아니요, 저마다 외려 감동과 스스로의 대견함과 뿌듯함이
우리를 둘러싸지요.
‘다들 너무 잘 도와주고 서로 챙겨주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완전 힘들고 온 몸이 아프고 지친 날이지만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너무 행복한 날이었던 것이다.
이번 계자는 네모이다. 그 칸을 메운 것, 고마움!’
새끼일꾼 연규가 쓴 하루정리글은 그리 맺고 있었다니다.

버스가 저기 보입니다.
그때 5년 윤주가 준우를 안고 뛰데요.
세상에, 어디서 그런 마음이, 그리고 힘이 나왔을까요.
놀라운 순간들입니다.
산에 가면 모두가 그러합디다.
중 1 동휘는 얼마나 의젓했는지요.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도 고단했을 텐데 아이들을 어찌나 잘 챙기던지요.
귀남이 역시 그러했습니다.
저마다 아이들은 제 몫과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서로를 도왔지요.
마지막 댓만 남기고 버스가 떠났답니다.
마침 물꼬 차가 거기 있었지요.
무사히들 제 시간에 물꼬로 들어온 겁니다.
긴 산오름이었더이다.

늘 그렇지만 특히 산오름에서도 애들은 덜 걱정됩니다.
다치기도 사실 덜하지요,
몸에 긴장이 덜 들기 때문에 넘어져도 덜 다칩니다.
어른들을 끌고가기가 어렵지요.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힘을 발휘하니까
그래서 또 어른이고,
그래서 또 산에 보호자로 같이 가는 거지요.
새끼일꾼들도 어느 시간보다 욕봤습니다.
‘아이들과 있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좋다.’(새끼일꾼 현희의 하루정리글에서)
‘산을 올라봄으로써 정말 무언가 얻는 느낌이었다.’(새끼일꾼 석영의 같은 글에서)
수민샘은 샘들한테의 아쉬움을 더했네요.
‘산에 가기 전 아이들을 너무 보호하지 않게끔 샘들에게 말하는 것이 좋을 듯. 너무 많이 잡아줄수록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힘들어한다. 샘들도 더 많이 힘들고...’
아이였고, 새끼일꾼이었으며, 이제 품앗이일꾼인 그가
그 많은 산들을 오르고 한 말이네요.

마지막 밤의 대동놀이, ‘강강술래’.
아이들이야 산을 언제 올랐던가싶게
놀 힘이 아직도 넘칩니다.
저번 계자도 그 어느 때보다 재밌는 강강술래라더니
이번도 다르잖데요.
저번도 그랬지만 이번 계자도 강강술래 전 판을 다 했고
그만큼 좋습디다.
특히 청어엮기는 결국 다 해냈습니다.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의 대동놀이 중 젤로 즐거웠다고들 합니다.
하기야 다음번에 또 다음번대로 그리들 말하지 않을지요.

장작놀이 이어집니다.
애고 어른이고 아이들과 더욱 더 친해져서 좋았는데, 막 친해지려는데
헤어지는 게 아쉽다는 안타까움들 컸지요.
용하는 그예 눈물 글썽였답니다.
구운 감자를 꺼내고 한바탕 인디언놀이 벌어집니다.
아쉬움으로 마지막 밤이 더욱 뜨거운가 봅디다.
온 학교를 구석구석 달리며 괴성을 지르고 검댕을 묻혔지요.
세빈이 세인이 쌍둥이를 다시 봤다는,
장난이 무지 많고 달리기도 무지 빠르다고
현희샘 혀를 내두르데요.

윤주가 희중샘한테 물었습니다,
샘도 결혼하면 아들딸들 물꼬 보내실 거냐고.
“내 자식이 자랄 때도 물꼬는 계속 있을까...”
글쎄요, 물꼬는 어떤 형태로든 흘러갈 테지요.
꼭 어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 속을 뚜벅뚜벅 걸어갈 겝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만은 오래 하잖을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2016 133 계자 사흗날, 2009. 8.11.불날. 비 오다가다 옥영경 2009-08-25 1252
2015 133 계자 이튿날, 2009. 8.10.달날. 흐림 옥영경 2009-08-22 1189
2014 133 계자 여는 날, 2009. 8. 9.해날. 회색구름 지나 오후 볕 옥영경 2009-08-14 1202
2013 2009. 8. 8. 흙날. 저녁답 먹구름 / 133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9-08-13 1009
2012 132 계자 닫는 날, 2009. 8. 7.쇠날. 오후 비 옥영경 2009-08-13 1109
» 132 계자 닷샛날, 2009. 8. 6.나무날. 마른비에다 소나기 옥영경 2009-08-12 1432
2010 132 계자 나흗날, 2009. 8. 5.물날. 보름달 옥영경 2009-08-11 1211
2009 132 계자 사흗날, 2009. 8. 4.불날. 맑음 옥영경 2009-08-09 1311
2008 132 계자 이튿날, 2009. 8. 3.달날. 빗방울 한둘 옥영경 2009-08-09 1399
2007 132 계자 여는 날, 2009. 8. 2.해날. 한 때 먹구름 지나 옥영경 2009-08-07 1226
2006 2009. 8.1.흙날. 맑음 / 132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9-08-06 1035
2005 131 계자 닫는 날, 2009. 7.31.쇠날. 맑음 옥영경 2009-08-06 1300
2004 131 계자 닷샛날, 2009. 7.30.나무날. 잠깐 먹구름 지나다 옥영경 2009-08-06 1147
2003 131 계자 나흗날, 2009. 7.29.물날. 잠깐 흐리다 맑아진 하늘 옥영경 2009-08-03 1080
2002 131 계자 사흗날, 2009. 7.28.불날. 비 지나다 옥영경 2009-08-02 1311
2001 131 계자 이튿날, 2009. 7.27.달날. 쌀쌀한 아침 옥영경 2009-08-01 1469
2000 131 계자 여는 날, 2009. 7.26.해날. 바짝 마른 날은 아니나 옥영경 2009-07-31 1187
1999 2009. 7.25.흙날. 비 / 131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9-07-31 1041
1998 2009. 7.24.쇠날. 흐리다 잔 비 옥영경 2009-07-31 997
1997 2009. 7.23.나무날. 조금 흐렸던 하늘 / 갈기산행 옥영경 2009-07-30 131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