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26.불날. 소나기

조회 수 987 추천 수 0 2009.06.07 13:38:00

2009. 5.26.불날. 소나기


우울한 아침입니다.
황망함 때문이겠지요.
진정성을 가졌던 한 뛰어난 지도자를
죽음을 선택할 수 없도록 내몰아놓은
이 나라의 국민인 게 슬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거지요.
누군들 아니 그렇답니까.
온 나라의 먹구름이
요란한 천둥소리낸 뒤 마침내 소나기로 내렸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도
사람살이는 계속 되지요.
무섭게 올라오는 밭의 풀들을 맵니다.
이런 시기
머리를 놓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들이
그럴 수 없는 위로입니다.
닭장을 살피기도 합니다.
올 봄은 부화를 못 시켰습니다.
암탉이 품은 알을 어미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쥐가 깨먹어 버리고 깨먹어 버리고 하였지요.
쥐약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랍니다.
표고를 따내고
포도밭에 들어 순을 치고 풀도 뽑습니다.

어제는 노근리평화연구소 소장님의 특강에 다녀왔습니다.
시간에 쫓겨 너무 서둘러 얘기를 끌고 가느라 아쉬움 좀 컸지요.
“알고 계셨어요?”
처음 알았다는 젊은 친구가 말을 건네 왔는데,
젊은이들에게 현대사 한 공간으로 안내하는
더욱 좋은 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을...
전쟁기간 동안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학살 문제가
꼭 노근리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요.
그런데 미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받아낸 유일한 사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유족들이 얼마나 지난하게 싸웠는가를
한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헌데 더러 그들은
‘반미활동’을 하는 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합니다.
“저희는 반미주의자들이 아니며,
반미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권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네요.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여러 정치적 이견이 나오고 있는데,
정치적인 의견을 떠나
그를 추모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 혹은 ‘국민의 도리’에 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 번 봐 줄래?”
아이가 엄마에게 시간 내주기를 부탁합니다.
가끔 자신이 한 작업물을 쌓아놓고 그리 부르지요.
뭘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가 해야겠다 판단한 것들을 하고
그 결과물들을 이리 내놓습니다.
엄마는 그저 보고 감탄만할 뿐이지요.
평가도 아닙니다.
그저 겨우 구경꾼 노릇 한 번 하는 거지요.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추동력을 갖고
다시 자신의 일들을 해나갑니다.
“나도 가르쳐주라!”
어제는 기타를 들고 있었는데,
맴돌며 줄을 누르거나 튕겨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에게 뭔가를 권하고 싶을 때
다만 옆에서 그걸 합니다.
그러면 저가 하고 싶다 하지요.
피아노도 그랬습니다.
“나도 해보자.”
그렇게 치기 시작하더니
이젠 저보다 훨 낫지요.
이곳 우리들의 배움 방식이랍니다.

“이불 좀 벗겨 와.”
아이 방 이불을 빨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선걸음으로 일을 하고 말려고 요를 벗겨 오라 하였는데,
속을 꺼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한소리 하려는데
그가 얼른 알아차리고 자신의 행동에 어이없어 하며 씨익 웃고는
얼른 되올라가데요.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짜증(?)이 배거나 화가 날 수도 있는 때를
유쾌한 상황으로 만드는 재주들이 있지요.
그래서 한바탕 웃습니다.
아이들이랑 사는 일, 참 즐겁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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