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빈들 이튿날, 2009. 6.27.흙날. 맑음

조회 수 1065 추천 수 0 2009.07.06 18:09:00

6월 빈들 이튿날, 2009. 6.27.흙날. 맑음


이른 아침 남자 셋 논에 들었습니다.
논둑에 올려둔 퇴비 23포대를
소사아저씨랑 희중샘 기표샘이 뿌리고 있었지요.
조금 뒤 달골의 아침도 밝아
창고동에 모인 이들이 해건지기시간을 수행으로 채우고 있었답니다.
한가운데는 쑥갓꽃들이 흘뿌려져 있고
향이 피어올라 수행을 도와주고 있었지요.

거름을 뿌린 희중샘 기표샘이
가마솥방에 먼저 들어갔네요.
“내가 해놓으까?”
감자를 캐고 씻어두겠다는 기표샘이었습니다.
“그러면 해주께.”
그렇게까지 하는데 해주지 싶습디다.
아침부터 감자샐러드샌드위치를 먹기로 한 사연이지요.
기표는 사흘 단식을 끝낸 자신의 보식기간이
단식한 만큼인 사흘이나 되니 너무 길다고
줄여주면 아니 되냐 조르고,
그러면서 제출한 먹고 싶은 음식목록표에도 있던
바로 그 감자샐러드샌드위치!
정말 삶고 으깨 놓았데요.
어찌 맛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밭에서 갓 캐내온 포슬거리는 김나는 감자!
거기 양파 홍당무 오이들을 다져넣고
마요네즈를 버무리고 달걀을 삶아 으깨 넣고
노른자는 망에 내려 색 곱게 뿌리고...
그래도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면 좋겠는 아침이지요.
아쉬움에 누룽지도 끓여냈습니다.
샌드위치를 서너 개씩을 먹었는데도
거기에 누룽지를 또 먹는 입들,
사람입이 무섭다더니...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빈들모임은 풍성한 먹을거리가 특징이랍니다요.
산골 넘쳐나는 것들을 죄 거두어와 먹으니
좀([조옴]) 많겠는지요.

오전에는 들깨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곶감집 뒤란에 흩뿌려놓았던 들깨들은
곳곳으로 나뉘어 심기고도
아직 남은 것 적지 않았더랬지요.
간장집 남새밭의 쑥갓이며 아욱이며 열무며 패낸 곳으로
들깨들이 자리들을 잡아갔습니다.
감나무 아래 그늘에서 풀도 뽑았지요.
그늘진 농기계집 뒤쪽도 뽑았습니다.
“너무 잘 먹어요.”
빈들모임은 또 잘 먹는 모임이라고도 일컫듯
점심밥상도 그러하였더랍니다.
현미영님과 박효열님이 정우 아인이랑 낮버스로 들어와
그 밥상에 함께하였지요.

오후에는 감자밭에 들었네요.
거기 무수하게 살고 있는 것들과 마주한 감흥을 여럿이 전했습니다.
먹을 것을 기르고 얻는 삶에 대한 경이에 대해서도
감탄을 풀어냈더랬지요.
다 캐내고 밭도 팼습니다.
굵은 것과 잔 것들을 나눠 광에 넣었지요.
이듬해까진 못가더라도 한 철은 푸지게 먹겠습디다.
평상에서 참을 먹은 뒤엔
뒤란으로 또 풀을 뽑으러 갔지요.
사람 많으니 한 손이라도 더 보태게 돼
금새 훤해지는 마당자리였습니다.
끝자락엔 아이들을 앞세우고 계곡에 갔지요,
더러 쉬기도 하고.
일한 뒤에 마시는 물 한잔처럼
땀 흘린 후 찾아든 계곡은
그런 도원이 없지요.

춤명상은 하지춤을 더 확대해보았습니다.
열심히 따라하다 보니 그게 그냥 명상이더라나요.
오늘의 소품은 삼잎국화였습니다,
역시 하지 즈음에 한창 길가를 채우는 꽃이
오늘의 수행을 도와주고 있었지요.

단식 엿새째입니다.
단식이 길어지면 잠도 줄지요.
이른 아침은 아침을 길게 만들고 아주 여유를 주고 있습니다.
비어가는 만큼 명징해지는 의식이 좋습니다.
21일 단식을 해본 적이 있지요,
물과 소금만으로.
그때도 여러 식구들 밥상을 차리면서 하였는데
비우는 건 어렵지 않으나 역시 다음에 오는 보식,
그러니까 채워가는 일이 정말 지난한 시간이더이다.
명상이 망상을 버리고 좋은 생각을 채워가는 것까지를 일컫는다면
단식 또한 비우고 채워가는 것까지겠다 싶습니다.
잘 채워 가리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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