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5.해날. 날 개다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09.07.16 15:17:00

2007. 7. 5.해날. 날 개다


오는 걸음들 편하라고 날이 산뜻하게 개줍니다.
유사제자(저들은 저들을 그리 부릅니다)들이 온답니다.
“음, 열나네. 엄마, 자라, 자. 내가 차 끌고 가께.”
누웠는 에미 이마에 손을 얹으며
이제 아주 능글거리는 사내 아이의 우스갯소리에 몰아낸 잠으로
이부자리 박차고 일어나 이르게 집을 나섭니다.
13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던 어제의 산길이었는데,
산이 주는 피로는 고단함의 질이 다르지요.
흔쾌한 승낙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산 아래 살아도 그 산 아직 올라보지 못했다고
식구 하나는 이 아침 홀로 삼도봉을 향해 가고
남은 식구들은
토란밭과 옥수수밭과 들깨밭 부추밭 고추밭 푸성귀밭가들
두루 풀을 벱니다.
학교마당 풀들도 잡지요.
때로 풀을 베어 덮는 게 제초와 거름의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데요.
일일이 매기보다 키워서 매는 것도 길이 됩디다.

유설샘 미루샘 소정샘 호성샘이
아침을 서둘러 대해리로 들어왔습니다.
와인도 들고 맥주도 들고
수박을 안고 마른안주거리들도 챙겨왔지요.
하룻밤을 묵어갈 것입니다.
“이건 뭐래?”
딸기잼도 커다란 냄비째 왔습니다.
예쁜 놈은 뭘 해도 예뿌다더니
딸기잼 떨어진 줄을 어찌 알았다나요.

지난 2월 주례를 섰던 혼례식,
유설과 미루 그들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고
재미나게도 그 아이 맞이 태몽을 제가 꾸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한 생명을 맞는 거룩한 일에 동참이라니...
그런데, 그게 그 아이 태몽인 줄은 어찌 또 알게 되었던 걸까요?
그냥 알게 됩디다.
실가닥을 굳이 찾자면 환희에 찼던 그 꿈자락 끝에
혼례식에서 주례 앞에 섰던 그 부부의 밝은 얼굴들이
나타났더랬지요.
신비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태몽 소식을 듣고 이래저래 듣고자 졸랐으나
그 부부 먼저 알아야 한다고 아꼈더랬지요.
드디어 개봉했습니다요.

대해리 영화관이 오랜만에 문을 열었습니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것인 줄 흔히 아는 콘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
애니메이터와 작화감독으로 오랫동안 하야오와 함께 작업한
그의 첫작이자 유작.
하야오의 후계자였으나 스승을 닮았으되 또 많이 달랐지요.
무엇보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그래서 공감대가 너른 작품이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마치 다 내 얘기를 돌아보고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만 같은,
그 시절의 친구 수종이와 춘미와 종수 준호 성광 정대 정남이
그들 사이의 이야기였더란 말이지요.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너무나 꼭 같은 추억들!
중학교시절의 우리들 성장기를 담고 있었던 겁니다.
누구라도 그럴 테지요.
팝송을 흥얼거리고,
밤새 쓰다 지운 편지가 오가고,
고교야구선수와 외국스타들의 이름자들을 들먹이고,
도서카드에 이름을 올리고...
시집이 백만 부 팔리던 그 시절은
석양에 물드는 강가에서 같이 노래를 하던 사람들이 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와 환타지가 조화롭게 배치된,
그래서 아련하고, 한편 마음 풍성해지는 작품이었지요.
아, ‘고양이의 보은’에서도 나오는 바론도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거기 ‘무타’가 여기서는 흰고양이로 나온답니다.

늦게 오른 달골인데도
이야기는 꼬리가 길었습니다.
보따리가 열둘도 더 됐더라지요.
우리는 여전히 성장기를 쓰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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